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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장

한승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10분 후, 차가 육현우의 별장 앞에 멈춰 섰고 한승호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내리시죠, 지영 씨.” 밖의 별장을 본 이지영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용주 대학교에 데려다 달라는 말 못 들었어요?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죄송해요, 지영 씨. 전 그저 대표님의 지시만 따를 뿐입니다.” 한승호는 화를 내는 이지영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차분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이지영은 차에서 내려 바로 택시를 불렀다. “한 비서님이 데려다주지 않으면 택시 타고 가죠, 뭐. 대표님이 지금 임하나 씨랑 용주 대학교에 있는지 봐야겠어요.” 한승호는 차 문을 열다가 그녀의 말에 멈칫했다. “지영 씨, 안 가는 게 좋을 겁니다. 대표님 지금 지영 씨 만나고 싶지 않을 거예요.” “난 그 사람 여자 친구예요. 찾아갈 권리가 있다고요. 비서 주제에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예요?” 평소 이지영은 그래도 한승호에게 예의를 차렸다. 그런데 지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라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한승호는 그런 그녀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그러고는 차를 몰고 가버렸다. 이지영은 제자리에 선 채 씩씩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콜택시가 도착했다. “뒷번호가 3388 고객님 맞으세요?” “네!” 이지영은 차 문을 열고 타려다가 한승호의 말이 갑자기 떠올라 망설였다. “고객님?” 운전기사는 그녀가 차에 타지 않자 물었다. “안 탈 거예요?” 이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차 문을 쾅 닫았다. “안 타요!” 마음 같아서는 육현우를 찾아가서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지금 찾아가선 안 된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한승호의 얘기가 귀에 거슬려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결국 운전기사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가버렸다. 이지영은 밖에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별장으로 들어갔다. 거실 불과 TV가 커져 있었는데 이옥자가 소파에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복잡한 노랫소리가 별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지영은 더 화가 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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