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식당 안.
정승진은 이가인이 무서운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더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선아 씨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안된다고 딱 잘라 거절한 걸 내가 억지로 협박한 거니까.”
그 말에 이가인이 시선을 들어 정승진을 바라보았다.
“만약 너랑 사귀고 나면 바로 선아 씨랑 절교하라고 할 거야. 너무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해서 나 상처받았어.”
정승진의 농담 섞인 말에도 이가인은 전혀 웃지 않았다.
“병원 규정에 사내 연애 금지 조항은 없지만 같은 과 안에서 그것도 정 교수랑 간호사가 연애하게 되면 말이 끊이지 않을 거야. 넌 교수님이라 아무런 타격이 없겠지만 나는 그런 거 견딜 자신 없어.”
“그게 문제인 거면 일단 비밀로 하다가 너 수간호사 된 뒤에 공개하는 거로 해.”
이가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작업 거는 건 네 마음인데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정승진은 그 말에 조금 억울하다는 얼굴로 얘기했다.
“나도 네가 날 받아주기 전까지는 사람들한테 티 내고 싶은 생각 같은 거 없었어. 그런데 네가 내 연락을 싹 다 무시했잖아.”
이가인은 이에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받아쳤다.
“당연한 거 아니야? 원나잇이 왜 원나잇인데. 하룻밤 함께한 것으로 깨끗하게 끝이니까 원나잇이지. 그리고 너 정도면 여자들이 줄을 섰을 텐데 왜 자꾸 나한테 이래? 혹시 지금 나 놀리는 거야?”
그러자 정승진이 두 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대며 말했다.
“그날 클럽에서 내 손을 먼저 잡은 것도 너도 그다음 날 먼저 모른 척 한 것도 너야. 그리고 기껏 도와줬더니 칼같이 선 그은 것도 너고. 자, 이제 말해봐. 누가 누굴 놀리는 건지.”
그는 눈을 올곧게 마주쳐 오며 애교 섞인 말투로 불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귀여워 보여 이가인은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아무런 말이나 내뱉었다.
“너한테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뻔뻔한 그녀의 말에 화가 날만도 한데 정승진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바로 대꾸했다.
“맞아. 그건 내가 못 참고 멋대로 끼어든 거니까 인정해.”
이가인은 아주 쉽게 인정해버리는 그의 모습에 괜히 양심이 아파 났다.
“아무튼 즐길 상대를 원하는 거면 다른 데서 찾아. 나는 너 상대해줄 여력 같은 거 없으니까.”
“내가 그저 너랑 단순히 즐기기만 할까 봐 그래?”
“네가 내 눈에 차지 않아서라는 생각은 못 하는 거야?”
이가인이 되묻자 정승진이 미소를 지었다.
“네기 그런 걱정을 할 얼굴은 아니지 않나?”
재수 없기는 해도 맞는 말이라 이가인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정승진은 천천히 미소를 거두어들이더니 조금 지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나랑 연애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 내가 말해줄까? 괜히 공개했다가 얼마 못 가 헤어지면 괜히 너만 우스워질까 봐 그러는 거잖아. 내 말이 틀려?”
이가인은 그 말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사실 네가 그런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가. 나도 내가 너랑 언제까지 사귈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나는 연애를 하면 연애 사실을 공개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 뭐 불륜한 것도 아니고 굳이 비밀스럽게 연애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만약 네가 정 공개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면 비밀연애를 할 의향도 있어.”
이가인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대체 왜 나야?”
“왜일 것 같은데?”
이가인은 정승진이 왜 굳이 그녀와 연애를 하려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만약 고현우처럼 처음부터 둘 사이를 비밀로 하자고 하면 의중이 어느 정도 파악이 돼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라도 하지 뭣 하나 꿀릴 게 없는 다 가진 남자가 자꾸 순수한 의도라는 듯이 다가오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혹시 날 병원에서 잘리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진지한 이가인의 질문에 정승진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우리가 무슨 원수지간도 아니고. 생각이 왜 그리로 튀어?”
“이것도 아니면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응.”
“너랑 자는 게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