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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권해솔이 핸드폰으로 조작을 마치자 강재하는 만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두 사람 사이에 나눈 대화는 생각할수록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도와주고도 결국 바란 건 그저 차단 해제라니? 강재하가 떠난 후 30분 가까이 권해솔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뭔가 잘못된 건지 곱씹으며 멍하니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바닷바람이 거세게 창문 틈으로 들이쳤다. 막 샤워를 마친 권해솔은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우선 약부터 바르자고 생각하며 연고를 챙겼다. 방 안은 아주 조용했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집중해서 발목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장실 쪽에서 쨍그랑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들은 순간, 권해솔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귀 기울여 보니 거울이 깨지는 소리 같았다. 권해솔은 조심스레 옆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집기도 전에 갑자기 방 전체가 정전되었다.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권해솔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손에 쥐고 화면을 켜려던 찰나, 무언가가 휙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차가운 금속 같은 것이 권해솔의 경동맥에 닿았다. 누군가가 그녀의 바로 등 뒤에 있었지만 권해솔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마치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누... 누구세요?” 잔뜩 긴장한 채로 침을 꿀꺽 삼킨 권해솔은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닥치고 내가 숨을 곳 하나만 알려줘.” 남자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낮고도 묘하게 울렸다. 지금 자신의 생사는 이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기에 권해솔은 순순히 남자의 말에 따랐다. “침실에 가로로 누울 수 있는 장식장이 하나 있어요. 그 안에 들어가면 됩니다.” 남자는 권해솔을 끌고 조금씩 침실 쪽으로 움직였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해솔, 너 자? 안 자면 문 좀 열어봐.” 밖에서 고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엔 고민재뿐 아니라 강재하와 니콜까지 있었다. 단순히 거울 하나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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