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환이 대답했다.
“네.”
그때 남자아이가 서둘러 말했다.
“전 군이라고 해요.”
소희연은 순간 멈칫했다.
‘군이? 전승군의 군? 그냥 이렇게 성의 없게 지은 거야?’
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네 이름은 환이야?”
“응.”
환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분은 네 어머니셔?”
“응.”
“두 사람도 경성 사람이야?”
“아니.”
환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뭔 질문이 이렇게 많아? 시끄러워.’
“그럼 경성에 가던 길이야? 나 경성 사람인데. 경성에 도착하면 내가 구경시켜줄게. 어때?”
군이는 자신이 상대를 귀찮게 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듯 방긋 웃으며 환이를 쳐다보았다.
“가출한다 하지 않았느냐?”
소희연이 웃으면서 장난을 쳤다.
“안 할 겁니다. 어차피 찾지도 못할 텐데.”
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뭘 찾는단 말이냐?”
“어머니를 찾고 있어요.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버리고 딴 사내와 도망쳤다고 하셨거든요. 그게 사실인지 직접 물어보고 싶어요.”
소희연은 이를 악물다가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면사 아래 감춰진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전승군. 이 나쁜 놈아. 어떻게 아들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수 있어?’
“환아, 넌 아버지 있어?”
군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자 환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없어.”
“왜?”
군이 놀란 얼굴로 다시 물었다.
“어머니가 그러는데 우리를 버리고 다른 여인과 혼인한 양심도 없는 나쁜 사람이래. 이젠 죽은 지 꽤 됐어.”
“어...”
군이는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주먹을 불끈 쥐고는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정말 인간도 아니네. 죽어 마땅해.”
환이 어쩌다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시각 경성에서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달리던 남자는 왠지 저도 모르게 자꾸 귀가 간지러웠다.
소희연은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어 난처해하며 말했다.
“그만하고 얼른 마차에 타.”
마차 안에 숯불이 있어 너무도 따뜻했다.
소희연은 환이를 푹신한 방석 위에 앉히고 마부에게 출발하라고 한 다음 변장 도구를 꺼냈다.
군이 계속해서 환이 옆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뜯어보며 말했다.
“왜 가면을 쓰고 있어?”
환이 무시해도 군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벗어서 보여주면 안 돼?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안 돼.”
환이 단칼에 거절했다.
“왜?”
“어머니께서 안 된다고 하셨어.”
“왜 안 된대?”
군이 눈을 깜빡거렸다.
“혹시 네가 너무 귀엽게 생겨서 납치라도 당할까 봐 그러시는 거야?”
그 말에 환이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건 또 무슨 엉뚱한 소리야? 너무 멍청해서 상대하고 싶지도 않네.’
“보여줘. 정말 보고 싶어.”
군이 환이에게 매달리더니 환이가 방심한 틈에 갑자기 볼을 콕 찔렀다. 그러자 환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군이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와, 네 얼굴 진짜 부드럽다. 두부처럼 말랑말랑해.”
“멀리 떨어져 있어. 만지지 마.”
“난 네가 좋아. 같이 놀자.”
군이 웃으면서 환이를 껴안았다.
“네 형 하면 안 될까?”
“싫어. 이거 놔.”
환이 힘껏 몸부림쳤지만 군이의 힘이 너무 세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화가 나서 작은 발로 군이를 걷어찼다.
옆에서 변장하던 소희연은 두 아이의 장난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노는 건 좋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머니, 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군이는 큰소리를 치면서 두 팔을 벌려 두꺼운 망토 속에 환이를 껴안았다.
“이러면 넘어지지 않을 거야.”
꽁꽁 묶여 꼼짝할 수 없게 되자 환이 눈을 부릅뜨고 군이를 노려보았다. 군이는 환이 노려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얼굴이 두꺼우니까.
군이는 품에 귀여운 동생을 안은 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소희연을 지켜보았다.
변장 속도가 아주 빨랐다. 거의 다 끝나가는 듯했고 지금은 볼에 가짜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짜 같은 흉터를 붙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못생기게 변장하는 거예요?”
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모습이 훨씬 예뻤는데 지금은 너무 못생겨졌어요.”
“우리 어머니에게 못생겼다고 하지 마.”
환이 발을 들어 군이를 걷어찼다.
“그게 아니라 지금 변장한 모습이 못생겼단 뜻이야.”
“말하지 말라는데도?”
“알았어, 알았어. 말 안 할게. 화내지 마.”
환이 화를 내면서 씩씩거렸다.
‘미워 죽겠어, 정말.’
소희연은 흉터를 붙인 다음 꼭 껴안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환이는 늘 몸이 약했고 태어날 때부터 지닌 한증을 제거하지 못해 성격도 비교적 내성적이고 조용했다. 하여 그녀 외에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녀 또한 평소에 환이에게 온갖 사랑을 다 줬고 그저 아이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군이는 달랐다.
피를 나눈 쌍둥이 형제라 서로의 정체를 몰라도 끌리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녀는 군이와 환이가 친해지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환이가 거부해도 그냥 못 본 척했다.
“군아, 너에게 상의할 일이 있다.”
“무슨 일인데요?”
군이 고개를 들어 소희연을 쳐다보았다. 환이도 몸부림을 멈추고 빨개진 얼굴로 어머니를 보았다.
소희연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변장한 상태라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그럼요.”
군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흔쾌히 승낙했다.
“특히 네 아버지에게.”
소희연은 군이 알아듣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절대로 아버지에게 말하면 안 된다. 알겠느냐?”
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아버지께는 말하지 않을게요.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버릇도 환이와 똑같았다.
소희연은 새끼손가락을 군이의 손가락에 걸고 흔들며 말했다.
“약속. 백 년 동안 말하지 않기.”
“약속.”
군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이는 두 사람이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하는 모습에 억울한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어머니는 예전에 나하고만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었는데.’
약속하고 나서야 소희연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환이는 그 틈에 군이에게서 벗어나 소희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 안아주세요...”
그런데 말이 채 끝나도 전에 마차가 갑자기 덜컹거려 환이가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밖에서 말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희연은 서둘러 환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군이를 감싸 안은 다음 얼굴을 찌푸리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신경혜, 어디로 도망가려고? 당장 나와.”
마부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신경혜는 남원군 댁 셋째 딸의 이름이자 내가 지금 사칭하고 있는 신분인데? 벌써 찾아온 거야?’
소희연은 환이를 옆에 내려놓았다.
“환아, 움직이지 말고 마차 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금방 올게.”
그때 군이 단단히 화가 난 듯 벌떡 일어섰다.
“어디서 온 녀석이 함부로 소란이야? 내가 혼쭐을 내줘야겠어.”
그러고는 순식간에 마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소희연은 말릴 새도 없이 서둘러 뒤따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