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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철퍽!” 바로 그 순간, 강연수의 머리가 걸레 세척통에 처박히며 물이 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의 얼굴은 무게감 있게 물속으로 잠겼고 그 위에 차가운 힘이 눌러졌다. 강서윤은 냉정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그대로 짓눌렀다. “이 썩은 머리통이라도 씻어.”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맹렬한 한기가 얹힌 말은 물보다 더 매섭게 뼛속을 파고들었다. “네 머릿속에 들끓는 그 한심한 생각들, 다 물에 떠내려 보내버려. 강서진이 정말 널 위하는 사람이라면 왜 네가 공부를 포기하게 됐을까? 왜 너 혼자 부모한테 외면당하고 가족한테 문제아 취급받고 있는 건데?” “크억... 콜록... 콸콸콸...!” 강연수는 물속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강서윤의 손아귀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악취 나는 더러운 물이 코와 입을 파고들며 폐 속까지 밀려들었다. 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전신에 퍼진 공포가 속절없이 머리를 잠식했다. 그리고 마침내 강서윤이 힘을 거뒀다. 그녀는 강연수의 젖은 머리채를 거칠게 낚아챘다. 질질 끌려 올라온 얼굴은 엉망이었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졌고 그 위로 강서윤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꽂혔다. “강연수.” 차디찬 목소리였다. “남한테 팔려가면서 돈까지 세주는 한심한 짓, 이제 그만 둬.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여기까지야.” 강서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입꼬리를 조용히 내리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다음에 또 감히 나한테 손찌검할 생각이면 그땐 네가 피 섞인 가족이라도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젖은 머리채를 툭 하고 놓았다. “털썩.” 고개가 힘없이 떨어진 강연수를 지나쳐 강서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박또박 걸음을 옮겼다. 강연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공기를 허겁지겁 삼켰다. 폐 깊숙이 들어갔던 더러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오르며 거친 기침이 쏟아졌다. 눈앞은 여전히 흐릿했고 머릿속은 아득했다. ‘말도 안 돼...’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저 여자가... 언제부터 저런 눈빛을 하게 된 거지?’ ‘예전엔 말 한마디에도 덜덜 떨던 겁쟁이였는데... 갈비뼈를 부러뜨린 게 봐준 거였다고?’ 강연수의 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미친 여자... 저건 악녀야. 분명 누나랑 나 사이 이간질하려고 저딴 소릴 한 거야. 그래, 절대 안 속아. 절대로.’ 그는 젖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축 늘어진 머리칼을 떨궜다. 붉게 충혈된 두 눈과 이를 악문 턱선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 거야. 강서윤, 넌 날 너무 얕봤어. 꼭 후회하게 만들어 줄게.’ 차디찬 눈빛으로 이를 악문 강연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 순간, 강서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섰다. 문을 닫자마자 곧장 욕실로 향한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진한 화장을 지우고 입 안에 남은 피비린내를 조용히 헹궈냈다. 거울 너머 눈가에 묻은 잔여감정조차 닦아내듯 담담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문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들어선 배진우가 아이스팩을 내밀며 조용히 물었다. “왜 그냥... 친자확인 검사를 하지 않아요?” 강서윤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는 비웃음과 허무가 반쯤 섞여 있었다. “강서진이 그렇게 만만할 것 같아?” 말끝에 담긴 냉기가 방 안을 서늘하게 스쳤다. “지금 강성 쪽 병원들, 거의 다 걔가 사람 심어놨어. 자료 접수되는 순간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지. 검사 들어가기도 전에 조작되는 거야.” 그녀의 말은 단호했고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거울로 향했다. 붉게 부어오른 입술이 또렷이 비쳤다. 강서윤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 부은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손끝이 닿는 순간, 조금씩 굳은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설령 지금 내가 친딸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날 좋아해줄 것 같아?” 가볍게 흘리듯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엔 오래 묻어온 상처가 베어 있었다. 배진우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조금 숙여 가을 앞에 바싹 다가섰다. 손끝으로 파우치를 열어 립스틱을 꺼냈다. 레노바, 핏빛이 짙게 감도는 색. 강서윤은 입술선을 따라 아주 조심스럽게 발색을 채워갔다. 섬세하고 단단한 손놀림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낮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오히려... 기대돼. 강서진 때문에 그 가문이 무너지고 마지막에 진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정말 흥미로울 거야.” 립스틱이 완벽하게 발색된 순간, 강서윤은 배진우가 건넨 아이스팩을 받아 붉게 물든 입술 위에 조용히 갖다 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느긋한 걸음으로 욕실을 나섰다. 배진우는 잠시 말없이 강서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인상을 찌푸렸다. ‘세상에 나보다 복수심이 더 강한 인간이 또 있을 줄이야.’ 지금은 혈연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확실한 건 눈앞에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뿐. “지금 당장 손 써야 해요.” 그는 핸드폰을 꺼내 조용히 내밀었다. 강서윤은 그 폰을 건네받아 화면을 들여다봤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 강서윤, 재벌과 스폰 관계?] [2위, 강서진, 합성 사진 피해자.] [3위, 강서진, 광고 교체 충격.] 그녀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트위터를 뒤덮은 실시간 검색어는 하나같이 강서진을 향한 동정 여론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샹네르 주얼리쇼의 피날레 무대 주인공은 강서진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유출된 음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기회가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이름조차 낯설었던 인물, 강서윤. 이제는 샹네르의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 모델이자 벨라노아의 공식 뮤즈로까지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실시간 댓글창은 이미 불구덩이였다. 폭주하는 대중의 감정은 자제란 걸 몰랐고 자극적인 타이틀 아래 누군가를 짓밟는 일엔 주저함이 없었다. [딱 봐도 싸가지 없게 생겼더만. 우리 서진이 건들지 마라 진짜.] [청초한 여신한테 저런 걸로 합성질? 인성 수준 나오지.] [서진이 팬도 아닌데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저렇게까지 해서 광고 따내고 싶었냐. 역겹다 진짜.] [이딴 애를 모델로 쓰는 거 보면 샹네르 망하고 싶은가 봄.] [다 같이 신고 돌려요. 강서윤 퇴출 가자.] [강서윤, 제발 연예계고 뭐고 다 떠나. 토 나옴.] 강서윤의 이름은 단숨에 ‘음란 사진 조작범’과 ‘스폰 의혹’이라는 자극적인 꼬리표를 달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점령했다. 트위터 메인엔 온통 그녀를 겨냥한 기사들이 줄지어 떠올랐고 댓글 창엔 전국에서 쏟아지는 욕설이 들끓고 있었다. 비난이 도배된 화면을 조용히 훑어본 강서윤은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 일 가지고?” 그 무심한 한 마디에 옆에 있던 배진우의 눈이 크게 휘어졌다. 그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강서윤을 바라봤다. ‘이 정도...?’ ‘지금 악플만 수천 개야. 트위터가 터질 판인데...’ 배진우는 마치 정신을 각성시키듯 명확한 어조로 말했다. “서윤 씨, 이건 당신이 귀국하고 처음 치르는 전쟁이에요. 무조건 이겨야 해요. 지금 밀리면 다음은 없어요.” 배진우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진지함이 묻어나는 눈빛까지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강서윤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그래도 지금 실검 1위야. 그 정도면... 기념할 만하지 않아?” 그녀는 천천히 와인 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요한 손끝으로 레드 와인 한 병을 꺼내들고 잔에 천천히 따라냈다. 짙은 붉은색이 잔 속에서 일렁일 때 그녀는 또 한 잔을 따라 배진우에게 내밀었다. “건배하자. 실검 1위에 오른 걸 위하여.” 그녀의 눈동자엔 싸늘한 전율이 스치고 있었다. 하지만 배진우는 그 잔을 받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강서윤을 바라보는 그의 이마엔 깊은 주름이 드리워졌고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 여잔 이제... 아무도 통제 못 한다더니.’ ‘도대체 5년 사이에 왜 이렇게... 괴물처럼 변해버린 거지?’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윤 씨,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진짜 알고는 있어요?” 순간, 강서윤의 손끝이 멈칫했다. 배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발 좀... 진지해져봐요.” 지금 이 순간, 샹네르 본사에선 강서윤을 교체할지에 대해 긴급 회의 중이었다. 그녀를 비난하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댓글 창은 독기로 가득했다. 전 국민이 달려들어 마치 사냥하듯 그녀를 물고 뜯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축하 파티를 하겠다고?’ 강서윤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와인 잔을 천천히 기울였다. 짙은 레드 와인이 입 안에서 스며들자 그녀는 눈을 감고 잠시 그 풍미를 즐겼다. 곧 소파에 나른히 몸을 기대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걱정 마. 내가 감당 못할 정도로 일을 키울 리 없잖아.”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빠르고 능숙하게 무언가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그 눈빛엔 일말의 동요도 없었고 손끝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 시나리오를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흔들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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