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소구에게 느닷없이 걷어차여 넘어진 소만리는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가리며 급히 해명하려 했고, 소구는 다시 그녀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나쁜년! 만영이가 왜 너 같은 년때문에 자살을 해야 돼?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너야!"
소구는 악에 받쳐 이를 악물었고, 소만리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했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저랑 모진이가 인연이 아닌 거에요. 저는 만리 원망 안 해요."
병실 안에서 소만영의 울음 섞인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소만리는 입가에 피가 맺히고 머리가 웅웅 울리며 아팠다. 그녀가 아픔을 참으며 고개를 쳐든 순간, 소만영이 기모진의 가슴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기모진은 그녀를 감싸안고 있었고, 그의 매력적인 눈에는 흐느끼는 소만영을 향한 한없는 부드러움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따뜻해보였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소만리의 마음은 너무나 아팠다. 만약 그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 기모진의 아내는 얹혀사는 신세의 자신이 아니라 소만영일 것이다.
비록 기모진과의 그 일은 그녀가 의도하고 꾸민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
"만영아, 너는 지금 이 상황에도 이 계집애를 감싸니? 만약 이 계집애가 그런 일을 꾸미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기씨 집안 며느리는 바로 너야! 너도 모진이랑 헤어질 수 없어서, 헤어지는게 너무 들어서 자살 시도까지 했잖아, 아직도 이 계집애를 감싸주다니…착해도 너무 착하구나!"
소구는 딸 때문에 분개했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소만영은 한숨을 내쉬며 상처받은 눈빛으로 소만리에게 말했다.
"만리야, 모진이 좋아한다고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 난 너와 다투지 않아. 그런데 왜 이런 수단으로 모진이를 뺏어갈려고 하는거야?? 너한테 정말 실망이야."
"만영 언니, 이 일은 내가 한게 아니야……"
소만리가 변명을 하자 소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 나쁜 계집애, 아직도 억지 부린다 이거지? 좋아, 어디 내 손에 죽어봐!"
소구가 병실에 있는 의자를 들어 휘두르자 소만리는 몸을 움츠리며 본능적으로 아랫배를 감싸 안았다.
"아직도 안 꺼져? 여기서 맞아 죽고 싶어?"
이때 등뒤에서 기모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와 동시에 의자를 든 소구의 동작이 잠시 멈췄다. 소만리는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바닥에서 기어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기모진은 여전히 소만영을 부드럽게 안고 있었고, 그런 모습에 그녀의 몸과 마음의 통증은 더한층 심해졌다.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라면 소만리는 빨리 이 곳을 떠나야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맞아서 부어오른 뺨을 감싸쥔채 싸움 구경하면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절뚝거리며 도망치듯 뛰어나왔다. 병원 정문까지 뛰어왔을 때, 그녀는 휴대폰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른 순간,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안에 있는 기모진이 보였다. 포스가 넘치는 자태와 잘생긴 이목구비를 가진 기모진은 언제나 사람들 속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상한것은 기모진이 이렇게 빨리 나왔다는 점이다. 기모진은 소만영 곁을 더 지켜줘야 하지 않나? 더 깊게 생각하기를 포기한 소만리는 고개를 숙인 채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녀는 마치 도둑처럼 조심스럽게 소만영 병실 앞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병실 입구 벽 모퉁이에 휴대폰이 떨어져 있었다. 휴대폰만 찾으면 바로 가려고 했던 소만리가 허리를 굽혀 휴대폰을 줍는 순간, 의외로 병실안에서 소만영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흥! 방금 그 촌년이 맞아서 고개를 못 드는 모습을 생각하면 진짜 통쾌해!"
소만리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촌년은 자기를 말하는 것인가?
"흥! 그날 밤 내가 방을 잘못 들어간게 아니였다면, 모진과 밤을 함께 한 사람은 나였어! 어떻게 그깟 촌년이! 모진이가 그 촌년한테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역겨워!"
이 말소리가 떨어지자, 소만리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지며 온몸이 굳어져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머릿속은 그 일에 관한 진실이 혹시 이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감히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