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풉...”
이를 지켜보던 강현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억지 부리지 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강우석의 말에 강가을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빠 논리가 말이 안 된다는 거 인정한 거네?”
“국립박물관 물건이랑 저딴 방이 어떻게 같은 레벨이야.”
강우석이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강우진도 거들었다.
“너 진짜 쪼잔하다. 그깟 방 내주면 뭐 좀 어때? 이 집에 널린 게 방인데.”
‘그러게... 널린 게 방인데 왜 다들 내 방만 욕심내는 걸까...’
강가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가만히 있던 강우주도 입을 열었다.
“우석이 말 틀린 거 없잖아. 저 방, 딱 봐도 어린 여자애를 위해 준비한 거고 어차피 네 취향도 아니잖아. 애가 저렇게까지 마음에 든다는데 왜 그래? 정 싫으면 내 방 내줄 테니까 저 방은 지우한테 양보해. 도대체 이깟 방 때문에 어제부터 뭐 하는 거야? 시끄러워서 못 살겠네.”
“그러게. 이게 다 누구 때문인지. 전에는 이런 일 없었는데.”
강가을의 고집 때문에 집안에 분란이 일었다고 원망하는 듯한 말투에 강가을은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김영애가 안내한 방에 들어간 죄밖에 없는데 왜 다들 그녀만 원망하는 걸까?
“그냥 양보하고 싶지 않은 거지... 너 정말...”
“그래. 양보하고 싶지 않아.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강가을이 강우진의 말을 잘라버리자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이는 없지만 이토록 담담할 수 있는 건 어려서부터 이 같은 상황을 수없이 겪어서였다.
“여름이는 동생이잖아. 언니가 돼서 그 정도 양보도 못 해?”
“집에서 여우를 기른다는 게 말이 돼? 여름이 가뜩이나 몸도 약한데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당장 내다 버려!”
“너 한 명 집에서 공짜로 먹고 자는 것도 부족해서 이제 짐승까지 들이겠다고? 너 일부러 반항하는 거야?”
이런 질타에는 이미 너무 익숙한 그녀였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언니라는 이유로 입양아라는 이유로 다들 그녀에게 양보를 강요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생각하며 직접 꾸민 방, 잃어버린 딸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남겨두었던 방, 이토록 온전히 자신의 것은 처음 가져보는 그녀에게 이곳은 방 그 이상의 이미였다.
...
한편, 오빠들이 나서면 이 방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강지우는 상황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자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서우 언니 말이 맞았어. 이제 내가 외동딸이 아니라고 사랑도 나눠 가져야 하는 거야. 저것 봐. 현우 오빠도 이제 저 계집애 편만 들고.’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 강지우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흑흑흑! 너 싫어! 나가!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그 말과 동시에 복도는 적막에 잠겼다.
가장 다혈질인 강우진마저 이 말만은 금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당사자인 강가을은 여전히 침착한 얼굴이었다.
“강지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강현우의 표정에 강지우가 움찔했다.
두려움 때문인지 순간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때 강기태, 강기성이 계단 어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밖으로 나와 있는 걸 발견한 강기태가 입을 열었다.
“다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김영애가 다급하게 강지우의 손목을 끌고 다가가선 애써 웃으며 설명했다.
“애들끼리 다툼이 좀 있었어요. 가을이 방은 제가 잘 준비했어야 했는데... 지우가 언니 방을 빼앗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가을이도 방을 내주지 않겠다고 하고요.”
자연스레 강가을이 결국 양보를 하지 않아 이 사달이 난 것이라 강조하자 강현우가 나서려던 그때, 강기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깟 방 때문에 도대체 언제까지 싸울 생각인 겁니까?”
한편, 굳은 표정의 강기태는 강가을에게 아예 다른 질문을 건넸다.
“방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가을이 너 솔직하게 대답해. 너 오늘 송씨 가문 저택에 갔었니?”
흠칫하던 강가을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이에 강기태의 표정이 더 무거워졌다.
“어제 얘기했잖아. 넌 이 일에서 손 떼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강현우가 강가을 앞에 섰다.
“무슨 일이에요?”
“송 대표가 형님한테 전화를 했었대. 가을이가 그 집 사모님한테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말이야.”
강기성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강가을에게 쏠렸다.
충격, 질타, 또 네가 집안을 시끄럽게 만드는구나라는 눈빛이었다.
지혜를 빼앗겼네 어쩌네 하는 말이 잘 믿기지도 않는 데다 송씨 가문이 엮인 일이라 가뜩이나 조심해야 하는데 그새를 못 참고 그 집까지 달려가다니.
“너 뭐야. 집에서 헛소리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 집이 어디라고 거기까지 가. 큰아빠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
“가을아, 이번엔 네가 잘못했어. 송씨 가문과는 중요한 프로젝트도 많이 엮여있단 말이야.”
김영애가 꾸짖자 강우진도 거들었다.
“너 도대체 왜 이래? 우리 집에 무슨 억한 심정이라도 있는 거야?”
모두의 질타를 무시한 채 강가을은 강기태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가 강씨 집안 사람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강기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쪽 집안에서 네 신분 하나 조사 못해낼까 봐? 너 이 대표 차 타고 갔었다면서.”
그의 말에 강가을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너무 경솔했나?’
“너 다른 얘기도 했었니? 송 대표...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이에 강가을은 그 집에서 있었던 일 전부를 얘기했다. 며칠 안으로 송하윤에게 사고가 닥칠 것이란 말을 전했다는 얘기까지 말이다.
그러자 다들 충격에 잠긴 듯 입을 떡 벌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그런 말을 건넸으니 당연히 저주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고, 어디서 저런 말썽쟁이가 들어온 건지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강기태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정말 네게 그런 신기가 있다고 해도 다짜고짜 그런 말을 하는 건 무례한 거야. 송 대표한테는 내가 해명할 테니 그쪽 집안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마라.”
겨우 찾은 딸이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게 싫은 강기태였다.
“그리고 방도 지우가 그렇게 좋다면 그냥 양보해. 집사한테 다른 방으로 정리하라고 할 테니까. 네 마음대로 인테리어도 하고.”
딸이 없었을 때는 딸에 대한 그리움을 그 방에 풀었지만 딸을 다시 되찾은 이상 그 방 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집안 아이들과 사이가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강기태의 그 말 한마디는 강가을에게 꽤 큰 상처로 다가갔다.
맑디맑은 눈동자에 겨우 붙었던 희망의 불꽃이 다시 어두워졌다.
“아버지!”
강현우가 동생의 편을 들려 했지만 강가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요.”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강가을이 말을 이어갔다.
“저 나가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