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박시언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는 이미 그 땅이 대박 날 거란 걸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는 스티븐에게 양보하기 위해 그 땅을 포기했었다. 이건 확실히 박시언의 스타일이다. 신다정은 진지하게 말했다. “난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야. 깊게 생각할 것 없어.” 박시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신다정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신다정의 머리로 미래의 가치를 보아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박시언은 확실히 자기가 생각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박시언도 더는 신다정에게 신경 쓰지 않고 서찬미와 함께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서찬미는 약간 미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신다정을 한 번 쳐다보았는데 그녀의 연기에도 신다정은 여전히 그녀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한 눈빛을 보아낼 수 있었다. 신다정은 고개를 들어 샴페인 한 잔을 마셨다. 지금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녀는 남편을 뺏긴 실패한 여자로 보일 것이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신혼의 부인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함께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이만큼 우스운 존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신다정은 고구마를 먹은 듯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 기회에 기업 거물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했는데 박시언이 저렇게 떠나버리니 그녀의 계획에 어려움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젠 어떻게 저 기업가들에게 다가가야 할까? 주변을 둘러보던 신다정은 멀지 않은 곳의 피아노에 시선을 고정했다. 순간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나이스! 신다정은 우아한 걸음으로 피아노에 다가가 자리에 있던 피아니스트와 잠시 인사를 나눈 후 의자에 앉았다.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란 그녀는 여러 가지 재간도 많았지만 지난 생에는 도무지 빛을 발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마침 쓸모가 있게 생겼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만지지 않아서 왠지 어색했지만 손에 익은 그 느낌은 절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내 그녀의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며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연출했고 그 음악은 지금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아름다운 선율에 푹 빠져버렸다. 그녀의 연주가 끝난 후,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서찬미와 박시언도 대화를 멈추고 시선을 신다정에게 고정했다. 이때 서찬미가 일부러 입을 열었다. “다정이 언니 피아노도 칠 줄 알았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피아노 10급이야.” 박시언은 덤덤하게 말했다. 상류 사회의 사람들은 대다수 피아노를 접촉했으며 10급도 아주 흔하다. 즉 실력자들에게서 박수를 받는다는 건 신다정의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의미한다. 박시언은 아주 담담한 어조로 그녀가 피아노 10급이라는 사실을 말했지만 서찬미는 여기서 신다정과의 차이를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신다정이 그저 운이 좋고 얼굴이 예쁘 것뿐이지 다른 건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 게다가 틀려도 한참을 틀렸다. 그녀의 연주가 끝나고 수많은 명문가 사모님이 그녀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비록 거물들을 직접 접할 수는 없지만 거물들의 사모님을 먼저 접하면서 나중에는 천천히 거물들까지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다정 저런 재간도 있었어? 피아노 실력이 아주 대박이네.” 코너에 있던 반지훈은 복도 손잡이에 기댄 채 말했다. “확실히 괜찮네.” 지태준도 그 말에 찬성했다. “음치가 음악을 알아?” “몰라. 근데 좋아.” 지태준은 비록 음악은 잘 모르지만 신다정이 연주한 곡이라서 유난히 다르게 느껴질 뿐이다. 한참 뒤 신다정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코너를 돌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어두운 코너로 끌어당겼다. 깜짝 놀란 그녀는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상대는 그녀의 입을 꾹 틀어막았다. “움직이지 마요.”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등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뜨거운 가슴에 신다정은 호흡을 가다듬더니 남자의 손을 힘껏 깨물었다. “쓰읍--” 남자는 아파서 숨을 들이마셨다. “진짜 물었어요?” 남자는 신다정을 놓아주었고 신다정은 남자와 신속히 거리를 넓힌 뒤 뒤를 돌아섰다. “지태준 씨?” “누군 줄 알았어요?”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누가 볼까 봐 몰래 들어왔어요.” “장난해요? 지 회장님은 지태준 씨의...” 신다정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이내 삼켜버렸다. 그러자 지태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었다. “네? 뭐요?” 지태준의 표정에 신다정은 괜히 마음이 찔려서 시선을 피했다. 지난 생에 지 회장은 모든 유산을 전부 지태준에게 상속했고, 그녀는 그제야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지태준이 지 회장의 손주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지 회장님처럼 인자하신 분은 해외에서 탑을 찍던 지태준 씨를 절대 쫓아낼 일이 없다! 이 말이에요!” “글쎄요. 난 워낙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신다정이 말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려고 몰래 들어왔단 말은 하지 마세요.” 지태준이 설마 그렇게 지루한 사람일까? “자, 확인해요.” 지태준은 계약서를 신다정에게 넘겨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그건 그녀가 빌린 1조 6천억에 대한 계약서였다. “이것 때문에 왔다고요?” 지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루해요.” 신다정은 대충 서명한 뒤 다시 지태준에게 계약서를 돌려주었다. 이 밤에 몰래 들어온 것이 그녀에게 계약서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니. 게다가 장소가 하필 여자 화장실 앞이라니... “신다정 씨 채무자로서 하나만 물어도 되겠죠?” “그러세요.” “왜 2조를 들여 그 땅을 산 거죠?” 지태준의 목소리는 관능적이고 끌림이 있어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신다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어요.” “내가 반드시 들어야 한다면요?” 그는 비록 신다정에게 다른 계획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 땅은 2조 원의 가치를 보유하지 않았다. 분명 손해 보는 장사가 뻔한데 신다정은 왜 그 땅이 2조 원 이상의 가치를 창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반년 후에 가치가 폭등한다면 믿을 거예요?” “아니요.” 적어도 지금까지 그는 그런 낌새를 보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만약 황무지 주변의 고급 아파트 단지가 곧 판매될 거라고 말한다면요?” “고급 아파트요?” 처음 듣는 말에 지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곧 알게 될 거예요.” 말을 끝낸 그녀는 미소를 짓더니 지태준을 에돌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태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로비로 나왔고 반지훈은 다급히 물었다. “사인했어?”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신다정이 산 그 황무지 주변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어?” “아니.” “그 황무지 주변 땅 소유주가 누군지 빨리 알아봐.” “그 주변은 오수 구역이라 알아볼 것도 없어. 고급 아파트는 무슨, 농구장도 지으려고 안 해.” 지태준은 멈칫했다. “오수 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