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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두 사람의 분위기도 묘한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유지민이 국제 택배를 보내려고 준비할 때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택배 기사라고 생각하며 문 앞에 다가갔던 유지민은 어제 일이 생각나 경계심을 갖고 현관문의 눈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강시현의 얼굴을 보자 차가운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고 유지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불쾌한 눈빛을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딱 그 꼴이네.’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려는 찰나 문 자물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유지민은 숨이 턱 막혔다. ‘오늘 단단히 준비하고 왔나 보네. 문을 열지 않으면 따버리겠다는 건가?’ 그녀는 처음으로 강시현의 행동에 역겨움을 느꼈다. 유지민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바로 문을 열었고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강시현을 바라보았다. 열쇠를 손에 쥐고 있던 강시현은 유지민을 보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질책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유지민, 대체 나를 언제까지 피하려고 하는 거야?” 그녀의 표정은 더욱 싸늘해졌다. ‘왜 지금까지 강시현은 내가 피하고 있다고, 떼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린 뭔가를 시작한 적도 없어서 끝이라도 말하는 것도 웃긴데...’ 유지민에게 있어서 강시현은 이미 지나간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빠르게 얼어붙었고 유지민의 눈빛은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지민의 냉담한 모습을 보며 강시현은 눈살을 찌푸리고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희미한 피 맛이 퍼졌다. 그는 결국 항복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민아, 다시 삼촌이라고 불러주면 안 돼?” ‘예전에 지민이가 삼촌이라고 불러줄 때가 정말 좋았는데...’ 당시 그는 일을 끝내고 그녀를 놀리며 피로를 풀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유지민은 싸늘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강시현 씨,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혈연관계도 없고요. 이제 강씨 가문도 떠났고 다시 돌아갈 생각도 없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강시현의 얼굴이 즉시 냉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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