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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장

귀청을 울리는 술집의 노랫소리를 뚫고 한 남자의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눈을 붙이려던 순간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연화는 눈썹을 찌푸리며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눈이 부시게 찬란한 조명 아래 그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 정장에 흰색 셔츠, 넥타이는 하지 않았고 두어 개 정도 풀린 단추 사이로 쇄골이 언뜻언뜻 보였다. 내면의 우아함이 배어있는 듯한 몸짓과 말투였다. 여자 여럿 울렸겠어. 고연화에게서 대답하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남자는 더욱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혼자 오셨어요?” “아니요.” 고연화가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여기 앉아도 괜찮아요?” 남자가 한 번 더 젠틀하게 물었다. 남자는 비록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지만 이에 흔들릴 고연화가 아니었다. “안 괜찮아요.” 그녀의 대답에 남자가 잠시 멈칫했다. 마치 본인이 여자에게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매우 뜻밖이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하지만 그는 곧 다시 젠틀한 미소를 장착했다. “올해 몇 살이에요? 성년은 됐어요? 이런 데 다 오고.” “저기요. 경찰이에요?” 고연화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남자가 다시 한번 멈칫했다. 충격을 받은 듯 그녀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지금 여기서 호구 조사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낯선 사람이랑은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고연화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남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웃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 그저 아가씨 혼자 여기 있는 게 좀 걱정이 돼서 그런거에요. 이런 곳에서 여자애 혼자는 아무래도 좀 안전하지 않잖아요.” 고연화는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우유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저한테서 멀리 떨어지세요. 그럼 안전해요.”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교양 있어 보이는 이 남자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고 그의 상식과 예상을 훌쩍 초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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