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권해솔은 김칫국을 거하게 마셨던 것도 잊고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강재하는 그런 그녀를 아주 잠시 부드럽게 바라보았다가 2초도 안 돼 금세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가운데 있는 보석, 타파이트 맞죠? 흔치 않은 보석이라 1캐럿에 천만 달러 정도 한다고 하던데.”
강재하는 말을 하며 직접 그녀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네, 맞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보다 더한 값어치가 있는 목걸이에요.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권해솔은 그리운 누군가를 추억하듯 눈을 적셨다.
강재하와 권해솔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문틈이 살짝 벌어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제가 사기로 한 거잖아요. 그런데 왜 대표님이 계산하세요.”
식사를 마친 권해솔이 카운터로 왔다가 계산이 다 되었다는 웨이터의 말에 미안한 얼굴로 강재하를 바라보았다.
“제가 여기 사장이라서요. 정 마음에 걸리면 다음번에야말로 권해솔 씨가 사주세요. 그때는 절대 먼저 선수 치지 않을게요.”
두 사람은 가볍게 말을 주고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때 대로변에 세워진 차에서 누군가가 내리더니 황급히 강재하 쪽으로 다가와 뭐라고 속삭였다.
상당히 급한 일인 것 같아 보였지만 강재하는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역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포커페이스가 수준급이었다.
강재하는 얘기를 다 전해 들은 후 다시 권해솔을 바라보았다.
“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저희는 다음에 다시...”
“잠깐만요. 뜬금없는 얘기인 건 아는데... 혹시 7년 전에 여자애 한 명 구해준 적 없으세요?”
사실 이런 건 대놓고 물어보기보다는 뒷조사를 하는 게 더 확실했지만 여러 번의 만남으로 권해솔은 강재하라면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대표님께서 구해주신 분이라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분을 구한 걸 물어보고 싶으신지 혹시 얘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 건 강재하가 아닌 그의 비서, 손세준이었다.
“음... 아니에요. 제가 한 말은 잊어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권해솔은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차 안.
“권해솔 씨가 7년 전의 일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손세준의 말에 강재하는 창밖의 누군가를 빤히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손 비서 생각은 어때? 아까 보니 말 잘하던데 아이디어 좀 내봐.”
아무래도 강재하는 아까 권해솔이 했던 질문에 손세준이 빠르게 대답했던 걸 마음에 두고 있는 듯했다.
“대표님 설마... 저한테 화나신 건 아니죠? 저는 대표님이 멋진 분이라는 걸 권해솔 씨한테 어필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게다가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죠. 저는 항상 대표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강재하는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 어디가 그렇게 멋진데?”
“일단 잘생기셨죠? 그리고 키도 크시죠? 게다가 똑똑하시고 사업 수완도 좋으시고 또...”
손세준은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신이 나서 얘기했다. 그러다 강재하에게서 이만 출발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앞을 바라보며 시동을 걸었다.
그로부터 10분 후, 서담 레스토랑에 강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수 씨 오셨네.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볼 테니까 둘이서 재밌게 놀아.”
권설아의 친구들은 강현수가 도착하자마자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왜 불렀어?”
강현수는 권설아가 하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길래 자신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내가 아까 저 룸에서 누굴 봤는지 알아?”
권설아는 기껏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놓고 뜸만 들였다.
“누굴 봤는데? 그냥 말해줘.”
“아까 저기서... 언니랑 오빠네 삼촌을 봤어. 그런데 두 사람 분위가 꼭...”
강현수는 권설아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도 못한 두 인물에 고개를 갸웃했다.
“분위기가 뭐...?”
“꼭 사귀기 전 단계 같았어. 하... 언니가 무슨 생각으로 오빠네 삼촌이랑 같이 식사한 건지 도무지 그 의도를 모르겠어! 이대로라면 사람들이 오빠만 욕할 텐데.”
권설아는 강현수와 권해솔 사이를 이간질할 생각이었다.
강현수와 결혼하는 건 거의 확정된 사항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어딘가 불안했다. 그래서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강현수가 권해솔을 완전히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게 만들고 싶었다.
“방금 한 말 진짜야?”
강현수는 권해솔과 함께 한 7년 동안 그녀가 다른 남자와 친하게 지낸다거나 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게다가 함께 식사라니, 그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 말 못 믿어? 그럼 가게 CCTV를 돌려보던가. 내가 거짓말하는 건지 아닌지!”
권설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난 당연히 설아 말 믿지.”
강현수는 대충 대답해주고는 바로 다시 권해솔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자기 좋을 대로 망상하기 시작했다.
‘권해솔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남자랑 둘이서 식사했다고? 그 권해솔이? 하!’
강현수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권설아를 데리고 권해솔의 집으로 찾아갔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장을 보고 온 듯한 권해솔이 차에서 내렸다.
“오빠, 화내지 마. 괜한 말을 한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차라리 나한테 화를 내!”
권설아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착한 척을 했다.
강현수는 권설아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건지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는 성큼성큼 권해솔의 앞으로 다가갔다.
“또 무슨 생쇼를 벌이려고 찾아온 거야?”
권해솔이 질린다는 얼굴로 물었다.
‘내일이 결혼식인데 준비나 하러 갈 것이지, 쯧쯧.’
“권해솔, 너 솔직하게 말해봐.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그래서 나랑 설아가 좋아한다는 걸 듣고도 쉽게 넘어가 준거지?”
강현수는 주먹을 꽉 말아쥐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말을 할 거면 알아듣게 좀 해.”
권해솔은 그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너 다 알고 있었지? 나랑 설아가 사귀는 거 진작에 다 알고 있었지?!”
강현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가며 권해솔을 무섭게 압박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것도 몰랐던 척, 피해자인 척 한 거지? 그래야 나중에 강재하랑 붙어먹었을 때 아무런 탈도 안 생기니까!”
강현수는 머릿속 망상을 사실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머리라도 다친 거야? 여기서 갑자기 강 대표님 얘기가 왜 나와? 너 지금 제정신 아닌 것 같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꺼져!”
권해솔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금방 다시 강현수의 손에 의해 몸이 돌려졌다.
“권해솔, 너 이런 애였냐? 그간 내 앞에서 순진한 척하던 건 다 가식이었어? 네가 감히 날 가지고 놀아?!”
권설아는 강현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화를 내자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더럽게 어디다 손을 대? 다시는 내 몸에 손대지 마! 알았어?!”
권해솔은 그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하지만 강현수는 손이 뿌리쳐지자마자 금세 다시 그녀 쪽으로 달려들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그 스스로도 잘 몰랐다. 그저 눈앞에 있는 권해솔이라는 여자가 너무나도 밉고 증오스러웠다.
“강씨 가문의 도련님이 시뻘건 대낮에 여자한테 손을 올려서야 되겠어?”
그때 웬 남자 한 명이 큰소리로 외치며 다가왔다. 남자는 권해솔에게 당장 도망가라는 사인을 줬고 권해솔은 그 사인을 정확히 알아보고는 얼른 강현수와 거리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