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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심진우의 얼굴빛이 급격히 변했고 눈썹과 눈매에선 분명한 불쾌감이 드러났다. 주다인은 심장이 움찔했지만 그 틈을 타 심진우의 손에서 몸을 뿌리치고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느슨하게 손을 뻗어 자신을 감싼 강재혁의 시선을 마주했는데 강재혁이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진우가 불쾌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는데 강재혁을 보는 순간 그 표정은 한층 더 묘하게 뒤틀렸다. 그날 운해 대학 병원에서 마주쳤을 땐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뒤늦게 뉴스를 보고서야 그가 바로 강씨 가문의 후계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좀처럼 대외 활동에 나서지 않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강씨 가문을 물려받은 후 수백 개의 계열사를 확장시킨 인물이었다. 지금의 심씨 가문은 강씨 가문과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심진우의 시선이 강재혁의 손에 닿은 뒤로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를 살피듯 탐색하는 눈빛이었다. “주다인, 내가 널 바람났다고 했을 땐 끝까지 아니라고 부정했잖아? 말로는 돈 많은 남자 싫다면서, 뒤에선 기어이 붙으려고 들었구나? 설마 강씨 가문이랑 엮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말투는 독기와 비웃음으로 가득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다인의 가슴을 정확히 찔렀다. 그녀는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도대체 그때의 나는 왜 이딴 새끼를 사람으로 보고 사랑했던 걸까?’ 말투도 행동도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웠는데 말이다! 그때 강재혁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심진우 씨, 전 여자 친구를 참 잘도 깎아내리시네요. 보아하니 예전 감정 따위는 전혀 남지 않으신 듯합니다.” 심진우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고 억지로 삼킨 분노가 목울대를 타고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제 막 강재혁과 대면할 기회가 생겼기에 심진우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강 대표님, 우리 이 바닥 사정 잘 아시잖아요. 다들 가볍게 만나고 끝나는 겁니다. 이딴 여자들이랑 결혼하고 애 낳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제가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충고 하나 드릴게요. 주다인은 진짜 재미없어요. 시간 낭비입니다. 나무토막처럼 무미건조하달까요?” “뭐, 결혼 전엔 성관계도 무조건 안 된다던 사람이니까요.” 말끝마다 주다인을 조롱하며 내뱉는 그 가벼운 말투엔 한 치의 존중도 담겨 있지 않았다. 주다인의 눈가가 붉어졌고 더는 참을 이유도, 여지도 없었다. “짝!” 손이 번개처럼 날아가 심진우의 뺨을 후려쳤고 방심한 그가 고스란히 맞고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얼굴이 따갑게 타올랐다. 심진우는 이를 악물고 그녀를 어둡고 침침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주다인, 네가 감히 날 때려?” “우리 사이에 네가 함부로 소리칠 권리라도 있어?” 그가 팔을 들고 그녀를 붙잡으려는 순간 강재혁이 앞에 나서서 심진우의 손목을 정확하게 움켜쥐었다. 순간, 두 남자의 말 없는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심진우가 대놓고 강재혁한테 맞붙을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심씨 가문 도련님이었기에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진우가 아무리 힘을 줘도 강재혁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주다인이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강재혁의 팔에 잡힌 힘줄, 단단한 근육 선, 차가운 남성미가 그대로 느껴졌다. 결국 심진우는 밀리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강재혁이 입을 열었다. “심진우 씨, 여자한테 손찌검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마침 병원이 한창 붐비는 시간이었고 세 사람 모두 눈에 띄는 외모였기에 금세 주변 시선을 끌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거나 힐끔힐끔 돌아봤고 수군거림도 점점 커져갔다. “진짜 현실판 삼각관계네. 도대체 저 여자 뭔데 두 남자가 저렇게 싸워?” “여자도 엄청 예쁘잖아. 그러니까 저렇게 둘 다 안 놓치려는 거겠지?”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궁금하긴 하다.” 그 수군거림이 고스란히 주다인의 귀에 들어오자, 그녀는 손끝이 떨렸고 의식이 아득해졌다. 여기서 더 있으면 오해만 커질 뿐이었다. 더는 이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주다인은 심호흡하고 강재혁을 또렷하게 바라봤다. “강 대표님, 우리 가요.” 그 말을 듣자 심진우가 더 폭발했다. “주다인, 이제는 연기도 안 하는 거야?” 주다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심진우, 내가 지금 너랑 무슨 상관이 있어?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날 비난하는 건데?” 그녀의 눈빛이 너무도 차분해서 심진우가 오히려 눈이 시릴 정도였다. 심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리 없어.’ 삼 년이나 되는 시간을 함께했는데, 주다인의 성격은 언제나 유약했고 뭐든 그에게 맞췄었다. 지금 당장 헤어졌다고 해서 이렇게 깔끔하게 털고 일어날 리가 없었다. ‘내가 없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한테 울며불며 매달려야 하는 거 아니야?’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강재혁이 심진우의 손을 가차 없이 밀쳐내자 심진우는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이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를 등진 채 강재혁은 주다인을 향해 낮게 말했다. “당신 말대로 하죠.” 심진우와 마주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말투였다. 심진우는 심지어 그의 눈에서 주다인을 향한 미묘한 온기까지 느꼈다. 심진우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만약 강재혁이 주다인에게 관심이 생긴 거면? 절대 그렇게 둘 수 없어!’ 주다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강재혁과 함께 병원 밖을 나서고 나서야 그녀는 마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무기력하게 말했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대표님.” 강재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감사 인사를 할 때는 상대 눈을 보고 말하는 게 예의 아닌가요?” 그 말에 주다인은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주다인은 애써 생각을 지우려 했다. 강재혁은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기에 그와 엮이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심진우를 겪은 후 그녀는 극단적인 격차를 가진 두 사람이 진심을 나누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주다인은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대표님, 우린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이에요. 그동안 몇 번이나 도와주셔서 감사하지만, 대표님이 그렇게 남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많은 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그나마 있는 게 제 전공이네요. 혹시 몸이 안 좋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 외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겁니다.’ 강재혁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렇게 선을 긋고 싶어 하는 거야?’ 하지만 그 역시 별 감흥은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도운 것도 자신의 일에 방해될 만한 걸 미리 제거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의 눈빛은 다시 차갑게 식었다. “좋습니다. 대신 아직 제게 진 빚이 하나 있다는 걸 기억하셔야 해요.” 그 말을 남긴 그는 그녀가 반응할 틈도 없이 뒤돌아 걸어갔다. 혼자 남겨진 주다인은 정신을 다시 또렷이 차리고는 오래 머무르지 않고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평판이 괜찮은 법률 사무소를 찾아 들어가 아무 변호사나 예약을 걸었다. 상담실에 안내받은 후, 주다인은 핸드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운해 대학 병원 원장의 협박과 모욕이 가득한 목소리가 상담실 안에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변호사는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주다인 씨, 지금 이게 운해 대학 병원 원장님의 음성 녹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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