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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결혼 독촉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벨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서태윤은 시선을 돌리고 느긋하게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의 발신자 번호를 흘긋 쳐다보니 본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통화가 연결되자 휴대폰 너머로 집사 이철웅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할머님께서 갑자기 협심증 발작을 일으켰는데 얼른 집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서태윤의 안색이 돌변했다. 하지만 별다른 리액션 없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제자리에 넣은 다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보상은 나중에 다시 얘기해.” 말을 마치고 나서 일말의 미련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임다인은 맥이 탁 풀리면서 마치 바람 빠진 풍선을 연상케 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지만 실망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보아하니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서씨 가문 본가. 서태윤이 돌아온 것을 본 이철웅은 2층으로 올라가 김말숙에게 보고했다. “어르신, 도련님이 오셨어요.” 김말숙은 곧바로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민첩한 몸놀림으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에 시달리는 척 연기했다. “아이고, 나 죽네!” 게다가 일부러 기침까지 했다. “철웅아, 태윤이 왔어? 이제 가야 할 때인가 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태윤이 느릿느릿 할머니의 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무표정하게 정곡을 찔렀다. “연기 그만 하세요. 멀쩡하신 거 알아요.” 김말숙은 말문이 막혔다. 거짓말이 너무 쉽게 들통나자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잽싸게 태세 전환했다. “이놈아!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야만 코빼기라도 보일 거니?” 서태윤이 대답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려던 찰나 김말숙이 불쑥 끼어들었다.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얼버무릴 생각하지 마. 아무리 바빠도 할머니를 보러 올 시간조차 없을 정도는 아니잖아?” 서태윤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내 묵묵히 할머니의 침실에 있는 소파로 걸어가 앉더니 오만방자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저를 집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뭐죠?” 김말숙은 옆에서 시중을 들어주는 가정부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침대맡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추궁했다. “언제 손자며느리를 데려올 생각인지 물어보려고 불렀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태윤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가더니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머니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손자의 대답에 김말숙이 발끈했다. “걱정 안 하게 생겼어? 내일모레 서른이 되어가는 놈이 아직 연애도 못 해보고 여자 친구조차 없잖아. 네 사촌 형의 아들은 고작 3살이 더 어리지만 벌써 애인이랑 결혼 얘기까지 오갔다고 하더라. 그동안 넌 대체 뭐 했어? 지금도 감감무소식인데 당연히 걱정되기 마련이지! 미혼인 손자만 떠올리면 속이 타서 매일 밤잠이 오지 않을 정도야.” 할머니의 잔소리 폭격에 서태윤은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러 내보냈다. 심지어 가뿐히 무시하고 반박까지 했다. “그건 할머니 사정이고, 어차피 전 괜찮아요.” “이놈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말숙은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태윤아, 솔직하게 말해 봐. 너 혹시... 그쪽에 문제라도 있어?” 조심스러운 말투는 떠보는 듯하면서도 걱정이 묻어났다. 서태윤은 어이가 없었다. 묵묵부답하는 손자를 보자 김말숙은 펄쩍 뛰었다. 이내 다급하게 손짓하며 이철웅에게 말했다. “철웅아, 얼른 정 선생을 모셔 와서 태윤의 몸 상태를 봐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철웅이 서둘러 대답하고 뒤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잠깐!” 서태윤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전 멀쩡하니까 검사 안 받아도 돼요.” 김말숙은 믿기지 않는 듯 거듭 충고했다. “태윤아, 만약 그쪽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떳떳하게 말해. 하루라도 빨리 치료하면 금방 나을 거야.” 서태윤은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진짜 괜찮아요.” “정말?” 여전히 의심하는 할머니를 보자 어금니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렇.다.니.까.요.” 김말숙은 재차 확인하고 나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잔소리를 이어갔다. “정말 문제없으면 얼른 손자며느리를 데려오라고.” 서태윤은 싸늘한 얼굴로 입을 꾹 닫았고, 침묵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 손자 때문에 김말숙은 좋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라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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