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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장

소만리가 그 말을 하는 동시에 기모진의 품은 텅 비었다. 삽시간에 그의 심장으로 쓸쓸함이 밀려들었다. 그는 그제서야 꿈에서 깬 듯 했다. 눈 앞에 있는 그 얼굴을 보고서야 기모진은 방금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그녀를 탐욕스럽게 안았다. 심지어 그녀도 마음 아파하며 자신을 꽉 안아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게 다 순전히 그 얼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 예전의 그녀와 똑같은 그 얼굴.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왔어요?” 반기는 듯한 소만리의 목소리에 모진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약혼자가 왔어요.” ‘약혼자?’ “손님이 오셨나?” 남자의 목소리가 저만치서부터 다가왔다. 기모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 목소리가 아주 익숙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낯선 목소리도 아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천미랍의 약혼자라면 정말이지 깜짝 놀랄 노릇이었다. “모진이, 너냐?” 기모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검은 양복을 입은 기묵비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어깨는 밖에 내리는 비로 점점이 젖어 있었지만 신사적인 그의 풍모를 해치지는 않을 정도였다. 두 쌍의 검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깊은 밤의 그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일순 불꽃이 이는 것 같았다. 기모진의 눈에서 한 줄기 불길이 타오르는 듯 했다. “누구신가 했더니......” 기모진이 천천히 일어섰다. 이때 소만리가 미소를 띠고 기묵비의 옆으로 다가가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껴안았다. “제 약혼자 기묵비 씨에요.” 웃으며 소개를 하더니 의문에 찬 눈동자가 기묵비의 온화한 얼굴로 향했다. “방금 ‘모진이’라고 하던데 두 분 아는 사이에요? 아, 이제 보니 두 분 다 기 씨……” “내가 전에 말했던 조카가 바로 모진이야.” 기묵비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창 밖의 밤처럼 부드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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