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피의 비린내와 입술의 통증이 최성훈의 분노를 자극했다.
입술에 묻은 핏방울을 핥은 최성훈은 소윤정을 향해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입안의 핏방울을 한쪽에 있는 휴지통에 뱉어냈다.
정갈하고 고혹적인 최성훈의 얼굴에 음험한 미소가 어렸다.
“감히 날 물어?”
소윤정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입술에서 또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이어 최성훈은 맹렬한 기세로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소윤정은 그의 입술에 묻은 핏방울을 보고 너무 놀라 우두커니 선 채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최성훈이 다친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을 부부로 지냈던 그녀는 진심으로 최성훈을 신처럼 받들었고 그를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소윤정은 그를 물어 피를 보게 만들었다.
순간 가슴이 너무 아팠다.
후회와 부끄러움이 뒤섞였다.
소윤정은 그를 다치게 하지 말아야 했다.
입술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정신을 차린 소윤정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버티고 버텨도 최성훈이 자기를 좋아할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윤정은 조금 전 느꼈던 가슴의 통증을 뒤로하고 최성훈을 힘껏 밀기 시작했다.
“나쁜 놈, 놔!”
소윤정의 몸부림을 알아차린 남자의 힘이 더욱 거세졌다.
최성훈은 그녀의 혀끝을 세게 깨물었다. 소윤정이 몸부림을 멈출 때까지 계속하여 물어댔다.
두 사람의 입안은 온통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있어 이제는 누구의 피 냄새인지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몸부림을 치며 가끔 신선한 공기를 들이쉴 틈이 있었던 소윤정은 이제 더 이상 몸부림을 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벌린 채 숨을 내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한순간 혀 전체가 얼얼해졌다.
“나쁜 놈...”
“이거 놔...”
소윤정이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최성훈에게 제압당했다.
남녀의 힘은 현저한 차이가 있었고 오랫동안 몸부림쳤던 소윤정은 체력이 바닥난 지 오래였다.
결국 의미 없는 밀치기만 남았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최성훈은 그녀의 항복을 느끼기라도 한 듯, 입꼬리를 올리며 소윤정의 부드러운 입술을 잠시 놓아주었다.
소윤정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 피비린내가 감도는 최성훈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감쌌다.
익숙한 풀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최성훈의 손가락이 민첩하게 그녀의 옷자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를 따라 천천히 쓸어올렸다.
순간 놀란 소윤정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극심한 수치심은 그녀의 안에 남아있던 투지에 불을 지폈다. 소윤정은 황급히 그녀를 흐트러지게 만든 손을 내리눌렀다.
“최성훈, 뻔뻔한 놈!”
다음 순간 소윤정의 욕설은 남자의 입술 사이로 묻혀버렸다.
최성훈은 무자비하고 과묵했다. 그는 자신의 트렌치코트 주머니에서 네모난 손수건을 꺼내 계속 자신을 밀치던 소윤정의 양손을 뒤로 묶었다.
커다란 손바닥은 서슴없이 그녀의 허리 주변을 오가며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손길로 쓰다듬고 있었다.
“윤정아, 날 화나게 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가벼운 그의 말투는 듣는 사람을 벌벌 떨게 했다.
소윤정은 몸부림쳤지만 모두 최성훈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어둡고 비좁은 환경은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고 갑자기 소윤정에게 몸을 붙인 남자는 마치 홍수처럼 덮치는 맹수나 다름없어 그녀의 심장을 끊임없이 벌렁거리게 했다.
옷감을 사이에 두었지만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마치 화산 아래에 숨겨져 있는 뜨거운 용암처럼 언제든 폭발하여 그녀를 삼킬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최성훈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소윤정을 누른 그의 손은 마치 철제 바이스 같아서 힘을 줄 때마다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성훈 씨, 아프잖아요! 좀 놔줘요!”
소윤정은 너무 아픈 나머지 말투를 부드럽게 바꾸고 그가 놓아주기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비상구라 평소에 지나가는 사람이 적다고는 해도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소윤정은 사람들의 식사 후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더 나아가 ‘걸레’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고 싶지도 않았다.
최성훈은 결코 손을 놓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오히려 잡은 손에 더 힘을 주다가 그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고서야 조금 힘을 뺐다.
“이혼? 네게 그 말을 꺼낼 자격이나 있어?”
최성훈이 왜 한 여자에게 좌지우지 당하겠는가?
5년 전, 그녀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가문에서는 두 사람의 혼사를 추진하였다.
5년 후, 그 송씨 성을 가진 남자가 돌아오자, 소윤정은 이혼을 언급했다.
‘나를 도대체 뭐로 생각하고!’
상업계에서 모든 일을 순조롭게 처리하던 최성훈이 언제 이런 낯선 굴욕을 당한 적이 있을까?
만약 소윤정이 여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몇 번이나 죽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윤정아, 나 최성훈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야. 네가 가지고 싶으면 가지고, 버리고 싶으면 버리는 장난감이 아니라!”
최성훈은 더 이상 지금의 가벼운 스킨쉽에 만족하지 않고, 차가운 손끝을 천천히 내려 그녀의 하얀 배꼽 앞으로 이동했다.
마치 혀를 내민 뱀처럼 먹잇감을 서둘러 잡아먹지 않고 조금씩 그녀의 인내심을 닳게 했다.
소윤정의 양손은 뒤로 묶였고, 다리는 기다란 최성훈을 다리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을 쓰다듬는 불순한 손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 해봤지만 전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곳은 비상구였고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갑자기 누군가 나타날지 모를 일이었다.
소윤정은 최성훈이 이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일이라도 저지를까 봐 마음속으로 당황하며 급히 사정했다.
“여기서는 안 돼요!”
“성훈 씨, 당신이 나한테 이러는 거 수아 씨가 알게 된다면 화낼 거예요.”
지금 이 순간, 칼자루를 다른 이에게 맡긴 사냥감처럼 그녀의 말투는 애원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어찌 감히 최성훈을 도발할 수 있을까.
강수아는 그의 아픈 손가락이라 그녀를 언급하기만 해도 최성훈은 반드시 손을 놓을 것이다.
하지만...
최성훈의 손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서슴없는 손놀림이었다.
차가운 손끝이 그녀의 청바지 버클에 닿았다. 그는 가볍게 코웃음 치며 차가운 목소리에 조롱기를 담고 말했다.
“네가 감히 수아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어?
소윤정의 귓가에 순간 ‘윙’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심장이 꿰뚫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소윤정의 얼굴은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창백해지며 더 이상 몸부림조차 멈춰버렸다.
최성훈은 이러한 그녀의 반응에 매우 만족했다.
“옛 연인이 돌아오자마자 이혼 얘기를 꺼내? 내가 그렇게 만만하다고 생각해?”
“지난 5년 동안 당신은 언제나 이 결혼을 싫어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단지 성훈 씨와 수아 씨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싶을 뿐 다른 뜻은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요.”
“성훈 씨, 당신은 날 싫어하잖아요. 그리고 이 결혼도 싫어하고요. 이혼하고 나면 떳떳하게 수아 씨와 함께 할 수 있으니, 당신에겐 좋은 일이 아닌가요?”
소윤정은 이혼의 여러 가지 장점을 이야기하며 그녀가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눈앞을 남자를 설득하려 애썼다.
최성훈은 전혀 움직임 없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
“윤정아, 잘 들어. 이혼은 네 마음대로 안 돼!”
“그리고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 좀 대지 마!”
“그런 핑계로 나를 속여서 오게 만든 건 저급한 짓이야!”
소윤정의 심장은 순식간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사면팔방 온통 구멍투성이로 시린 바람이 꿰뚫고 지나갔다. 그 허전함이 그녀를 두려움에 몰아넣었다.
소윤정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남자를 보며 붉어진 눈시울을 하고 발을 들어 서지훈의 정강이를 향해 힘차게 걷어찼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벌면서 병원에 가서 머리를 검진해보기도 아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