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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이 병원 대체 왜 이래? 원장 어디 있어? 당장 가서 원장 불러와!” “제일 잘하는 의사로 불러오란 말이야! 경고하는데 저 안에 누워계시는 분은 일반인이 아니야. 당신들 강현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친히 진주에서 모셔온 진영우 화백님이라고!” “만에 하나 화백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들 절대 가만 안 둬!” 병실 안에서 분노에 담긴 남자의 목소리가 병원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제 막 떠나려던 이지아가 그 소리를 듣고 대뜸 걸음을 멈췄다. “진영우?” ‘진주에서 모셔온 유명 화가라고?’ 전생에 진영우는 그녀의 미술 수업도 들었는데 그 당시 신분 차이가 너무 커서 감히 그녀에게 말을 걸지도 못했다. 한참 생각하던 이지아는 끝내 돌아서서 진영우의 병실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서 굴러온 녀석이야. 썩 멀리 못 가?!” 중년 남자가 그녀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질책을 해댔다. “제가 한번 들어가 볼게요.” “네가?” 이지아의 대답에 중년 남자는 고개 숙여 그녀를 쭉 훑어보더니 볼수록 탐탁지가 않았다. 터벅터벅. 이때 의사 가운을 입은 원장이 허겁지겁 달려와 자세를 한껏 낮췄다. “무슨 일이십니까? 화백님께서 어떻게 되신 거죠?” “어떻게 되신 거죠? 당신들 병원에서 가망이 없대!” 중년 남자는 두렵기도 하고 분노가 차올라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당장 이 병원에서 제일 잘하는 의사로 불러와.” 원장은 이마에 난 식은땀을 쓱 닦았다. “하지만 방금 왔던 의사가 우리 병원 최고의 의사였어요.” “그럼 어떡하지... 진주로 모셔갈 시간이 있을까?” “원장님! 시간이 없어요.” 이때 병실에서 나온 의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진영우 씨가 우리 병원으로 오는 도중에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서 30분 이내에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겁니다.” 30분이라... 30분 안에 대체 어딜 가서 의사를 구해온단 말인가? 이 병원에는 진영우를 구해줄 의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절망과 초조함에 빠져 있을 때 문득 사람들의 귓가에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해볼게요!” ‘쟤가 구할 수 있다고?!’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이지아에게 쏠렸다. 토가 저절로 나오는 여드름투성이의 얼굴에 뚱뚱한 몸매, 거기에 험상궂은 이목구비까지 지닌 소녀가 사람들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는 자신감과 확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봐요, 여긴 병원이에요. 어린 학생이 장난 칠 곳이 아니라고요.” 원장이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가르치려 들었다. 이때 이지아가 머리를 들고 상대를 믿게 만드는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난 아니에요. 정말 제가 구할 수 있어요.” 그녀의 이 한마디에 장내에 있던 뭇사람들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와 중년 남자는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대체 넌 뉘 집 애니? 왜 이렇게 철이 없어?” “이씨 가문 이지아예요.” 이지아는 더 설명하기도 귀찮아 대답을 마친 후 곧장 진영우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차라리 통성명을 말지. 그녀의 대답을 듣더니 뭇사람들의 표정이 확 돌변했다. 의사는 문손잡이를 쥔 이지아의 손을 가차 없이 잡아당겼다. “뭐? 네가 바로 이씨 가문의 말썽꾸러기 폐인 이지아야? 소년원에서 3년이나 갇힌 그 애 맞냐고?” “참나!” “네가 진영우 화백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제가 할 수 있어요!” 이지아의 눈가에 귀찮다는 듯한 기색이 잔뜩 어렸다. 이를 본 원장과 뭇사람들은 버럭 화를 냈다. 구경 나온 행인들도 그녀에게 삿대질하며 야유를 퍼부었다. “이씨 집안에 대체 왜 이런 폐인 따위가 나온 거야? 공부를 못 하면 얌전히나 있지. 왜 이렇게 집안 체면만 구기는 건데?” “얘가 의술을 안다고?” “참나. 소년원에 3년이나 갇힌 불량소녀가 무슨 의술을 알겠어! 허풍도 정도껏 해야지. 제 가족들 다 망치고 이젠 딴사람들까지 망치려고 드네?” “...” 귓가에 맹비난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지아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다가 서서히 고개 들어 차가운 시선으로 원장을 바라보더니 딱 한 마디만 물었다. “다들 안 믿는 거죠?” “하하, 그걸 말이라고!” “누가 널 믿겠어? 당장 꺼져. 환자를 구할 황금 시기를 놓치지 말고!” “지아야, 네가 얼마나 볼품없는 쓰레기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왜? 인제 와서 이 사회에 보복하게? 너 같은 독 덩어리는 얼른 감방에 처넣어야 해!” ‘그래? 좋아!’ 이지아는 문득 입꼬리를 씩 올리고 웃었다. 그녀는 분명 웃고 있지만 아무도 그 미소를 감지하지 못했다. “좋아요!” “다들 나 못 믿고 구하지 말라고 하면, 알았어요 안 구할게요!” “하지만...” “한유리는 굴욕을 참는 법이 없어요! 오늘 똑똑히 보여줄게요. 진정한 의술이 무엇인지!” 말을 마친 이지아가 앞을 가로막은 의사를 밀치고 병실 문을 열었다. 안에 들어선 그녀는 쾅 하고 문을 안으로 잠가버렸다. 모든 동작이 너무 신속하고 날렵하다 보니 원장 일행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지아는 어느새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 “쟤가 대체 뭐 하려는 거야?” “당장 이 문 열어. 화백님이 안에 계신단 말이야. 이지아가 화백님께 함부로 대한다면...” “이지아라고 했나? 경고하는데 안에 있는 분은 진주시의 유명한 화가분이야. 화백님께 무슨 일 생기면 너 평생 후회하게 할 거야 내가!” 시간이 1분 흐르고 곧이어 2분 흘렀다. 하지만 병실 안은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 원장과 경호원들이 힘껏 문을 밀치며 속으로 이지아를 미친 듯이 욕했다. 바로 이때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병실 안에서 이지아가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너 화백님께 무슨 짓 했어? 화백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우리 병원 너 절대 가만 안 둬.” 그녀가 나오자 원장이 재빨리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 진영우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고 이를 확인한 원장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더니 뭔가 생각난 듯 병실 밖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지아 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잡으란 말이야!” 한편 경호원들이 다시 이지아를 찾아 나섰을 때 그녀는 이미 종적을 감췄다. “어디 있어?” “어디 갔지?” 경호원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이지아가 바로 코앞에서 사라지다니. 원장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그는 초조한 목소리로 재빨리 경호원들에게 분부했다. “다들 흩어져서 찾아! 당장 찾아내란 말이야. 진영우 씨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이지아가 바로 범인이라고.” 다만 말을 마친 원장이 고개를 돌리고 병실을 바라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던 못난이가 멍청하긴 하지만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다. 진영우가 금방 병원에 도착했을 때 상황을 놓고 봐선 그들 병원에서 절대 구해낼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만약 진영우가 이 병원에서 죽으면 진씨 일가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고 심지어 원장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멍청이 이지아가 나타났다.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원장은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 만약 진영우가 죽으면 진씨 가문에 알려 이지아를 찾아가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되면 이 병원도 명성을 잃지 않는다. 원장이 한창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꿍꿍이짓을 하고 있을 때 병실에서 갑자기 중년 남자의 희열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백님? 깨셨어요 화백님?!” “여기요! 얼른 여기 좀 와봐요!” 원장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깼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진영우가 금방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증상을 놓고 봐선 죽기 전까지 절대 다시 깨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병실로 달려갔다. 초보적인 검진을 마친 후 원장은 이미 안정을 되찾은 진영우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지금 이 순간 원장은 마치 두뇌가 정지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함께 따라온 경호원과 간호사들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 폐인 이지아가, 못난이 이지아가 정말 의술에 능하고 진영우를 살려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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