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고설아는 엄마의 말을 다 듣었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지? 내가 언제 받았는데… 아, 참! 기억났어, 엄마. 어제 익명의 팬이 택배로 다이아 반지를 보내주긴 했는데! 언론에서 보면 또 기사나 쓸까 봐 받고 나서는 안 꼈어!”
그 말을 듣자 류예화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그렇지! 도련님은 분명 널 오랫동안 짝사랑해서 팬이라는 명목으로 너한테 구애를 하고 있는 걸 거야! 엄마가 다 알아봤어, 어제 예물을 주러 온 사람 확실히 태윤 도련님 수행 비서래! 설아야, 허 씨 집안은 제1가문인 데다 도련님도 너한테 성의가 가득하고 푹 빠져 있는 걸 보면 시집가는 건 아주 잘한 짓이야!”
허씨 가문 도련님…
고설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허씨 가문 도련님을 본 적은 없었지만 제1가문 허씨 가문의 도련님 허태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분은 경영 업계의 하늘 같은 사람이었다!
허씨 가문 도련님 같은 사람도 자신의 팬일 줄은 몰랐다. 그것도 집에 찾아와 예물을 줄 정도의 광팬이라니, 이게 다 그녀의 매력이 너무 큰 탓이었다.
……
오흐, 밖에서 돌아온 고연화는 품에 정교한 액자를 안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뒤 신발을 갈아신은 그녀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마침 내려오던 고설아는 일부러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손에 뭐 들고 있는 거야? 내 예물 안에 있는 보석 훔친 거 아니야?”
고연화는 제자리에 멈춰선 채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내 개인적인 물건이야.”
“말로만 해서 소용없어, 어디 꺼내서 보여줘 봐!”
고설아는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동생이 늘 거슬렸다. 왠지 집안의 격을 떨어트리는 것 같아 한번도 존중해 준 적도 없었다.
고설아는 곧바로 손을 뻗어 고연화가 품에 안고 있는 물건을 빼앗았다.
“하! 난 또 뭘 그리 소중히 여기나 했더니? 네 그 불륜녀 엄마 사진이었던 거야?”
그녀의 엄마는 내연녀가 아니었다!
고연화는 손을 뻗어 액자를 빼앗으려 했지만 고설아는 일부러 액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머! 실수, 손이 미끄러졌어!”
고설아가 발 아래에 밟고 있는 액자를 보자 고연화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건 겨우 고씨 집안의 옛날 사진첩에서 찾은 엄마의 옛날 사진이었다. 오늘 가져가 복원한 뒤 확대해 액자에 넣어 방에 장식해 둘 생각이었다.
화가 난 고설아의 멱살을 잡아당긴 고연화가 차갑게 말했다.
“당, 장, 주, 워!”
고설아는 무서울 게 없었다.
“어디 감히 손대 보든가? 말해두겠는데 난 곧 있으면 허씨 가문 작은 사모님이 될 사람이야. 감히 날 건드렸다간 허 씨 가문에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고연화는 순간 멈칫했다. 잠깐, 허씨 가문?
어제 강제로 그녀를 끌고 가 약혼을 했던 남자도 성이 허씨였던 터라 지금은 허 라는 글자만 봐도 머리털이 곤두섰다!
“설마 제 1가문의 그 허씨 가문이야?”
고설아는 우쭐한 얼굴을 했다.
“맞아! 왜? 겁나? 겁이 나야지! 허 씨 가문 도련님인 허태윤은 내 열성팬 겸 청혼자거든. 나 아니면 안되겠대! 저쪽의 저 좋은 것들도 다 허 씨 가문에서 어젯밤에 나한테 준 예물이니까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망가지기라도 하면 넌 물어내지도 못할 테니까!”
고연화는 고개를 돌려 고설아가 가리킨 예물을 쳐다보다 무언가 알아챈 듯 멈칫했다.
미친 거지?
찾아와서 예물까지 주고 가다니!
잠시 고민하던 고연화의 두 눈에 빛이 반짝이더니 고설아에게 말했다.
“그럼 정말 축하해! 하지만 허 씨 가문 같은 대가족이 정말로 연예계에서 스캔들이 가득한 연예인을 작은 사모님으로 맞이하겠대?”
고설아는 정곡이 찔렸다.
“네가 걱정할 것 없어! 도련님께서 날 사랑하시니 당연히 날 지켜주실 거야!”
“그래?”
고연화는 웃기만 할 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떨어진 엄마의 사진을 주워 든 고연화는 사진의 먼지를 툭툭 턴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
어제 잘못 건드린 남자를 어떻게 떨쳐낼까 고민 중이었는데 고설아가 저렇게 나서서 대신 시집 가준다니 참 잘된 일이었다!
고설아는 코웃음을 쳤지만 속으로는 불안함이 생겨났다.
고연화 저 촌뜨기의 말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허씨 가문은 제1가문이고 자신은 지금 뜨지도 안 뜨지도 않은 애매한 연예인이었다. 만약 허 씨 가문의 어른들이 그녀의 스캔들을 알게 되기라도 한다면 이미지가 완전 엉망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고설아는 곧바로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허 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 자리와 비교하면 연예계의 그 작은 이익들은 보잘것없었다.
고설아가 막 회사에 계약 해지와 은퇴를 알리려고 전화를 걸려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최근 왠지 모르게 스팸 전화가 자꾸 걸려 와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발신자 표시가 최근 만나게 된 스폰서인 것을 본 그녀는 마침 끊어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자기야, 어디야? 보고 싶어 죽겠어! 오늘 밤에 호텔로 와서 실컷 놀자!”
고설아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자기야라고 부르지 마요. 다 늙어서는 역겹지도 않나.”
“뭐라고? 역겨워? 너 나한테 다음 연기 대상 여주인공 자리를 달라고 어떻게 빌었는지 기억 안나?”
고설아는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미 은퇴한 마당에 상 따위를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누구 주고 싶으면 주든가! 앞으로 다시는 전화하지 마!”
전화 너머에 기름기 가득한 늙은 남자가 화가 나 얼굴이 다 서슬퍼레졌다.
선물로 다이아반지를 사서 택배로 보내줬더니, 망할 것이 물건을 받고는 바로 변심하다니!
주제도 모르는 여자같으니, 아예 확 묻어버릴 테니 앞으로 더 이상 이 바닥에서 지낼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사흘 뒤.
고씨 집안에서는 딸을 시집보낸다고 파티를 열었고 지인들이 잇따라 참가해 축하해주었다.
류예화는 금쪽 같은 딸 설아를 위풍당당하게 시집보내기 위해 특별히 고백천에게 아주 성대하게 파티를 열라고 당부했었다.
“저기 봐, 허 씨 가문에서 신부 맞이 대오가 왔어! 근사하기도 하지, 역시 제1가문이야. 다 한정판 외제차네!”
“제일 앞에 있는 차는 잡지에서만 본 적 있어. 저 차 한대로 부가티 10대는 살 수 있어!”
“설아 언니 너무 부럽다, 허 씨 가문 도련님 같은 사람한테 시집 가고!”
친척들과 친구들의 감탄과 추앙을 듣자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던 고설아는 한껏 우쭐해져 있었다.
참, 고연화가 나온 걸 못 봤네. 아마 지금쯤 어디 몰래 숨어서 부러워 하고 있겠지?
흥, 부러워하라지, 평생 부러워해도 모자랄 거야!
곧 있으면 자신의 신랑을 보게 되자 고설아도 몹시 기대하고 있었다. 허 씨 가문 도련님은 어떤 사람일까?
분명 엄청 잘생겼을 거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시선들 속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진심 어린 사랑 고백을 하실 거야…
결혼식 차량이 고씨 잡안 별장 문 앞에 멈췄다.
선두에 있는 차량에서 내린 건장한 체구의 허태윤은 강력한 기세에 고귀하고 우아했다.
정시후의 눈짓에 정장 차림의 신랑 들러리들도 분분히 차에서 내려 허태윤의 뒤를 따라 고씨 집안 별장 대문으로 향했다.
별안간 신랑 허태윤이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든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씨 별장의 꼭대기를 쳐다봤다.
한 다락방의 베란다에서 잠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난간에 엎드린 채 해바라기를 까먹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다만 시선이 마주한 순간, 그 여자는 빠르게 등을 돌려 사라졌다…
고연화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베란다에 숨어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 허씨 가문 도련님에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은 진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화장을 지웠으니 못 알아보지 않을까?
혹시 모르니 이 집은 위험했다. 서둘러 도망가야 했다!
별장 아래, 허태윤이 우뚝 선채 움직이지 않자 정시후는 이해가 되지 않아 가까이 다가갔다.
“대표님, 고씨 집안 대문은 앞쪽에 있습니다. 저 지체하시면 길시에 늦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