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왜 그래, 유정아?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결혼한 지 5년이야. 내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어? 왜 나 몰래 다른 남자랑 호텔에 가는 거야!"
별장 안, 임현도는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앞에서 있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늘씬한 미녀에게 큰 소리로 따지고 있었다.
두 사람 앞의 테이블에는 낯선 남자가 허유정의 허리를 감싼 채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임현도, 너 나 미행했어?"
허유정은 눈썹을 찌푸리고 테이블 위의 사진들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미안함은 전혀 없고 오히려 냉담함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이혼해."
"이혼?"
임현도는 머릿속이 쿵 하고 울리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단지 허유정에게 해명을 듣고 싶을 뿐이었다. 이 일은 사실이 아니라고, 거짓말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혼이라는 말이었다.
"그래. 이혼해."
"이건 이혼 협의서야. 사인해."
허유정은 2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백에서 이혼 협의서를 꺼내 임현도 앞에 놓았다.
임현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앞에 놓인 이혼 협의서를 바라봤고, 다시 허유정을 쳐다봤다. "너 진작 나랑 이혼 할 생각이었던 거야?"
"네가 자초한 일이야. 난 누가 나 미행하는 걸 제일 싫어해."
허유정의 말투는 차가웠다.
"그래서,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임현도, 그런 눈으로 나 쳐다보지 마. 이 몇 년 동안 너 먹여주고 입혀준 사람 나야. 내가 누구랑 사귀던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허유정, 넌 내 와이프야! 법적으로 내 와이프라고…"
임현도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앞에 놓인 이혼 협의서를 보고 갑자기 기운이 빠졌다.
임현도는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게 뭐?"
허유정은 무심하게 말했다. "싫으면 나랑 이혼하자고. 미리 말해두는데, 네가 내 결혼 후의 사적인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혼하는 거니까 이혼하면 넌 맨몸으로 나가야 할 거야."
임현도는 눈을 크게 뜨고 정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허유정을 바라봤다.
이전까지만 해도 허유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허유정, 15년 전에 그 착했던 여자 맞아? 내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빵 한 조각 건네주며 용기를 주었던 그 여자 맞아?'
"됐고, 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이혼 협의서에 사인이나 해."
허유정의 차가운 목소리가 임현도를 사색에서 끌어냈다.
임현도는 정신을 차리고 앞에 있는 이 냉정하고 이기적인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18번도 더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외모만 변하는 게 아니라 성격도 이렇게 완전히 변할 수 있는 건가?
허유정의 눈에서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었고, 예전의 그 착함도 볼 수 없었다.
임현도의 눈빛은 점점 실망으로 변했다. "허유정, 너 정말 변했어. 가끔은 네가 정말 예전의 그 여자애가 맞는지 의심스러워."
"임현도,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 시간 끌려고 이러는 거라면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허유정은 차갑게 말했다.
예전의 여자애? 결혼 전에 허유정은 임현도를 만난 적이 없었다.
임현도는 말을 잇지 않고, 마지막으로 확인 사살 했다. "허유정, 너 정말 나랑 이혼할 생각이야?"
"그래."
허유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어."
임현도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눈빛이 약간 깊어졌다.
허유정은 잠시 멈칫했다.
방금 한순간 임현도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임현도는 여전히 임현도 그대로였다.
앞치마를 입은 채, 남자로서의 기개는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허유정은 임현도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깔보듯 말했다. "사실 넌 진작 알았어야 했어. 우리 둘은 이미 다른 세계의 사람이야."
"그래."
이번엔 임현도도 반박하지 않았다. "넌 이제 높은 위치에 있는 대표님이고, 영성 10대 기업가 중 한 명이지. 반면 난 그저 설저기나 하고 네 눈엔 아무 쓸모도 없는 남자일 뿐이야."
허유정은 한순간에 변해버린 임현도의 태도에 놀랐다.
허유정의 입가에는 자부심이 섞인 미소가 피어났다. "너 드디어 깨달았구나. 이제 너도 네가 아무것도 아니고,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아네."
"하하, 그래?"
임현도도 웃었다. 하지만 임현도의 웃음에는 조롱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너한테 고마워. 오늘 네 진짜 모습을 완전히 알게 해줘서 고마워."
"무슨 뜻이야?"
허유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냐고? 5년이야, 5년이라고... 5년 동안 내가 너 야근하고 돌아오면 따뜻한 죽 안 만들어 준 적 있었어?"
"네가 피곤하다고 하면 마사지도 해줬어."
"네가 생리통으로 아파할 때 난 잠도 안 자고 밤새 너 간호해 줬어."
"네가 창업하고 싶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초동 자금도 대줬어."
"5년, 5년이야. 이 시간이면 개한테도 감정이 생길 거라고…"
"그만해, 임현도. 입 다물어!"
허유정의 날카로운 고함이 임현도의 말을 끊었다.
허유정은 발을 밟힌 고양이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난 해달라고 한 적 없어! 그리고 내가 이 정도로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건 내가 밤새가면서 노력한 결과야. 이 몇 년간 내 거 먹고 썼으면서, 그때 그 돈 다 돌려주고도 남았어!"
"그래?"
임현도는 허유정을 바라보며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했다. "정말 넌 이렇게 성공한 게 네 개인적인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허유정이 되물었다.
임현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펜을 들더니 망설임 없이 이혼 협의서에 사인했다.
임현도가 품고 있던 기대도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펜을 내려놓고
임현도는 이혼 협의서를 허유정 앞에 던지며 냉정하게 말했다. "네 뜻대로 이혼해. 나중에 후회하지 않길 바라."
그 말을 끝으로 임현도는 몸을 돌려 떠났다.
"임현도, 너 그거 무슨 말이야? 똑바로 말해!"
허유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임현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별장에서 나갔다.
이곳은,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았다.
…
따르릉.
갓 별장을 벗어나자마자 임현도의 핸드폰이 울렸다.
곧이어 두 줄로 늘어선 검은색 마이바흐 차량 행렬이 임현도를 향해 다가왔다.
차 한 대당 20억이었다!
차량 행렬은 임현도의 앞에 멈췄다.
각 차의 문이 열리더니 정장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수십 명의 남자들이 재빠르게 차에서 내렸고, 임현도의 시선을 받으며 일렬로 서서 90도로 인사했다. "블랙님의 명을 받고 주인님을 모시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