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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박민재의 눈에 잠깐 어색한 기색이 스쳤다. “사랑아, 송아 아파트가 지금 공사 중이라 냄새가 심해. 몸이 안 좋은 애한테 나쁠 것 같아서...” 강서우는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슴이 세차게 조여 왔다. 숨 막히는 고통이 몸을 휘감았다. “호텔 묵을 돈도 없어?” 유송아는 울먹이는 얼굴로 바이올린을 챙겼다. “저 때문에 싸우는 거라면 지금 당장 나갈게요.” 유송아는 허둥지둥 짐가방을 들려다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쳤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냘픈 숨소리조차 묘하게 요염했다. “괜찮아? 왜 허둥대고 그래? 어디 부딪친 거야? 약은 챙겼어?” 박민재는 다급하게 유송아를 가볍게 들어 올려 안았다. 그리고 곧장 2층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위층에는 방이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강서우의 방,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박민재의 방이었다. “여긴 내 집이야. 난 동의 못 해!” 강서우가 팔을 뻗어 앞을 막아섰다. 공기가 순간 살벌해졌다. 박민재의 표정은 몹시 험악해졌다. “강서우, 송아가 다쳤잖아. 억지를 부리는 것도 시간을 봐가면서 해. 그리고 이 별장은 내가 샀어. 집주인은 나야.” 유송아의 눈동자에 얄미운 만족감이 언뜻 비쳤다. 그녀는 힘겹게 박민재의 목을 끌어안았다. 말하는 도중에는 입술이 거의 그의 턱에 닿을 듯한 자세를 취했다. “오빠, 그냥 내려놔 줘요. 제가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큰 집에 살겠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자극된 박민재의 보호 본능이 솟구쳤다. 그는 강서우를 밀치듯 밀고 나아갔다. “내가 된다면 되는 거야.” 강서우의 다리가 난간에 부딪혀 순간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러나 박민재는 유송아를 다정하게 달래느라 강서우를 보지도 않았다. 유송아를 케어하고 난 박민재가 1층에 다시 모습을 보였을 때, 강서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구름시에서 강서우가 갈 만한 곳이라고는 이 집 아니면 교외에 있는 고모 강혜영의 집이 전부였으니까. 한바탕 화를 풀고 나면 어차피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2층으로 올라가려던 참에, 그는 구석에 떨어져 있는 노란 부적 주머니를 발견했다. 박민재는 문득 강서우가 생일 전에 결혼 날짜를 잡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며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종이에 적힌 날짜를 살펴보고는 핸드폰으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오전 일정을 비워 두라 했다. 전화를 끊은 직후 신용카드로 결제된 내역이 잇따라 알림으로 떴다. 보석, 옷, 가방... 박민재는 대화창을 열고 짧은 문자를 남겼다. [한도는 20억이야. 다 쓰면 집에 와. 외박은 허락 못 해.] 거기에 묻어나는 건 애정 어린 방임과 묵인 같은 것이었다. 갓 결제를 마친 강서우는 그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텅 비는 기분이었다. 10살 때부터 늘 박민재는 강서우를 통제해 왔다. 안 된다고 하면 그녀는 언제나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지금 안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다른 여자를 안고 신혼방으로 들어가 버린 참이었다. 더 이상 말을 들을 이유가 있을까? 쇼핑할 기분도 사라진 강서우는 산더미처럼 쌓인 쇼핑백을 들고 구름시에서 가장 화려한 호텔로 가서 최상층 펜트하우스를 잡았다. 그리고 가장 비싼 와인과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포근한 물에 몸을 담가 피로를 씻어 낸 강서우는 와인 잔을 들고 커다란 창밖으로 펼쳐진 구름시의 야경을 바라봤다. 이 도시를 평생 떠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연달아 두 잔을 비운 강서우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내일 오전 10시 이스턴 카페에서 만나요. 돈을 주면 바로 사인할게요.] 답장은 금방 왔다. [알겠습니다.] 미래 그룹은 강서우와 박민재가 함께 세운 회사였다. 창업 초기 박민재는 강서우에게 10%의 주식을 넘겼다. 두 개의 별장도 박민재가 강서우에게 선물한 든든한 보장이다. 이렇게 서로 인연의 끈을 엮어두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고 강서우는 순진하게 믿어 왔다. 이런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고, 동시에 박민재가 이룬 노력에 대한 애틋함에 강서우는 주식 배당금에 한 푼도 손대지 않았다. 전부 회사 재투자금으로 돌려주며 그를 뒷받침해 온 셈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면 모든 걸 완전히 끊어내야 했다. 밤잠에 들려 할 무렵, 박민재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호텔에 연락해서 다음 주 월요일까지 결제했으니 그동안 화 풀고 있어. 월요일에는 결혼하러 구청에 가자.] 강서우는 옷가지들을 살피다가 부적 주머니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그녀는 박민재의 문자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는 다른 여자를 자기 집에 들이고는 호텔 숙박비를 대신 내주며 결혼하자는 말이나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란 말인가. 그가 무슨 권리로 강서우가 순순히 결혼해 줄 거라고 믿는 건지도 의문이었다. ... 밤 11시 반 무렵, 강서우는 통증 때문에 깨어났다. 마치 위 속에 불이 난 듯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창업 초기, 강서우가 투자자들을 만나려고 하루에 네 번이나 술자리를 돌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강서우의 유일한 바람은 박씨 가문에서 홀대받던 박민재가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위에 구멍이 날 만큼 술을 퍼마시고 병원에서 반년을 요양해야 했다. 그 후로 박민재는 강서우가 회사 일에 직접 나서는 걸 극도로 반대해 왔고, 그냥 집에 안주하길 원했다. 그 기억이 흘러가기 전에 고통이 또다시 강서우를 엄습해 왔다. 강서우는 침대 머리맡 서랍을 열어 늘 두던 약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곳은 호텔이지 그와 함께 살던 집이 아니었다. 파도처럼 들이치는 통증에 강서우는 옆으로 몸을 웅크리고 하얗게 질린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처음에는 조금만 견디면 될 줄 알았지만 10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더 시간을 끌면 위험하겠다고 판단한 강서우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갓 119를 누르려는 순간 박민재가 전화를 걸어왔다. 사람은 가장 연약하고 힘든 순간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법이다. 강서우는 수화기 속 익숙한 번호를 바라보며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며칠간 억지로 버텨왔던 단단한 외피가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강서우는 수락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건너편에서 분노에 찬 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서우, 넌 송아를 왜 그렇게 싫어해? 네 제일 친한 친구였잖아.” 한 글자 한 글자가 강서우의 정신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이를 악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송아 씨가 또 왜?” 달라진 목소리를 조금만 신경 써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텐데, 박민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되레 불만과 화를 더욱 쏟아냈다. “이제 와서 모른 척이야? 강서우, 너 언제부터 이렇게 양심 없는 사람이 됐어? 송아가 천식 있는 거 알면서도 집 안에 소독약을 잔뜩 뿌려 놓고, 욕실에는 또 무슨 향초 같은 걸 깔아놨더라. 송아가 자칫하면 숨 막혀 죽을 뻔했다고!” 강서우는 하얀 입술을 질끈 깨물다가 비웃음 같은 숨을 짧게 내쉬었다. 소독약은 집 안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워내기 위해 뿌린 것이었고, 향초는 잠을 잘 못 이루는 박민재를 위해 특별히 구해온 숙면용 아로마였다. “난 미래를 보지 못해. 송아 씨가 온다는 건 방금 알았어.”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박민재의 숨소리는 거칠게 이어졌다. 터뜨릴 화가 남아 있지만 애써 삼키는 듯했다. 그러던 순간 강서우의 위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뒤틀렸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짧은 신음을 뱉고 말았다. 핸드폰조차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너 왜 그래?” “민재야, 나 배가 너무 아파... 지금...” 말을 제대로 마치기도 전에, 박민재의 목소리가 피로감과 냉랭함을 머금고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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