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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민재야, 우선 밥부터 먹자.” 박일성이 다시 한번 말하면서 새우를 하나 집어 강서우의 앞 접시에 놓았다. 하지만 식사 자리는 겉보기에만 잠잠했을 뿐 여전히 무겁고 불편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박민재는 강서우를 도시 외곽의 버스 정류장에 내려놓고는 한마디도 안 하고 가버렸다. ... 이 일에 대해 강서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호텔로 돌아왔고 박민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대신 이곳저곳 일을 정리하며 구름시에서의 모든 인연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가끔 유송아가 보내는 메시지를 열어 보고는 했다. 유송아가 무엇을 했는지, 어느 시간대에 어디에 있었는지, 시시콜콜 전부를 전달해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슴이 아팠지만 점점 마취된 듯한 감각이 들었고, 이제는 우스울 정도였다. 강서우는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고 조용히 캡처만 해 두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하려고 말이다. ... 월요일이 되었다. 오전 11시 30분 비행기를 예약해 둔 날이었다. 강서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다 챙겼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박민재가 비상 열쇠를 써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깔끔한 수트 차림이었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강서우는 반사적으로 캐리어를 뒤로 숨겼다. 순간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녀는 한 번도 박민재의 곁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한 번 다퉜을 때, 박민재가 술에 취해 그녀가 떠나려고 하면 평생 바깥 구경 못 하게 가둬두겠다고 소리쳤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그조차 달콤하다고 느껴졌다. 그만큼 서로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공포로 다가왔다. 박민재는 강서우를 한참이나 가만히 응시했다. 며칠 동안 쌓인 분노가 있었지만, 강서우가 전혀 연락을 해 오지 않으니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이 났다. 그래도 호텔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얼어붙어 있던 가슴이 조금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짐은 놔둬. 내가 성 비서 시켜서 옮기면 돼. 우린 빨리 가서 혼인신고 해야지.” 한때 강서우가 가장 원하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별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가방끈만 가볍게 고쳐 잡고 박민재가 내민 손을 바라봤다. “서두를 것 없어. 먼저 같이 갈 데가 있어.” 박민재는 시계를 흘끗 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알았어. 근데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돼. 10시에 회의가 있거든.” 바쁜 스케줄 중에 억지로 시간 내서 결혼을 진행하는 모양새였다. 차는 오래된 동네에 멈춰 섰다. 낡은 돌바닥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단층집들이 줄지어 있는 곳. 옛 건물을 보존해 관광지로 바꾸고 난 뒤로는 둘 다 이곳에 거의 오지 않았다. “갑자기 왜 여길 온 거야?” 박민재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묘한 불안과 공허함이 다시 가슴을 흔드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강서우 손목을 잡아 쥐고 나서야 안정이 되는 기분이었다. 강서우는 그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대신 다른 손으로 멀리 보이는 공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원래 농구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었다. “고2 때 옆 학교 남자애가 날 좋아한다고 쫓아다닌 적 있었잖아. 그래서 네가 잔뜩 화가 나서는 삼 대 삼으로 농구 시합을 했던 거 기억나? 결국 네 팀이 이겼지만 다리를 다쳐서 한동안 절었지. 그때 나를 끌어안고 책임지라며 어린애처럼 울었잖아.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우리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 한밤중에 여기서 불꽃놀이 하며 청혼도 했었지. 나 17살밖에 안 됐는데 너 혼자 왜 서둘렀는지 몰라.” “사랑아, 너 요즘 왜 이래?” 추억에 잠겨 있던 강서우를 박민재가 문득 깨웠다. 강서우는 그를 돌아보았다. “우리 처음으로 유송아 때문에 싸웠던 곳도 여기였어. 네가 화났다고 날 여기 낡은 농구장에 혼자 두고 가 버려서 길치인 나는 두 시간 넘게 헤맸지. 발뒤꿈치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걸었어.” 그 뒤로 강서우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박민재는 왠지 심장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에 강서우를 품으로 끌어안으려 했다. “사랑아, 그건 다 지나간 일이잖아. 내가 송아를 챙겨 주는 건...” 강서우는 조용히 빠져나왔다. “가자, 바뀐 공원을 보고 싶어. 예전에 좋아하던 맛집도 계속 있대. 오래간만에 먹어보고 싶어.” 그녀는 박민재의 손을 자연스럽게 뿌리친 뒤 혼자 앞장서서 걸었다. 박민재는 속이 끓어오르는 걸 억누르고 뒤따랐다. 때가 이른 탓인지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아침 장사를 여는 음식점 몇 곳만이 영업 중이었다. 가게 주인들은 바닥에 물을 쏟아 청소하고 기름때를 닦고 있었는데, 그중 한 식당에서 뿌린 물이 흘러나와 길에 기름막이 둥둥 떠다녔다. 박민재는 찝찝한 듯 강서우를 살짝 끌어당겼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혼인신고 끝나고 나면 내가 맛있는 랍스터 사 줄게. 굳이 여기서 아침을 먹어야 해?” 이 거리의 음식점들은 예전에 둘이 자주 찾았던 곳이다. 박민재가 한창 인정받지 못하는 보성 그룹의 사생아로 살아가던 시절, 이 동네를 자주 돌아다녔다.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방금 나온 뜨거운 만두를 나눠 먹고, 시끌벅적한 상인들 틈에 섞여 깔깔 웃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다. 이제 박민재는 보성 그룹의 후계자이자, 여러 압력을 뚫고 당당히 자리를 잡은 인물이 되었다. 그는 많은 걸 손에 넣었지만 이 자리에 어떻게 왔는지, 그녀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잊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먹고 싶어.” 강서우 고집에 박민재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강서우가 평소에도 제멋대로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박민재의 뜻을 많이 배려해 주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달라진 듯한 모습에, 그는 다시금 며칠 전 본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예전 같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날따라 그의 체면을 전혀 살펴주지 않았다. 낡은 목재 의자에 앉은 강서우는 만두 두 판과 순두부찌개 두 그릇을 주문했다. 박민재는 그녀가 건네준 숟가락을 받으며 이유 모를 허전함에 휩싸였다. “사랑아, 오늘 성 비서한테 시켜서 송아를 다른 집에 보내려고 해. 이제 우리 집에는 너와 나 둘만 있을 거야. 예전처럼.” 박민재의 인식에서 강서우는 언제나 그의 곁에 함께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앞으로도 두 사람의 사이에 변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서 먹고 가서 혼인신고 하자.” 박민재는 왠지 마음이 급해 보였다. 강서우는 가슴이 찌릿해졌다. ‘예전처럼이라니...’ 바로 그때 박민재의 휴대폰이 울렸다. 유송아 전용 벨소리였다. 예전에 유송아가 발작을 일으켰는데, 박민재가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 둬서 전화를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그는 병실 밖에서 고개를 싸매고 앉아 스스로를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그때 강서우는 박민재가 자신 말고도 다른 여자를 진심으로 챙겨 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똑똑히 목격했다. “받아.” 강서우는 고개를 숙인 채 만두를 먹고 있었다. 박민재는 그녀의 얼굴을 흘끗 보며 울리는 벨소리에 속이 뒤틀리는 걸 억누른 뒤 전화를 받았다. “송아야, 나 오늘은 시간 없어. 급하면 성 비서한테 연락...” 휴대폰 너머로 성주의 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표님, 유송아 씨가 강서우 씨 마음 상하지 않게 하려고 밤새 꽃을 손질했어요. 천식이 심해졌는데도 쉬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정원에서 쓰러졌고, 지금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유송아 씨가 대표님께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먼저 연락드려요.” 박민재의 표정이 삽시간에 험악하게 바뀌었다. “곧 갈게.” 전화를 끊은 뒤, 그는 강서우를 차갑게 바라봤다. “정원은 원래대로 복구해 주겠다고 했잖아. 왜 이렇게 사소한 일로 송아를 괴롭혀? 혼인신고는 다음에 하자.” 그는 제멋대로 말을 내뱉고 돌아섰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장소에서 강서우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나 버렸다. 오늘은 둘이 혼인신고를 하기로 한 날이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성큼성큼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강서우의 마음에는 큰 동요가 일지 않았다. 과거에 강서우는 자신이 아플 때 과연 박민재가 똑같이 챙겨 줬을까 문득문득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여겼다. 사랑한다고 해 놓고도 결국 배신하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랑할 이유도 없다. 갓 쪄낸 만두의 뜨거운 김이 눈가를 자욱하게 데워 왔지만, 강서우는 묵묵히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리웠던 곳들을 한 바퀴 더 돌아본 뒤, 조용히 호텔로 되돌아가 짐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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