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장

경안 아파트. 평범하고 오래된 아파트였다. 김수아는 바로 이곳에 살고 있었다. 좁은 복도를 지나며 김수아는 쑥스러워 말했다. “죄송해요. 예전에 살던 별장을 팔고 잠시 옛집으로 이사했어요...” “괜찮아요.” 임현도는 온화하게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김씨 가족이 어렴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김수 형편이 이 정도로 궁핍해질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그의 도움이 부족했던것 같았다. “여기에요.” 생각에 잠겼던 임현도는 김수아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302호 문 앞에 서 있었다. “임현도 씨, 이따가 숙모의 성질이 좀 급할 수 있으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요.” 김수아는 심호흡한 후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열었다. “수아야,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했어.” 집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덥수룩한 곱슬머리에 꽃무늬 치마를 입은 서연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왔다. 김수아의 뒤에 있는 임현도를 보더니 삼각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수아야, 이놈은 누구니? 문양이 아직 있는데 함부로 외간 남자를 데려오면 어떡하니?” 이 말을 들은 김수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숙모가 왜 저래?’ 하지만 숙모는 어르신이기에 김수아는 여전히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숙모, 저의 남자친구예요.” “뭐? 언제 남자친구를 사귀었어? 열 받아 뒤질 것 같아!” 서연은 버럭 화내며 김수아를 꾸지람했다. “문양이 있다는 것을 알며 무슨 꿍꿍이야!” “숙모, 나는 그 사람이 싫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나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요.” 김수아가 말했다. “너!” “형수님, 그만 하세요. 수아를 먼저 집에 들어오게 한 후 다시 얘기해요.” 이때 문 앞의 인기척을 들은 김수아의 부모님이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와!” 서연은 두 손을 허리에 짚고서 눈을 희번덕거렸다. “죄송해요, 본의 아니게 집안 형편을 다 노출했어요.” 김수아는 뒤에 있는 임현도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서연은 항상 그랬고 평소에 집에서도 우악스러웠다. “괜찮아요.” 임현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