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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어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저 대신 대역으로 작전 수행하던 한수연이었어요.” 어제 사망한 사람이라... 바로 한씨 가문의 양딸 한수연이라고? 이건 이지아가 살면서 들은 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대답이다. 비행기 보안 검색을 한수연이 담당한 건 사실이다. 그날 작전 수행할 때 한수연이 현장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가 한유리의 대역을 맡은 일은 둘째 오빠 한유준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난데없이 비행기 추락 사고 사망자가 한수연이고 한유리는 멀쩡하게 한씨 저택에서 살아있다니? 이지아는 코웃음 치고 전화를 끊더니 탁자 위에 휴대폰을 내던졌다. “너 야망 있는 애였네.” ‘돌발 사고를 꾸미고 이로써 한씨 가문 장녀라는 내 자리를 대체하려고?’ ‘유감스럽지만 한수연 너, 실망하게 될 거야.’ ‘왜냐면 내가 환생했거든!’ 한편 그녀는 지금 복수할 수가 없다. 이 몸을 바탕으로 아무런 실력이 없으니 말 그대로 제 몸 하나 간수하기 어려운 처지이니까. 게다가 체내에 수시로 폭발 가능한 독을 품고 있다. 지금 한씨 저택으로 찾아갔다가 문 앞에 발이 닿기도 전에 암암리에 있던 킬러에 의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 다음 날 아침. 오연주가 모셔온 유명화가가 이씨 저택 거실에 와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그 남자는 강현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서재 안. “이분이 바로 이유영 씨죠?” 화가가 흐뭇한 얼굴로 이유영을 살펴보았다. “제가 항상 보는 사람들마다 얘기하거든요. 이씨 가문에 천재가 나타나 고등학교도 바로 운성 고등학교로 들어갔다고요.” 옆에 있던 이유영이 화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녀는 사람 마음을 녹이는 어여쁜 얼굴을 지녔다. 얌전하고 온화한 모습에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에 비해 이지아는 험상궂은 외모에 차갑고 쌀쌀맞은 태도가 아무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화가가 웃으며 덕담을 몇 마디 더 건넨 후에야 이지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쪽은?” “이지아예요.” “이지아?”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화가의 미소가 대뜸 굳어지고 눈가에 경멸의 기운이 스쳤다. “이제 막 소년원에서 풀려나온 그 이지아 씨 말인가요? 전에 명화에 대해 배워본 적 없죠?” 오연주는 소년원이라는 단어와 선생님이 내던진 질문을 듣고 있자니 안색이 더 일그러졌다.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릴 줄은 알아요.” 심지어 펜만 들었다 하면 명화가 탄생된다. 이지아의 말을 들은 이유영이 옆에서 저도 몰래 야유의 눈빛으로 변했다. 배운 적은 없는데 그릴 줄은 안다고? 이보다 더 우스운 말이 있을까? 이유영은 실소를 터트렸다. 옆에 있던 선생님도 그런 이지아가 더욱 아니꼬웠다. “지아 학생, 그림을 배운 적 없는 건 괜찮지만 그렇게 허풍을 치면 쓸까요?” “모르면 모른다고 해요. 배울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으니까!” 한편 이지아는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선생님을 야유하듯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는 그림 그릴 줄 알뿐더러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명화 거장이다. 그녀의 그림은 아무거나 한 폭 내놓아도 몇백 억대의 고가에 팔릴 수 있다. “이번에 있을 상류층 전시회에 모두 300여 개의 명화가 전시될 겁니다.” “그중에서 메인 작품은 한 거장이 5년 전에 무려 1분 내로 완성한 한 폭의 작품이에요!” “지아 학생!” “강의에 집중하세요. 이틀 뒤면 전시회가 시작되는데 대체 배울 마음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선생님은 그녀가 아예 강의를 안 듣자 분노가 차올랐다. 이때 이지아가 머리를 들고 차분한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그쪽 수준으론 날 가르칠 그릇이 못 돼요.” 선생님은 순간 멍하니 넋 놓고 말았다. 그는 하마터면 제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살다 살다 이토록 거만하기 짝이 없는 학생은 또 처음이니까. “이씨 가문의 두 딸아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더니. 오늘 드디어 몸소 겪게 되네요. 항간의 소문이 소문만은 아니었군요.” “뭐든 다 안다고요? 그럼 말해봐요. 이 그림은 누가 그렸는지.” 선생님이 싸늘한 말투로 질문했다. 이어서 서재 안의 강의 스크린에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그림이 비쳤다. 이지아는 한눈에 바로 알아봤다. 그녀 본인의 작품이었으니까. 다만 이건 모조품이었다. 그녀의 작품을 모방한 거장급 모조품이었다. “언니, 얼른 말해. 왜 멍하니 넋 놓고 있어? 방금 뭐든 다 안다고 했잖아.” “얼른 말해봐.” 이유영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 관심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지아의 눈엔 그 미소가 더없는 야유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이지아가 그림을 보고 멍하니 넋 놓은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아 학생처럼 그림을 배울 자세도 안 됐고 소년원에서 풀려나온 학생들은 도통 가르칠 수가 없겠네요.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다른 선생님 찾으세요.” 그 화가는 소년원이라는 세 글자에 일부러 힘주며 말을 내뱉고는 서재를 나서려 했다. 바로 이때 오연주가 인기척을 느끼고 서재 문을 열었다. 선생님이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오려 하자 오연주가 움찔 놀라면서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엄마.” 옆에 있던 이유영이 잔뜩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와 해명했다. “언니가 명화에 대해 잘 안다면서 선생님이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작품을 하나 보여주면서 아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모르는 거예요. 언니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다음다음 날이면 전시회가 열리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인 거죠?” 이유영의 해명을 들은 오연주는 이지아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했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이지아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다. 다만 이때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이지아의 차갑고 싸늘한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오연주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고작 그 눈빛 하나로 오연주는 온몸이 벌벌 떨리고 본능적으로 손을 거둬들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후 그녀가 또다시 씩씩거렸다. “지아 너 진짜 엄마 속 터지게 할 셈이니? 소년원에서 3년이나 교육받았는데 집에 돌아오니 왜 여전히 이 모양인 건데?” “싸움에 무단결석, 도둑질은 막론하고 이젠 하다 하다 허풍까지 늘었어? 제발 좀 유영이처럼 철 좀 들면 안 돼?” “...” 귓가에 울려 퍼지는 질책과 욕설에 이지아는 작품에 푹 빠졌던 사색을 얼른 현실로 끌어왔다. 시선을 돌리자 뒤에서 이유영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 웃고 있었다. 그녀의 무능함과 폐인 같은 처지를 웃고 있었다. 영원히 자신의 발아래에 짓밟힐 이지아를 대놓고 야유하고 있었다. 아니. 이 모든 건 이유영의 오산이었다. 곧이어 이지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자 이유영은 놀랍기도 하고 창피해서 어쩔 바를 몰랐다. “이 그림은 이름하여 [우리 강산]입니다! 재작년 9월 중순에 출시됐고 진주 화가 협회 소속인 유명 화가 진영우 님의 작품이죠.” “판매가격은 26억 원이에요.” “유감스럽게도 이 그림은 진품이 아니라 4대 모조품 중 하나입니다.” “진정한 명화는 국제 명화 거장 한서원 화가의 작품이지요. 한서원 화가가 그린 세 폭의 그림 모두 판매가가 수백억에 달합니다.” “그 세 폭의 명화 이후로 한서원 화가는 더 이상 그 어떤 작품도 창작하지 않았어요. 시중에서도 그분 작품을 구하기가 힘들어졌고요.” “결국 한서원 화가의 세 작품 모두 유명한 거장에 의해 모조품으로 만들어졌죠!” “이 그림이 바로 모조품 중 하나에요!” “...” 한없이 싸늘한 정적이 서재 안에 흘러넘쳤다. 방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오연주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분노로 가득 찼던 눈빛이 서서히 경이로움으로 변했다. 이유영의 입가에 실린 야유 섞인 미소도 돌연 굳어버렸다. 그녀는 스크린 앞에 선 이지아를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차분하고 진중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뼛속부터 차오르는 오만함과 패기, 압도적인 포스가 물씬 풍기는 그녀였다. 이런 유아독존의 기세가 어떻게... 어떻게 한낱 이씨 가문의 딸에게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이유영은 곧장 그녀가 폐인이라 여기며 이렇게 많은 걸 알 리가 없다고 맹신했다. 이유영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짓누르며 미간을 찌푸리고 훈계에 나섰다. “언니 지금 무슨 헛소리야?” “뭔 뜬금없는 국제 명화 거장 한서원?!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생님 앞에서 헛소리 좀 그만 지껄여.” 하지만 곧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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