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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장

소만리는 발코니로 나갔다. 그녀는 손을 들어 습관적으로 약지에 있는 결혼반지를 만지려고 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휑했다. 기모진을 위해 단서로 남겨 두려고 일부러 호텔 방 카펫 위에 떨어뜨린 걸 그녀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반지는 지금 기모진의 손에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남긴 단서를 기모진이 꼭 봤을 것이라고 믿는다. “모진, 우리가 또 이런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상황에 놓일 줄은 몰랐네.” “하지만 이번에는 고승겸이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을 완전히 씻어 버리고 내 생각과 기억을 최면으로 세뇌시켜 버릴지도 몰라.” “그렇데 되더라도 날 제발 이해해 줘, 모진. 난 알아. 당신이 날 이해해 줄 거라는 걸.” 소만리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딸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고 소만리는 이 발자국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당신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고승겸의 무심한 말투가 소만리의 귀에 꽂혔다. 소만리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고승겸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잠자코 서 있었다. 고승겸은 소만리의 외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당신한테 한 가지 말해 줄 소식이 있어. 기모진이 산비아에 왔다는군.” 고승겸은 소만리를 바라보았고 그녀가 강하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고승겸은 그런 소만리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듯 물었다. “왜 이제 신경도 안 쓰여?” 소만리는 그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구부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내 남편은 날 꼭 찾아낼 거야. 원래 예상했던 일인데 뭐가 놀랄 게 있어.” 소만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그제야 맑고 깨끗한 눈망울을 들어 올려 고승겸의 희미한 시선을 마주했다. 고승겸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담담한 그녀의 미소를 지금 또다시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소만리, 당신은 정말 특별해.”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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