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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신이서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법원 앞에 도착했다. 사 온 빵을 다 먹었을 때쯤, 예상치도 못하게 전수미가 찾아왔다. “수미 이모, 왜 오신 거예요?” “이렇게 중요한 날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서.” 전수미는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신이서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서야, 앞으로 우리 서림이 잘 부탁해. 이건 시어머니로서 준비한 작은 성의야.” 의아한 얼굴로 봉투를 연 신이서는 안에 들어 있는 수표 한 장을 꺼냈다. 1억짜리 수표였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전수미를 쳐다보며 거절했다. “이건 너무 많아요,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전수미는 밀어내는 신이서의 손을 막으며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많지 않아. 넌 이 돈 받을만해.” “제가…요?” 신이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최근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곧 있으면 고아가 될 텐데 누가 널 받아주겠냐고, 누가 널 좋아하겠냐고, 또 누가 널 지켜줄 것 같냐고 하는 말이었다. 3년을 만난 남자 친구는 그녀에게 사기나 치려고 하고 있었고 간병인마저도 부모가 없다고 은근히 무시했었다. 정말로 이대로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는 건 아닐까 하고 있었는데 이 순간, 그녀는 오래간만에 따스한 온정을 받았다. 한참을 버티던 신이서는 끝내 두 눈시울을 적셨다. 수많은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어떻게 물꼬를 터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이모, 고마워요.” “이 바보야. 네 처지가 안 좋은 거 알고 있어, 나한테 말을 꺼내기 힘들어한다는 것도 알고. 이제 곧 한 가족이 될 텐데, 이제는 더는 내 앞에서 강한 척하지 않아도 돼. 마음 놓고 받아.” 전수미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신이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이서는 마음속에 온기가 퍼지는 듯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주어도 부족하다고 느꼈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한 치라도 넘치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법이었다. 예를 들면 고운성네 처럼 말이다. 어떠한 것도 베풀지 않으면서 되레 그녀에게서 더 많은 것만 바라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사이, 전수미가 갑자기 신이서에게로 훅 얼굴을 가까이 했다. “오늘 혼인 신고 하는데 화장도 안 했어?” 신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진 찍을 댄 화장 못 하지 않아요?” 전수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어쩜 애가 이렇게 순진하니? 평생 갈 일을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 할 수가 있어? 내가 화장품을 챙겨왔으니 다행이지. 내가 자연스러운 쌩얼 메이크업해 줄게.” 그 말을 듣자 신이서는 놀라움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수미가 쌩얼 메이크업이라는 말도 알다니. 그녀가 미처 거절하기도 전에 전수미는 이미 그녀의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바람에 신이서는 그저 얌전히 전수미가 해주는 화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몇 분 뒤, 전수미는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신이서를 쳐다봤다. “이서야, 넌 이렇게 예쁜데 왜 꾸미지를 않니?” “이모, 절 위로해 주지 않아도 돼요.” 신이서는 전수미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자신이 뭐가 예쁘단 말인가? 대학 시절에는 확실히 예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운성을 만나고 난 뒤부터는 화장을 하면 고운성이 계속 화장을 못한다고 했던 데다 일이 너무 바빠 점차 화장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해봤자 혈색 돌게 립스틱이나 바르는 정도였다. “정말이지, 넌…” 전수미가 막 입을 열려는데 검은색 폭스바겐이 멈추며 그녀의 말을 잘랏다. 신이서는 차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송서림이었다. 그는 검은색 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다. 두 개쯤 풀린 셔츠 단추에 조금 느슨한 분위기의 그는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계단을 올랐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은 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휘날렸고 그윽하고 진한 이목구비는 환한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탓일까, 송서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다 순간 시선이 흔들렸다. 신이서는 잠시 멈칫하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러다 자신의 행동이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아 어색하게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만 매만졌다. 송서림은 신이서의 얼굴로 시선이 박히더니 한참이 지나도록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제 그 여자가 맞나? 신이서의 피부는 흔히 볼 수 없는 쿨톤의 하얀 피부인 데다 주근깨 몇 개 빼고는 트러블도 없을 정도로 피부가 좋았다. 거기에 약간의 화장을 더 하자 쏟아지는 햇살에 어린아이 같은 붉은 기가 올라오며 검은 머리카락과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그런 물기 어린 아름다움은 어제의 창백하고 초췌하던 그녀와는 전혀 달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간 송서림은 신이서 손에 들린 1억짜리 수표를 보자 별안간 눈빛이 차가워졌다. 벌써 돈부터 요구한 건가? 신이서는 전수미에게 떠밀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서….” “회사에 회의가 있어, 서두르지.” 말을 마친 송서림은 곧장 로비로 들어갔다. “….” 보아하니 송서림은 정말로 자신에게 아무런 호감도 없는 모양이었다. 인사치레도 하지 않다니. 하지만 전수미를 위해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송서림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오늘 혼인 신고 하러 온 사람은 몇 명 없어 신청서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는 일련의 절차는 20분도 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신청 완료된 서류를 받아 든 신이서는 그 위에 있는 사진을 보고 나서야 머리가 잠시 하얘지더니 자신이 진짜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송서림은 정말로 사진발을 잘 받았다. 하지만 자신도 딱히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런 공기관의 사진기에 이렇게 예쁘게 찍힐 줄이야. 전수미는 기쁜 얼굴로 가까이 다가와 두 사람의 사진을 쳐다봤다. “선남선녀인 게, 역시 난 안목이 좋아.” 한차례 칭찬을 마친 전수미는 가방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송서림의 앞에서 신이서에게 건네주었다. “이서야, 이건 송서림 빌라의 열쇠야. 오늘 바로 이사해서 들어가. 둘 다, 하루빨리 감정을 쌓길 바라. 나도 얼른 손주 볼 수 있게.” “수미 이모!” 신이서는 민망함에 전수미의 말을 잘랐다. 송서림의 얼굴은 감히 쳐다도 보지 못했다. “아직도 이모라고 부르는 거야? 어머니라고 해야지.” 전수미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신이서는 어색함에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알았어, 그만 놀릴게. 나도 며느리한테 애 두셋 낳으라고 하는 시어머니는 아니야. 하지만 결혼까지 했는데 계속 별거하려고? 이서야, 넌 맞다고 생각해?” 전수미는 다정하게 신이서를 쳐다봤다. 함께 살겠다고 동의해달라고 애원할 기세였다. 신이서는 전수미가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는 탓에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혼인신고도 마친 마당에 법적인 부부가 별거한다는 건 확실히 말이 안 됐다. 그녀도 돈만 받고 의무를 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일단 한 걸음씩 나아가 볼 생각이었다. “네, 오늘 바로 이사할게요.” 말을 마친 신이서는 자신을 향한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송서림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그 시선을 맞받아쳤다. 보긴 뭘 보는 거야? 자신이 이사하는 게 싫으면 전수미에게 말을 하든가. 감히 자신을 이렇게 쳐다보는 사람은 몇 없었던 터라 송서림은 조금 의아해졌다. 신이서는 정말로 겁이 없었다. 저렇게 자신의 집에 들어오고 싶은 건가? 송서림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시선을 거두더니 차갑게 말했다. “전 먼저 회사로 돌아가 볼게요.” 전수미는 짜증을 내며 그를 붙잡았다. “네가 없다고 회사가 망한다니?” 송서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수미는 화가 치밀었다. 정말 자신이 없으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손을 뻗은 그녀는 신이서를 훅하고 송서림의 품으로 밀었다. 신이서는 송서림의 가슴팍에 콩하고 부딪쳤다. 옅은 담배 냄새가 섞인 시원한 향이 그녀를 단단히 에워쌓다. 당황하며 뒤로 물러서던 신이서는 3년을 신은 하이힐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고 해싿.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붙잡은 송서림 덕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붙어 서게 됐다. 찰칵찰칵, 전수미는 엄마 미소를 지으며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깝다, 키스까지 하면 딱인데. 아니면….” “어머니?” 송서림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수미의 헛소리를 막았다. 신이서를 바로 세운 그는 여전히 온기가 맴도는 손가락을 살짝 구부렸다. 여자의 허리라는 게 원래 이렇게 가는 건가? 신이서는 민망함에 옆으로 슬쩍 물러섰다. 마음속에 송서림을 향해 고마움 마음이 가득했다. 비록 송서림은 자신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엎어지는 걸 수수방관하지는 않지 않았는가. 주변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넘어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그녀는 민망해졌다. 전수미는 두 사람을 보며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짓더니 송서림을 가리켰다. “남편이 돼서는, 얼른 자기 아내 출근길 바래다주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남편? 아내? 송서림과 신이서는 그 말에 흠칫하다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신이서는 얼른 거절했다. “괜찮아요, 정말로요. 회사가 여기서 엄청 가까워서 혼자 가도 돼요.” 말을 마친 뒤, 그녀는 서둘러 도망쳤다. 송서림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저 속으로 그녀가 밀당하려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뿐이었다. 신이서에게서 관심을 끊은 그는 고개를 돌려 전수미를 쳐다봤다. “어머니, 바래다 드릴 기사 불러드릴게요.” “됐어, 난 쇼핑이나 갈 거야. 넌 회사로 가. 그 전에 경고하는데, 이서 괴롭히지 마.” 경고를 마친 전수미는 선글라스를 쓴 채 흥얼거리며 쇼핑에 나섰다. 송서림도 이내 차에 타고 동사무소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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