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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장

나민준은 잠깐 고민하더니 한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명준 회장이 나를 찾아왔어. 수아 씨한테 접근해서 수아 씨를 고서준 옆에서 떨어지게 만들어달라고.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 나는...” 그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나는 모든 것을 다 깨달아버렸다. 나민준은 정말 고명준이 내 곁에 붙여둔 사람이 맞았다. 그 목적은 내가 고서준의 곁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고. 심장이 욱신거렸다. 줄곧 믿어왔던 사람이 이제껏 나를 속여왔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나는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 아무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때 차량이 속도를 줄이며 어딘가에 멈춰 섰고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음은 여전히 고통스러웠고 배신당한 기분에 머리가 멍해져 갔다. 아마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나민준이 나에게 접근한 이유가 고명준의 지시 때문이 아닌 나라는 인간이 좋아서, 나에게 정말 호감이 생겨서라고 답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왜 그랬어요? 내가 고통스러워하고 상처받을 거라고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나를 잃을 수도 있을 거라는 건 생각 안 해봤어요?” 나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제는 사랑했던 그 사람을 내려놓고 나민준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다. 나민준이 나로 인해 상처받는 게 싫어서 그래서 그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상처를 받는 건 나였다. 나는 또다시 바보처럼 내 진심을 내어줬고 상대방에게 나를 상처 줄 수 있는 권력을 쥐여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민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 후회나 죄책감이 있기를 바랐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복잡했고 여전히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이제는 정말 환상에서 깨야 할 때가 왔다. 이제는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켠 후 최대한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노력했다. “선배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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