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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김 집사, 이 사람 누구예요?” 이윤아는 임유나의 말을 듣지 않고 마치 여기서 오랜 시간 생활한 것처럼 익숙한 태도로 김 집사에게 일부러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에 상처라도 내고 싶었지만 이를 꾹 참았다. 김 집사는 순간 당황했다. 어제 강시후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강시후는 어제 내내 임유나 곁에 붙어있었기에 집사에게 일일이 설명할 틈도 없었다. 그래도 김 집사는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여자가 아마 새로운 여주인일 거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강시후가 직접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말해준 적이 없었기에 김 집사도 뭐라고 설명할지 몰랐다. 김 집사가 말을 망설이는 동안 이윤아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졌다. 그때 임유나가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의 냉소에 이윤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가 곧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임유나의 말에 이윤아는 더욱 기가 막혔다. “아줌마, 우리 허니의 친척이세요? 제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아줌마?” 이윤아의 머릿속에서 새하얘졌다. 임유나가 살짝 옷깃을 정리하는 동작에 이윤아는 더욱이 황당했다. “너, 그 사람이랑 잠자리까지 같이 한 거야?” 임유나는 흠칫했다. 이윤아의 시선을 보자 곧바로 상대방이 오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머리카락 때문에 목덜미가 살짝 간지러워 옷깃을 정리했는데 강시후가 졸라서 남은 흔적이 그대로 보인 것이었다. 임유나는 피부가 희고 고왔기 때문에 조금 퍼렇게 멍이 든 자국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옷깃 사이로 보이는 그 자국은 마치 남녀가 사랑을 나누면서 남겨진 흔적 같았다. “아이고, 민망해라. 그걸 보게 되었네요.” 임유나는 별 설명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강시후를 엄청 원망했다. 그녀는 옷깃을 정리하면서 드러난 그 흔적을 감추려고 했다. 이윤아는 임유나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정말로 뻔뻔하고 저질스러운 여우 년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강씨 가문이 아무 여자나 받아들이는 줄 알아? 사람은 자기가 설 자리를 알아야 해. 보기 흉해지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게 나을 거야. 전에 너 같은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다 망신만 당했어.” 평소 이윤아는 강시후에게 마음이 있는 여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압박을 가하곤 했다. 그 오만한 태도는 수많은 여자를 울리고 떠나게 했다. “아, 이제 알겠다. 우리 허니 엄마시구나!” 임유나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김 집사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사모님이 사람 약 올리는 데는 정말 재간이 있으시네.’ 임유나가 눈빛을 보내자 김 집사가 바로 그 뜻을 알아채고는 서서히 앞으로 다가섰다. “그게 아니라 이분은 아가씨의 이모이십니다.” “이모? 먼 친척이었구나? 이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시길래 강씨 가문의 친척 어른인 줄 알았어요. 아니었네요.” 임유나는 일부러 주변에 다 들리도록 말하며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진짜 겉만 번지르르하네.” 이때 누군가 억지로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이윤아는 분노의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하인들이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방금 웃음을 터뜨린 사람은 찾지 못했다. 그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동안 아무도 감히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너 여기서 쫓아낼 수 있는 거 알아?” 이윤아가 손가락으로 임유나를 가리키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내가 너 여기서 쫓아낼 수 있는 거 알아~” 임유나는 목소리를 바꾸어 이윤아의 말투를 따라 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윤아는 말싸움으로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강시후에게 마음이 있는 여자들은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커리어 우먼에 귀여운 인턴, 그리고 온화한 분위기를 가진 선생님까지... 각자의 성격도 참 다양해서 어떤 여자는 조금만 건드려도 화를 냈는가 하면 또 어떤 여자는 겉으로는 웃으면서 계산된 말을 던지며 감정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이윤아의 승리였다. 강시후가 그녀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고, 또 이윤아는 강씨 가문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강씨 가문의 쌍둥이 남매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다른 여자들은 감히 이윤아에게 쉽게 덤비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의 이 여자, 임유나는 그동안 봐왔던 누구와도 달랐다. 여우 같은 그녀는 고등학생인 강로이보다도 더 유치했고 다루기 어려웠다. 오랜만에 이윤아는 제대로 화가 치밀었다. 임유나는 그런 이윤아를 아주 가볍게 자극하며 쉽게 승기를 잡았다. 그때였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강시후가 내려오는 소리였다. 이윤아는 머리를 굴리더니 마치 원래의 모습을 감추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점잖게 말했다. “아가씨, 정말 너무 무례하네요!”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다짜고짜 강시후에게도 따지듯 물었다. “시후 씨, 이 여자를 데려오면 내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거죠? 다음 주면 로이도 돌아올 텐데 말이에요. 집을 떠나 있던 로이가 시후 씨를 제일 보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모르는 여자가 있으면 로이가 얼마나 상처받겠어요...” 임유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갖다 붙이네.’ 강시후가 마지막 계단을 내려올 때 마침 이윤아의 말도 멈추었다. 그는 김 집사를 슬쩍 보더니, 감정 없는 목소리로 한 마디만 내뱉었다. “손님을 모셔다드리세요.” 이윤아는 이 말에 임유나를 쳐다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봐라, 내가 널 쫓아낼 수 있다고!’ 그런데... 정작 쫓겨난 사람은 본인이었다. “이 여사님, 이쪽으로 오시죠.” 김 집사가 예를 갖춰 이윤아를 안내하자 그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물었다. ‘김 집사가 잘못 들으신 거 아니야? 쫓겨나야 할 사람은 저 여잔데?’ “허니, 저 사람 누구야? 강씨 가문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야?” 임유나는 소파에 앉아 강시후에게 손짓하더니 장난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덧붙였다. “나 쫓아내겠다고 하던데?”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강씨 가문을 대표할 자격도 없어. 여기서는 네 말이 곧 법이야. 너만이 사람을 내보낼 수 있어.” 임유나는 타고난 연기자였고 강시후는 그녀와 합이 척척 잘 맞았다. 다른 사람은 함부로 그녀를 감당할 수 없었는데 이 상황을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강시후에게 임유나는 흡족해했다. 하지만 강시후의 말은 진심이기도 했다. 이윤아는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김 집사에게 떠밀리듯 별장을 나온 후 한참을 멍하니 서 있고서야 겨우 현실을 받아들였다. ‘세상에! 저 여우 같은 여자가 한 수 위라니. 강시후를 자기편으로 완전히 끌어들였어!’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이윤아는 다시 들어가도 강시후에게 잘 보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곧바로 강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윤아는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이번에 나타난 그 여자는 전에 봐왔던 누구와도 차원이 달랐다! 그러니 강로이에게 자신이 당한 것을 호소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사이, 별장 안에서. “강 대표님, 보아하니 그동안 주위에 여자가 많았나 봐?” 강시후는 속으로 끙하고 당황했다. 분명 이윤아가 쓸데없는 말을 한 게 틀림없었다. “무슨 강 대표님이야. 유나야, 내가 네 허니라며.” 강시후는 말을 하며 임유나 옆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사실 말이야. 그동안 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려던 찰나, 집 안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임유나는 턱짓으로 전화기를 가리키며 받아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시해. 우리 대화가 더 중요한데?” 강시후는 여전히 임유나와의 시간을 방해받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임유나는 말없이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결국 3초도 가지 않아 강시후는 더 버티지 못하고 순순히 전화를 받으러 갔다. 강시후가 전화를 들었다. “여보세요.” 그 말을 하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자 바꿔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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