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사이즈가 똑같은 것 같은데요?”
하선아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 더 흡수해야 작동할 거예요.”
서준수가 덧붙였다.
비록 공간은 변화가 없었지만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도 힘이 나는 듯싶었다.
게다가 옷장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자 어느새 다크서클도 연해졌다.
수정구슬이 미백 기능도 있는 건가? 다만 냄새가 너무 고약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보상도 받았는지라 얼른 아침밥을 구해주기로 했다.
하선아는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방에 들어섰다. 이 시간이면 부모님은 이미 밭에 일하러 나갔다.
찜통에 그녀가 먹으라고 남겨둔 아침밥이 있었고, 커다란 왕만두는 아직 뜨끈뜨끈했다.
집에서 키운 돼지라 고기 맛이 일품이며 하나만 빼고 나머지 2개를 챙겨서 공간에 넣어두었다.
이제 기본 식자재가 필요한데 한꺼번에 가져갔다가 부모님에게 발각되면 도둑이라도 든 줄 알 것이다.
...
서준수는 시내로 가서 매장을 털까 고민했지만 날이 어두워진 이상 서둘러 안전한 곳을 물색했다. 어차피 가정집도 장신구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기에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하선아와 그가 사는 세계는 낮과 밤이 정반대였고 아마도 시공간차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서준수는 이정오를 데리고 허름한 아파트 건물을 찾아갔다. 그 와중에 좀비 두 명을 죽였더니 등의 상처가 다시 찢어졌다.
둘은 얼른 집안으로 피신했다. 내부는 먼지로 뒤덮였고 벽에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이미 부패한 좀비 시체도 발견했지만 자주 봐서 별 감흥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좀비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준수는 시체를 밟고 그녀의 목에서 금목걸이를 풀었다.
“대장님, 금목걸이를 챙겨서 뭐 하려고요?”
이정오는 의아한 얼굴로 서준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금은 무용지물이라 거저 줘도 안 받을 것이다.
곧이어 자리를 옮겨 안방으로 직행하는 서준수를 발견했는데 무언가를 찾는 듯싶었다.
“정오야, 보통 집에서 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가 어디일까?”
“귀한 물건이요? 쓸모도 없는 걸 왜 물어봐요?”
이정오는 그를 흘겨보았다. 돈이 있다고 배를 채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혹시 머리가 잘못되었나? 음식을 어디에 숨겼냐고 물어보면 나름대로 납득이 갔다.
이내 곧장 주방으로 향했고 예상대로 썩은 음식뿐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악취와 함께 돌연변이 한 죽은 쥐 몇 마리가 있었다.
이정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면 통조림조차 없지? 그나마 유통기한이 길어서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할 텐데.
서준수는 아까 하선아가 공간에 넣어둔 커다란 고기만두 하나를 꺼냈다.
찜통에서 방금 가져온 듯 김이 모락모락 났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자 이정오는 즉시 뛰어왔다.
침을 줄줄 흘리며 두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은 충격받은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해주었다.
“그래서 귀한 물건을 어디에 두었을 것 같냐고.”
이정오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서준수가 손에 든 고기만두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육즙이 폭발하는 듯싶었다.
갑자기 나타난 고기만두를 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수정구슬 주고 샀어.”
서준수가 한마디 보탰다.
“어디서요? 저도 살래요!”
이정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어떤 멍청한 놈이 쓸모도 없는 돈으로 음식을 바꿔준단 말인가? 머리가 돌았나?
‘돈 주고 샀다라... 대부분 장롱에 숨겨두지 않나?’
이내 생각을 마치고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그동안 발에 밟히면 걷어찼던 금을 이제는 긁어모아야만 했다.
심지어 금을 찾으려고 장롱을 부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설마 금붙이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한 건 아니겠지?”
장롱을 샅샅이 뒤지고 나서야 보석함 하나를 발견했는데 안에 금팔찌, 금반지, 금목걸이가 들어 있었고 아마도 결혼식 예물로 받은 물건인 듯싶었다.
“여기요. 대장님! 저도 고기만두 하나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맛만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음식의 맛을 느껴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고, 배가 고파서 풀을 뜯어 먹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루 이틀 굶는 건 일상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서준수도 흔쾌히 내어줄 마음이 있었다. 이정오는 한동안 생사를 함께한 전우로 종말을 맞이하고 나서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형제였다.
그는 공간에서 고기만두를 하나 더 꺼냈다. 하선아는 총 두 개를 가져다 두었다.
이내 수집한 금을 넣었고 아마 상대방도 금방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정오는 고기만두를 받쳐 들었다. 비록 손이 지저분했지만 맛있는 냄새를 맡자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만두! 무려 고기만두에요! 설마 환각은 아니겠죠?”
이내 눈시울이 점점 빨개졌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가!
여태껏 정상적인 음식을 입에 대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 기지에서 곰팡이가 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아이와 나무껍질을 뜯어 먹는 아내가 문득 생각났다.
결국 침만 연신 삼키면서 식탐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썼다.
“돌아가서 아들한테 먹어야겠어요.”
이정오는 마치 보물처럼 간직했다. 이렇게 큰 왕만두를 절대 잃어버리지 않게 잘 포장해서 가져가기로 했다.
정작 본인은 코를 박고 냄새만 맡고 대리만족했다.
“너 먼저 먹어. 금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만 찾으면 앞으로 굶을 걱정 안 해도 돼.”
서준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시공간에 사는 여자는 가난하지만 음식물을 구할 수 있고, 이 곳은 식량이 부족한 반면 금이 도처에 널렸다.
교환할 물건만 충분히 확보한다면 살아남는 데 문제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하라는 대로 수정구슬을 흡수했는지 모르겠다.
“정말요? 내일 당장 백화점으로 가요. 매장을 싹 털어 옵시다.”
이정오는 한껏 들뜬 모습으로 말했다.
서준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공간이 부족해서 많이 수집해도 집어넣기 어려웠다.
“얼른 먹어. 음식은 나중에 또 생길 거야.”
이내 입을 열었다.
“고기만두가 또 있을까요?”
막상 먹으려고 하니 너무 아까웠다.
무려 고기이지 않은가? 현재 그들에게 육류는 사치였다. 동물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고기가 초록색으로 변했을뿐더러 독까지 있다.
“그리고 해장국, 오리구이, 밥도 있어.”
서준수는 달콤한 여자 목소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만! 듣기만 해도 벌써 침이 고이네요. 지금이라도 뛰쳐나가 금을 찾고 싶어요.”
이정오는 서준수가 무슨 초능력을 각성했는지 몰랐지만 음식 앞에서 굳이 따질 필요가 뭐 있겠는가?
종말과 함께 초능력을 얻게 된 사람이 잇달아 생겨났고 서준수만 예외였다. 하지만 워낙 실력이 막강한지라 괜히 대장 노릇을 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아무리 신기한 능력이라도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에 비교하면 무용지물이다.
“날이 어두워서 좀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찍소리라도 냈다가는 바로 공격당하기에 지금 밖에 나가면 자살행위에 해당해.”
서준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 말에 이정오도 당장 금을 찾으러 뛰쳐나가려는 충동을 억눌렀다.
고기만두를 삼키는 순간 입맛이 자극되는 바람에 더 먹고 싶었다.
남자는 원래 많이 먹는 데다가 종말을 겪으면서 체질이 바뀌어 에너지 소모가 높았지만 음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굶을 수록 신체 능력이 점점 떨어졌다.
“드디어 희망이 생긴 건가요? 음식과 물만 있으면 아이들도,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