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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당시 나는 사랑 때문에 눈이 멀어서 노유진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노유진은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씩식대면서 강주호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넌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내게 말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노유진에게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자 나는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았다. “유진아, 네 말이 맞아. 강주호는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였어.” 강주호를 위해 헌신했던 지난날을 떠올린 나는 괴로웠다. 노유진은 내가 힘들어하자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침대에서 내려와 내 옆에 섰다. “왜 그래?”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날 안타깝게 바라보는 노유진의 눈빛에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이 그 순간 폭발했고 나는 노유진에게 사건의 경과를 얘기했다. “강주호 그 자식 진짜 쓰레기네.” 노유진은 내 얘기를 들어주면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노유진의 눈빛에서 억눌린 분노가 보였다. “돈 좀 있는 게 그렇게 잘났대? 가자. 강주호 혼내주러.” 나는 노유진을 말리며 흐느꼈다. “유진아, 나 지금은 그냥 강주호랑 선을 긋고 싶어. 앞으로도 더는 걔랑 엮이고 싶지 않아.” 노유진은 마음 아픈 얼굴로 날 안았다. “그동안 네가 당한 게 얼만데, 그냥 참으려고?” 나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억울하지 않다고, 슬프지 않다고 한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강주호와 있었던 일은 내게 꿈이 아니었고 꿈으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정말 있었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강주호를 위해서 몇 년 동안 헌신했는데 강주호에게 난 그저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괴롭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뚝뚝 흘렀다. 노유진은 나를 품에 안았다. “그래, 그래. 알겠어. 울지 마. 은아 너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거야. 강주호는 돈이 좀 있는 것뿐이지, 잘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놈이야.” 노유진은 내 등을 토닥이면서 날 위로했다. “강주호의 가장 큰 매력이 뭔지 알아?” 나는 울먹이면서 물었다. “뭔데?” “생긴 건 더럽게 못생겼는데 너처럼 예쁜 사람이 좋아해 준다는 거야. 너 아니었으면 내가 강주호 같은 놈을 어떻게 알겠어?” 노유진의 말에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강주호는 못생기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봐줄 만했다. “그냥 마음 놓고 울어.” 노유진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오늘 밤은 그냥 훌훌 털어버리고 내일부터 새롭게 시작하자.” “유진아, 미안해. 예전에... 강주호 때문에 너랑 싸워서.” 나는 순간 죄책감이 들었다. 강주호 같은 쓰레기를 위해서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니. “당연히 그래야지.” 노유진은 내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그래서 네가 지금 벌받는 거야.”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날 아침, 나와 노유진은 함께 수업하러 갔다. 졸업을 앞둔 나는 쓰레기 같은 강주호는 잊고 온 신경을 학업에 쏟아붓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람 일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기숙사 1층으로 내려가니 강주호가 보였다. “쳇.” 노유진은 눈을 흘기더니 차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별 같잖은 놈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감히 우리 은아를 넘봐? 은아야, 우리는 이쪽으로 가자.” 노유진은 나와 함께 강주호를 피해 다른 쪽으로 에둘러갈 생각이었고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은아.” 우리가 몸을 돌리자마자 강주호가 따라와서 나와 노유진의 길을 막았다. “강주호, 뭐 하냐? 왜 우리 길을 막아?” 노유진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우리에게서 좀 멀리 떨어져 줄래?” 노유진의 말을 들을 들은 강주호는 날 선 눈빛으로 노유진을 바라보았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조심해...” “유진이 말이 맞아.” 나는 강주호의 눈빛을 직시했다. “강주호, 우리 사이에 더 할 얘기가 남아있지는 않을 텐데 이만 비켜줄래?” “은아야.” 강주호는 내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간장게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힐끗 본 뒤 시선을 들었다. 내가 받지 않자 강주호는 내 품에 간장게장을 억지로 안기면서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은아야,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제 날 용서해 줄래?” 나는 성의 있는 강주호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강주호와 나는 경영학과 동기였지만 나는 강주호가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주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연기 전공이었다.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면?” 강주호는 내 반응을 예상치 못한 듯했다. 먼저 머리를 숙였는데도 내가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말투도 사나워졌다. “은아야,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이 정도가 있지. 내가 널 계속 어르고 달랠 거로 생각하지는 마.” “하하하.” 옆에 있던 노유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고 강주호는 그런 그녀를 경고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 또한 강주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강주호는 그제야 조금 누그러들었다. “사과라는 건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한 뒤에 하는 거야. 너처럼 용서해 달라고 강요하는 건 사과가 아니야.” 노유진은 강주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건 가스라이팅에 불과해.” “너...” 강주호는 눈을 크게 뜨고 노유진을 바라보았다. 나는 노유진이 우리 둘 사이의 일 때문에 불편을 겪지 않기를 바랐기에 내가 직접 나서서 강주호와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노유진은 내 편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은 건지 나를 막으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강주호는 뒤로 물러났다. “넌 은아한테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정작 성의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어. 넌 그냥 가스라이팅만 할 줄 아는 쓰레기 같은 놈이야. 왜? 부인하고 싶어? 너 은아 갑각류 알레르기 있는 거 모르지? 모르니까 간장게장을 먹으라고 들고 온 거겠지.” 강주호는 본능적으로 간장게장을 힐끗 보았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그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한참 뒤에야 나지막하게 말했다. “왜 그동안 나한테 갑각류 알레르기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어?” 나는 차갑게 웃었다. “그건 네가 나한테 단 한 번도 내게 신경을 쓴 적이 없어서야.” 주변에 구경꾼들이 꽤 많이 모였다. 강주호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하자 난처해했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건지 품 안에서 작은 케이스를 하나 꺼냈다. “은아야. 이건 내가 널 위해 산 티파니 목걸이야. 어때? 예쁘지 않아?”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은아야, 그러니까 이제 화 풀고 날 용서해 주면 안 돼?” 강주호는 진지하게 말하면서 애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기에 그러한 광경을 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티파니앤코면 꽤 비싸지 않아?” “강주호는 예전에 서은아에게 빌붙어서 살지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무슨 돈이 생겨 목걸이를 샀대?” “보면 모르겠어? 서은아가 강주호에게 강요한 거겠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강주호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목걸이를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쭐한 눈빛이었다. 나는 말없이 강주호를 바라보았다. 강주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잘못은 자기가 저질렀으면 항상 피해자인 척했다. 강주호가 헛소문을 이용해서 날 압박하려 한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순간 마음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은아야. 이건 내 마음이야. 그러니까 그냥 받아줘.” 강주호는 여론을 이용해 날 다시 압박하려고 했다. “주씨 가문 딸에게 그런 값싼 목걸이는 어울리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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