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5년 후 강씨 저택 정문.
검은색 바이크 한 대가 굉음을 내면서 달려오더니 360도 드리프트를 보여주며 멈춰 섰다. 무광의 차체는 미래적인 감각을 뽐냈다.
휘날리는 먼지 속에서 바이크에 탄 여자가 긴 다리를 뻗으며 내렸다. 헬멧을 벗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는 모습은 거칠고 도발적이었다.
강서윤은 강씨 저택이라는 네 글자를 보며 씩 웃었다.
5년 만에 드디어 돌아왔다.
그때 죽을 뻔할 정도로 걷어차여 뱃속의 아이도 잃었다. 강서진과 정시후는 그녀가 정시후를 배신하고 바람을 피웠다면서 모든 죄를 그녀에게 뒤집어씌웠다.
강씨 가문에서는 강서윤에게 주식을 주기는커녕 아프리카로 내쫓아버렸고 매달 쥐꼬리만 한 생활비를 보냈다.
5년 동안 그녀는 온갖 고생과 고초를 겪었다. 이제 그녀의 것을 되찾을 때가 왔다.
그녀는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디디며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원에서 도우미들이 귀한 음식과 술을 들고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고 명문가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강호석의 칠순 잔치라 금성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모두 모였다. 사람들은 강호석을 둘러싸고 축하 선물을 건넸다.
“아버지, 평소 차를 즐겨 드셔서 특별히 백 년 된 보이차를 준비했어요. 이거 1억짜리예요.”
“할아버지, 이건 송백고려인데 경매가가 무려 천억이에요. 그림 속 송백나무처럼 무병장수하셔야 해요.”
“할아버지, 전 특별히 옥불상을 제작했는데 1조나 들었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에 들린 맑고 고운 목소리는 마치 천상의 목소리 같았다.
말이 끝나자마자 강서진이 우아하게 걸어왔다. 정교한 이목구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눈부신 미모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비서 네 명이 붉은 비단을 덮은 판 하나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판 위에 정교하게 조각된 옥불상이 놓여 있었는데 햇빛을 받으니 태고의 숲처럼 신비로운 빛을 발산했다. 또한 옥보다 더 묵직하고 차갑고 깊은 질감을 자랑했다.
그 순간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대박. 저 옥은 뭐죠? 색깔이 저렇게 깊고 오묘한 건 처음 보는데요?”
“제코 1호인 흑보석 녹빛 운석이에요. 경매에서 1조에 팔린 바로 그 흑보석 녹빛 운석요.”
“네? 제코 1호요? 전 세계 최초로 발견된 흑보석 녹빛 운석이라고요?”
“맞아요. 보도에 따르면 제코 1호의 재질이 아주 특별하다더라고요.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고 철운석의 일종이라서 유압기로도 깰 수 없대요.”
“세상에나. 다른 사람들은 비취나 보석을 선물하는데 강서진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것도 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운석을 선물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역시 세계 1위 모델은 다르다니까요. 흑보석 녹빛 운석을 사서 불상으로 조각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모두 강서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눈빛에도 존경심이 가득했다.
그들의 모습에 강서진은 어깨가 으쓱했다.
‘오늘 할아버지의 마음에 들면 전에 받지 못했던 주식 15%를 받을 수 있어. 그럼 난 강천 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거야.’
하지만 겉으로는 겸손한 척 고개를 숙였다.
“칭찬들 그만하세요. 그냥 5년 동안 모은 돈으로 할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할아버지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그걸로 됐어요, 전.”
“당연히 마음에 들지, 들고말고.”
강호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 누구예요? 낯이 익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한 순간 전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원 입구 쪽 통로 끝에 강서윤이 검은색 가죽 재킷과 바지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길고 쭉 뻗은 다리에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를 풀어헤친 채 차갑고 오만하면서도 침착한 분위기를 풍겼다.
강서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강서윤? 아프리카에서 5년이나 있었잖아. 새까맣게 타고 못생겨져야 정상 아니야? 근데 왜 저렇게 예뻐졌어?’
강서진의 아버지 강현찬과 어머니 서혜주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서윤이 왜 돌아왔지? 뻔뻔한 양녀 주제에 왜 하필 지금 나타난 거냐고.’
서혜주가 급히 다가가 말했다.
“왜 이런 옷을 입고 왔어?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 몰라? 당장 뒷마당으로 가. 창피하게 굴지 말고.”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리러 온 것 같은데 그냥 놔두세요.”
강서진이 우아하게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서윤에게 쏠렸다.
“축하? 빈손으로 왔으면서 축하는 무슨.”
“강씨 가문에 얹혀사는 양녀인데 선물 살 돈이 어디 있겠어요? 할아버지한테 돈 달라는 소리만 안 해도 다행이에요.”
“어르신이 아직 15%의 주식을 남겨두고 있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생일 선물조차 준비하지 않았다니. 정말 배은망덕하네요.”
평소 강서윤을 자주 괴롭혔던 사촌 언니 강소미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힘껏 밀쳤다.
“양녀 주제에 뭘 멍하니 서 있어? 썩 꺼지지 못해? 뭘 쳐다봐? 저 옥불상이 얼마인지 알기나 해? 1조야, 1조.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그렇게 큰돈은 구경도 못 해 봤겠지? 만 원짜리 선물조차 준비하지 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여기 서 있어?”
강서윤이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렸다.
“누가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어? 나도 마침 제코 1호를 준비했는데.”
그녀가 손뼉을 치자 비서 네 명이 옥불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 옥불상은 강서진이 가져온 옥불상과 똑같았다.
‘이... 이게 대체... 똑같잖아. 대체 어떻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