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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이 기획은 신이서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했다. 승진과 연봉 인상만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어머니의 앞으로의 생활이 달려 있었다. 비록 송서림과 결혼을 하긴 했지만 그녀를 대하는 송서림의 태도를 봤을 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잠시 망설이던 신이서는 송서림과 친하지 않은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어차피 고객들은 다 모르는 사이에서 아는 사이로 바뀌지 않던가? 그녀는 송서림의 연락처를 열었다. [송서림 씨, 바빠요?] 메시지는 그대로 가라앉았다. 송서림은 바쁜 듯하다. 30분 뒤, 신이서는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송서림 씨, 유일테크 다녀요?” 사진: 송서림의 신분 카드. 1분 뒤, 화면에 송서림의 답장이 떠올랐다. 여전히 간결했다. [무슨 일이지?] [그쪽 대표님 취향이 어때요? 뭘 좋아한다든가, 싫어한다던가요.] 신이서는 혹시라도 송서림의 시간을 지체할까 싶어 곧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우리 대표님에게 관심이 많은가 봐?] [네.] 돈 주는 자본가를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또 다시 긴 1분이 흘렀다. [당신 같은 사람은 안 좋아해.] 어? 대화창을 보던 신이서는 순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 같은 게 어떤 거지?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순식간에 송서림의 뜻을 이해했다. 자시의 가장 선명한 특징은 바로… 여자라는 것이었다. [알겠어요.] [….] 송서림은 말줄임표만 보냈다. [걱정말아요. 당신 대표님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함부로 얘기하지 않을게요.] 신이서는 송서림이 믿지 않을까 봐, 한 마디 보충했다. [요즘 국내도 많이 개방적으로 변해서 그런 건 다들 신경 안 써요.] 송서림의 답장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신이서는 입술을 삐죽였다. 참 냉담한 남자였다. 자기 멋대로 읽씹이라니. …… 유일테크. 송서림은 음산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신이서의 머리에는 대체 뭐가 든 걸까? 도대체 왜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표님?” 서달수가 조용히 물었다. “회의 계속 진행할까요?” 그 말에 송서림은 정신을 차렸다. 무려 신이서에게 3분이나 낭비하다니. 어이없군. “계속하지.” 그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왼쪽에 있던 이태현이 말했다. “대표님, 화성 기획 쪽에서 저희와 협력할 기회를 얻고 싶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 개업 연회 기획서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화성 기획?” 송서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늘 자신에게 신이서의 능력에 대해 칭찬을 하던 게 떠올랐다. 화성 기획의 엘리트 마케터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는 별안간 신이서가 자신을 떠보던 질문의 의도를 알아챘다. 자신의 유일 테크 직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호성 그룹과 유일 테크의 협력을 성사하려는 계획이었구나 싶었다. 역시 돈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계략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신이서 같은 여자가 어떤 기획을 내놓을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대표님, 무슨 문제 있습니까?” 이태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없습니다. 계속 보고 하시죠.” 송서림의 가라앉은 말투에 온 사무실은 유난히 엄숙해졌다. 모두 강제로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한 시간 뒤, 회의가 끝나고 송서림이 손을 내젓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이 닿는 곳에는 전부 다 시커먼 남자들 뿐이었다. 송서림은 왠지 모르게 신이서가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오해를 하던 게 떠올랐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미간을 톡톡 두드리다 서달수를 쳐다봤다. 서달수가 그 눈빛에 앞으로 다가갔다. “네, 대표님.” “여 직원 몇 명 모집해.” 서달수는 순간 휘청하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네? 공고에는 여자는 모집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았어요?” “모집해.” 송서림이 담담하게 말하자 회의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마치 얼어붙기라도 한 듯 그대로 우뚝 멈췄다. 세상에, 철옹성에 꽃이 피다니! 여자를 제일 싫어하던 대표님이 변했어요!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 신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화면을 쳐다보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역시 남을 믿을 바엔 차라리 자신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이서는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테크 관련 기획을 하는 터라 전문 지식 같은 건 자료를 찾아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 유일 테크라는 네 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그러다 서지안이 귀띔해 주고 나서야 곧 5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지안은 그녀의 테이블 옆에 엎드린 채 그녀의 컴퓨터를 보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언니, 설마 아직도 기획 못 짠 거야?” 신이서는 한숨을 쉬었다. “응.” 서지안은 곧바로 안전부절 못했다. “언니, 절대로 김유진에게 지면 안 돼! 김유진 계속 언니만 미워했잖아. 만약 김유진이 부팀장이 된다면 언니 죽자고 괴롭힐 게 뻔해!” “뭐가 급해?” 신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김유진 시녀한테 들었는데 이미 유일 테크의 자료를 잔뜩 받았대!” “벌써?” 신이서는 깜짝 놀라 물었다. “들어보니까 유일 테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소개받으니까 금방이라더라. 지금 게네들 벌써 김유진 승진 파티할 식당 알아보고 난리야.” 서지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신이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조급해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이 되기 오기 전까지 그녀는 절대로 패배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허튼 생각 그만 해. 기획서부터 제출하고 나서 보자.” “응. 가자.” 서지안은 또 아무렇지 않게 신이서와 함께 다른 가십에 대해 떠들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신이서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가 후회하길 기다리고 있던 고운성의 전화였다.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거절한 뒤 차단했다. 이미 결혼도 한 마당에 전 남자 친구와 확실하게 끊어내지 않는다면 전수미의 호감을 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그녀도 지금은 고운성의 가식과 계략을 전부 알아본 참이었다. 길목에 도착해 신이서와 서지안은 헤어졌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녀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밀렸던 비용을 전부 치르고 나자 카드에는 6000만원이 남아 있었다. 마침 어머니의 수술비와 후속 치료비 정도였다. 그제야 드디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면접을 보기로 했던 간병인을 만났다. 쉰 정도의 나이에 사투리가 섞인 억양이었지만 웃을 땐 온화했고 일 처리도 빠릿빠릿했다. 신이서는 그녀와 월급을 협상한 뒤 그녀를 남긴 뒤 주치의를 찾아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고 병원에 보내졌을 땐 이미 혼수상태였다. 검사를 마친 뒤에야 뇌 부분의 안 좋은 위치에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수술로 뇌출혈은 막았지만 종양은 언제든 혈관을 눌러 다시금 출혈이 발생할 지도 몰랐다. 유일한 방법은 바로 개두 수술인데, 수술 위험도가 너무 높아 수술 성공 확률이 고작 30%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어머니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라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그녀는 시도를 해 봐야 했다. “신이서 씨, 수술은 아주 위험해요. 게다가 수술이 성공한 뒤에도 환자분이 언제 깨어나실 지 장담할 수 없고요. 정말로 수술하시겠습니까?” 의사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 반드시 해 주세요.” 신이서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바로 수술 날짜 잡죠.” “감사합니다.” 끝내 수술은 일주일 뒤로 결정됐다. 그에 신이서는 드디어 희망이 보였다. 어쩌면 긴장했던 것이 풀린 탓인지 배가 꼬르륵 거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그녀는 하루 종일 빵 하나만 먹었던 게 떠올랐다. 가방에서 남은 빵을 꺼낸 그녀는 한입 물자마자 곧바로 뱉어냈다. “상했네.” 그녀의 탓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 가방에 하루 종일 넣어두었으니 상할 만도 했다. 신이서는 한숨을 쉬며 빵을 봉투째로 쓰레기통에 버렸고 편의점으로 가 끼니를 때울 것들을 사려고 걸음을 옮기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전수미였다. “이…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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