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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지천무는 병상에 다가와 앉더니 유운철의 맥을 짚었다. 사흘이라는 기한이 다가오자 유운철은 또다시 혼수상태에 빠져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독고구침과 장백초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어쨌든 그들은 일찍이 유운철을 진맥했고 하나같이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흘을 더 버틸 수 있었다는 건 그날 약이 확실히 쓸모가 있었다는 걸 대표할 뿐 그렇다고 그 약을 제련한 상대가 지천무라는 것은 증명할 수 없다. 바짝 긴장한 유해산과 유아린은 지천무의 작은 표정 변화에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유운철은 그들의 가족일 뿐만 아니라 유씨 가문의 기둥이기도 하자. 만약 유운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유씨 가문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어때? 할아버지 살릴 수 있을까?” 지천무가 손을 내리자 유아린이 다급히 물었다. “숨만 붙어 있으면 살릴 수는 있으니 걱정하지 마.” 지천무는 유아린을 위로했다. “젊은 놈이 허파에 바람만 잔뜩 찼군. 이 독고구침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젖내 나는 녀석이 어떻게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독고구침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거야 당연히 실력이겠죠. 신의님이 살리지 못했다는 건 실력이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지천무는 가차 없이 반박했다. “뭐라! 감히 날 유명무실하다고!” 독고구침은 화가 나서 두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렸다. 평생 신의라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던 독고구침이 한참 젊은 애송이에게 이런 평가를 받다니, 정말 화가 나고 얄미웠다. 독고구침은 화가 나다 못해 결국 웃음이 나왔다. “좋아. 그렇다면 네놈이 어떻게 치료하는지 내가 두 눈 뜨고 똑똑히 쳐다볼 것이다. 네가 만약 정말 치료할 수 있다면 난 물구나무를 선 채 개똥이라도 먹을 거야!” 그러자 지천무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윽, 더러워요. 근데 기대가 되네요.”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어디 시작하거라!” 독고구침은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다면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시죠.” 지천무는 작은 케이스 하나를 꺼냈고 그 안에는 길이가 서로 다른 9개의 은침이 들어있었다. 지천무는 먼저 환자의 옷을 풀고 은침 하나를 집어 손가락으로 튕겼고 마침 그 은침은 환자의 기해혈에 꽂혔다. “비침자혈이야!” 장백초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충격과 불신에 사로잡혔고 독고구침도 마치 외계인이라도 본 듯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 신의님, 저게 아주 대단한 기술인가요?” 두 신의의 표정에 유아린은 궁금증이 생겼다. 장백초는 지천무의 시침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대단한 기술뿐이겠어요? 이건 가장 고명한 수법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심지어 저도 아직 못 배운 수법입니다.” “하다 보면 되겠죠. 그리고 수법이 뭔 소용 있겠어요. 보기만 번지르르했지, 효과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허성진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했다. “아니요.” 하지만 장백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하다 보면 되는 수법이 아닙니다. 비침자혈은 의원이 기운으로 침을 제어하는 수법인데 이런 수법을 가진 자는 모두 의술이 뛰어난 자이죠. 내가 저 분에게 실수한 듯하네요.”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지천무는 여섯 개의 은침을 차례로 환자의 몸에 꽂은 다음 한 손으로는 환자의 몸을 눌렀다. 그리고 이내,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환자의 몸에 있는 여섯 개의 은침이 갑자기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빠른 속도로 검게 변했다. 유아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날 지천무가 그녀의 옷을 벗긴 건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다. 약 1분 뒤, 유운철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할아버지!” 유씨 가문 사람들은 다급히 병상으로 달려왔고 유아린은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렸다. “독고 신의님,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운철은 눈물을 흘리며 독고구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 순간 독고구침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이 젊은 친구가 구해드렸습니다.” 이때 장백초가 설명했다. “이 친구가요?” 유운철은 지천무를 천천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 신의님, 농담도 참. 이렇게 어린 친구가 어떻게 절 구한단 말입니까.” “부끄럽지만, 여태 신의라고 자부하며 살았던 저는 오늘 이 젊은 친구의 의술을 보고 전 단지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을 끝낸 장백초는 몸을 돌려 지천무에게 허리를 굽혔다. “미안하네. 내가 견식이 좁았어. 용서해 주게.” “괜찮아요.” 지천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하게 대답했다. “젊은이, 정말 자네가 날 구했는가?” 너무나도 앳된 외모에 유운철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 정말 지천무 씨가 구해드렸어요.” 유아린의 말에 유운철은 병상에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그래, 천무 군. 고맙네, 고마워.” 이때 유해산이 은행 카드를 지천무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를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 카드에 20억이 들어있으니 꼭 받아줘.” 지천무는 굳이 거절하지 않고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천무 군, 자네 결혼은 했는가?” 유운철이 갑자기 물었다. “아니요.” 지천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마음에 둔 여인은 있는가?” 유운철은 재차 물었다. “없어요.” 지천무는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유운철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내 손녀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천무는 유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아린 씨 예쁘고 단아하고 훌륭하죠.” “그렇다면 내 손녀딸과 혼인하는 건 어떤가?” 유운철이 다급히 물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야 당연히 좋죠. 하지만 유아린 씨가 찬성하지 않을 텐데요.” 지천무는 시선을 유아린에게로 돌렸다. 비록 유아린과 몇 번 본 적 없지만 그는 확실히 이 여자에게 마음이 갔다.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그는 자기의 천박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주지 않기엔 너무 예쁘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고 품에 안으면 기분이 좋고 함께 나가면 체면이 서니까. 그 말에 가장 놀란 건 허성진이다. “할아버지, 아린이 결혼 상대는 저예요. 그런데 함부로 짝을 지어주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요, 아버지. 허씨 가문과 우리 유씨 가문이야말로 서로 어울리는 가문이에요. 게다가 성진이는 우리 아린이에게 일편단심이잖아요. 아린이가 결혼한다면 반드시 성진이와 결혼해야 할 거예요.” 유해산이 말했다. “아린아, 그게 사실이야?” 유운철이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유아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할아버지. 전 성진 씨를 그저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허성진은 화가 솟구쳤다. 강주 사대 도련님 일원으로 그를 이상형으로 꼽는 여자들은 수두룩하다. 수많은 여자가 그의 침대에 오르길 원했지만 그는 꼬박 2년을 오직 유아린만 바라봤다. 그런데 유아린은 단지 그를 친구로만 생각하다니, 정말 화가 난다. “그렇다면 천무 군은 어떠냐?” 유운철은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싫어요.” 유아린은 주저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지천무에게 호감이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혐오감이 느껴졌다. 할아버지의 병만 아니면 그녀는 두 번 다시 지천무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결혼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버지, 이 젊은이가 아버지의 병을 치료한 거에 우리도 고마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아린이와의 결혼을 정하기엔 너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유해산이 반박했다. “아저씨 말씀이 맞아요. 게다가 2억도 줬잖아요. 부족하다면 제가 20억 더 줄 수도 있어요.” 비록 유아린에게는 거절당했지만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유아린이 결혼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 유운철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지천무가 불쑥 말했다. “어르신, 호의만 받을게요. 유아린 씨가 싫다고 하는데 더는 말할 것도 없어요. 전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유운철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린아, 나 대신 천무 군을 배웅해 주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유아린은 지천무 옆에 차를 세웠고 지천무는 사양하지 않고 조수석에 올랐다. 지천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아린은 차에 시동을 걸고 빠른 속도로 운전했다. 십여 분 뒤, 두 사람은 다시 316번 방에 도착했다. 전과 같이 룸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유아린 씨, 날이 더워?” 지천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 유아린은 그의 뜻을 알 수 없었다. “더운 게 아닌데 왜 들어오자마자 옷부터 벗는 거지?” 지천무가 또 물었다. 순간 유아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버럭 화를 냈다. “알면서 왜 물어! 나 유아린 말하면 말한 대로 해! 할아버지를 구해줬으니 난 약속을 이행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야. 난 더는 당신 얼굴 보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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