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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장

여재민은 당황한 듯 고서준을 향해 다시 한번 시선을 돌렸다. 나도 그를 바라봤지만 고서준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고씨 가문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듯 여재민은 나지도 않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난처함을 감추려 했다. 이지현은 억울한 표정으로 고서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서준아, 나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할아버지가 너더러 나 도와주라 했잖아. 교장 선생님도 나서 주셨는데... 수아가 날 왜 저렇게 몰아붙이는지 모르겠어.” 이지현의 말은 겉으로는 순진하고 진솔해 보였지만 말끝은 은근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더불어 내가 여재민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이지현 네가 진즉 이런 생각을 했다면 어제 같은 어리석은 일도 벌어지지 않았겠지. 왜 이제 와서야 말을 잘하는 건데? 참 가소롭군.’ 여재민은 그제서야 기세를 되찾은 듯 더 자신감 있게 말했다. “수아 학생, 우리 학교는 명문대야. 이런 소문이 퍼지면 학교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이 조건을 제시할 타이밍임을 알았다. “그 말씀은 어제도 들었는데요.” 내가 조건을 꺼내려 하자 여재민은 태도를 바꾸어 말했다. “물론 학교는 모든 학생의 권리를 존중해. 수아 학생도 손해 보지 않게 할 거야. 학교 이사회가 결정한 바에 따라 수아 학생에게 한 학기 등록금 면제를 해주려고 하네.” 그러고는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어떤가?”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만약 이게 부족하다면 더 논의해볼 수도 있어.” 내 태도가 강경하자 여재민은 마지못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1년 등록금 면제?” “등록금 전액 면제?” 나의 침묵이 이어지자 여재민은 다시 한번 도움을 청하듯 고서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서준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이지현 앞에서 좋게 보이려는 듯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 “등록금 전액 면제에 졸업 후 대기업 입사 보장까지?” 여재민이 고씨 가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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