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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장

소만영은 할아버지의 의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기모진의 생각이 중요했다. 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을 하고 싸늘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날 믿어 줄 거지, 응?” 소만영은 가녀린 목소리로 말하며 기모진의 손을 잡아 감정을 호소해 보려 했다. 그러나 기모진은 차가운 눈으로 흘끗 볼 뿐이었다. 의혹에 찬 시선이 소만영의 얼굴을 한 번 스쳐갔을 뿐 아무런 대답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저기, 저……” 소만영은 상처받은 듯 멀어지는 기모진의 등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화정은 급히 위로했다. “만영아, 괜찮다. 모진이는 똑똑한 사람이니 속아 넘어가진 않았을 거야!” 소만영은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가서 모진 씨를 좀 보고 올게요.” “만영아” 괴로운 듯 딸을 부르던 사화정은 소만리가 시선에 들어오자 불만스럽다는 듯 노려봤다. 소만리는 증오를 띤 사화정의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 “제 기억이 맞다면 사모님께서는 분명 소만리가 후안무치하고 악독한 여자라는 걸 직접 봤다고 하셨죠. 지금 보니 댁의 따님이 그런 사람인 것 같네요.” “하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어요!” “고소는 소만리가 해야겠는데요. 댁의 귀한 따님이 다른 사람과 짜고 결백한 그녀를 중상모략 해서 납치했다는 죄명을 씌웠잖아요!” “이게……” 소만리는 사화정이 소만영을 싸고돌며 울분을 터트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진상이 이렇게 명확한데도 사화정은 소만영을 감쌌다. 이치를 따져야 한다지만 때로 감정이라는 것은 이기적이어서 시비조차 제대로 가릴 수 없게 만드는 법이었다. 소만리는 엷은 쓴웃음을 띠고는 와인 잔을 들고 자리를 떴다. 밤이 깊어졌다. 여름 끝의 바람이 불어와 소만리의 뺨을 스치고 갔다. 복도를 지나서 그 끝에 있는 야외 테라스까지 갔다가 낯익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기모진의 훤칠한 몸이 유리 난간에 기대어 오른손에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 그 옆의 테이블에는 와인이 한 병 놓여있었다. 가만히 잔을 들어 와인을 단숨에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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