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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설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주원과 나란히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걷지도 못하고 뒤에서 들리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인아야.”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육진수임을 알 수 있었다. 성주원이 참지 못하고 눈을 흘기더니 중얼거렸다. “껌딱지가 또 왔네.” 성주원의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설인아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자 육진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 설인아. 이제 나를 무시한다 이거지?’ 육진수가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두세 걸음 만에 설인아 앞으로 다가가더니 빠른 속도로 설인아의 팔목을 잡았다. 억지로 자리에 멈춰 선 설인아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놔.” 육진수가 뽀얀 손목을 꽉 움켜잡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인아야. 우리 못 본지만 몇 달째야. 얘기 좀 나눠야 하지 않을까?” 설인아는 짜증이 치밀어올라 어떻게든 손을 빼내려고 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육진수 씨, 자중해.” 육진수를 쫓아서 내려온 설연우가 이 장면을 보고는 너무 화가 나 발을 동동 구르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오빠...” 육진수가 차가운 눈빛으로 설연우를 바라봤다. 경고가 담긴 눈빛에 화들짝 놀란 설연우가 더는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 육진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설연우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정말 화나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설연우도 육진수가 설인아의 손을 잡고 있는 걸 보고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이 빌어먹을 년이 또 진수 오빠를 꼬시려고.’ 설연우는 정말 너무 억울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그저 속으로 설인아에게 욕만 퍼부었다. 육진수가 설인아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인아야, 10분이면 돼.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 그래. 다른 뜻은 없어.” 육진수가 설인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부드러운 것 같아도 설인아의 손목은 놓아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팔을 빼려고 노력해도 방법이 없어 짜증이 치밀어오른 설인아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육진수 씨, 우리 이미 끝났어. 내 동생이랑 만나고 있는 거 아니야? 이제 외도는 그만 멈추시지.” 육진수는 기분이 잡쳐 미간을 찌푸렸지만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인아야. 나랑 연우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설연우는 말문이 막혔다. 잠자리에 들 때는 뭐든 내줄 것처럼 하더니 이제 와서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다. 설연우는 이 모든 게 다 설인아 탓이라고 생각해 설인아를 노려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설인아 이 빌어먹을 년. 헤어졌으면서 아직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나?’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성주원이 육진수의 손을 뜯어내더니 차갑게 말했다. “남자가 돼서 공중장소에서 뭐 하는 거야?” 정신이 딴 데 팔려있던 육진수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성주원을 쏘아봤다. 하지만 육진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성주원이 갑자기 옷소매를 정리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얘기? 무슨 얘기? 외도가 아니라는 얘기? 아니면 인아랑 다시 만나고 싶다는 얘기?” ‘역시 내 친구가 맞아.’ 설인아가 입꼬리를 올렸다. “성주원. 이건 나랑 인아 두 사람 일이야. 인아를 봐서라도 이번엔 그냥 넘어가 줄게.” “뭐?” 성주원이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해봐. 그냥 넘어가지 말고 뭐든 해보라고. 지구가 너를 에워싸고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가 뭔데?” 성주원의 입은 마치 기관총처럼 쉬지 않고 육진수에게 총알을 날렸다. 공중 장소만 아니었다면 진작 이 개같은 자식을 때려눕혔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살짝 아쉬웠다.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많이 만나봤어도 이 정도로 두꺼운 건 처음이었다. 육진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만 연예인이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한 덕분에 다른 사람은 그가 누군지 보아낼 수 없었다. “성주원,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나랑 인아 사이에 끼어들지 마.” 육진수가 이를 악물며 말하자 원래도 성격이 불같은 성주원이 드디어 폭발해 옷소매를 거두고는 설인아 앞에 막아서며 육진수를 노려봤다. “어머. 내가 꼭 끼어들겠다면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그러더니 육진수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해봐.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구경 좀 해보자.” 화가 잔뜩 치밀어오른 육진수는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올랐다. 육진수가 입을 열려는데 성주원 뒤에 서 있던 설인아가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싸우는 두 사람을 말렸다. “그만해.” 설인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육진수를 쏘아보며 경고했다. “육진수 씨, 대배우의 이미지에 금가기 싫으면 더는 나 찾아오지 마.” “너 정말...” 육진수는 설인아가 이렇게 대놓고 협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얼굴이 굳어졌다. 키는 작아도 기세는 절대 밀리지 않았고 온몸으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설인아를 보며 육진수는 입을 뻐끔거리더니 결국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설인아의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육진수는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한마디도 믿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판단하기 힘들었다. ‘이제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 정말 그 일들을 대중들에게 알리겠다는 말이지...’ 육진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설인아가 육진수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들에게 시선을 보내왔다. 사람들의 시선에 얼어붙은 육진수가 주춤하자 설인아가 차갑게 웃더니 성주원을 힐끔 쳐다봤다. 그렇게 육진수는 주먹을 꼭 쥔 채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꾹 참고 있던 설연우는 이제 더는 화를 참아내기가 힘들어 얼른 육진수의 팔을 붙잡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언니 왜 저렇게 된 거예요? 저 사람... 정말 인아 언니 맞아요...?” 육진수가 입술을 앙다물더니 설연우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설인아의 뒷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순간 설연우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누가 봐도 후회였다. 어떻게 육진수에게 설인아를 포기하라고 했는데 다시 감정이 불타오르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설연우가 억울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정말 나 버릴 거예요?” 육진수가 대답 대신 먼 곳을 내다보자 설연우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육진수의 마음에 온통 설인아라는 것만 생각하면 질투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설연우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불렀다. “오빠.” 육진수가 그제야 설연우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눈빛이 다소 차가웠다. 설연우가 아직 육진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육진수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야. 지금 중요한 얘기 하고 있는데.’ 설연우가 이를 악물었다. 육진수가 옆에 선 여자를 완전히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내 누군지 확인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시간에 웬 전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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