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5화

유하연은 유도경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라 멈칫하더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유도경 덕분에 결혼은 둘째치고 연애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어본다면 아마도 돈을 모아 유씨 가문과 미친 유도경을 떠나 멀리멀리 사라지는 것이었다. 유도경은 답안을 꼭 듣고 싶은지 더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 “대답해.” 유하연이 별수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결혼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빠한테 달렸죠.” 유도경이 유하연에게로 바짝 다가가더니 턱을 움켜쥐고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품어서는 안 될 생각을 품었다면 버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내 옆자리야.” 유하연을 이만큼 두렵게 하는 말도 없었기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지만 더 참다가는 화병이라도 날 것 같아 비아냥댔다. “그러게요. 결혼하려고 해도 이미 더럽혀진 여자인데 어떤 가문에서 나를 원하겠어요.” 순간 차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화가 난 유도경이 손에 힘을 주자 닿은 자리가 이내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말은 넣어두는 게 좋을 거야.” 유하연은 유도경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더는 그를 자극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면 결국 힘들어지는 건 유하연이었다. 이것이 유하연이 3년간 유도경 곁을 지키면서 얻어낸 것이었다. “그 말은 취소할게요.” 하지만 유도경의 안색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고 유하연을 풀어준 채 차에서 내렸다. 온몸에 힘이 풀린 유하연은 유도경이 원하는 게 뭔지 몰랐지만 이런 상태가 위험하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랫배에 손을 올려놓은 유하연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아이는 절대 남겨서는 안 돼. 지워야 해.’ 이튿날,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한 유하연이 자리에 앉자마자 비서실 동료 서은희가 자료를 한 아름 안고 찾아왔다. “하연 씨, 이 자료는 대표님이 꼭대기 층까지 올려다 달라고 한 자료에요. 꼭대기 층은 지문 인식이 필요한데 비서실에서 권한이 있는 사람은 하연 씨뿐이라 같이 좀 가져다줄 수 있겠어요?” 이에 유하연이 멈칫하더니 일정을 확인했지만 잡힌 회의는 없었다. “잠시만요. 대표님께 여쭤볼게요.” 유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은희가 단번에 거절했다. “대표님이 하는 회의도 아닌데 왜 대표님께 전화해요?” 서은희가 비아냥거렸다. “보스가 한 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잘못 가져갔다 해도 그냥 헛수고일 뿐 큰 문제는 없잖아요. 월급을 받았으면 그만큼 일해야지. 어떤 신분이든 회사로 들어오면 직원으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지 않겠어요?” 유하연도 서은희가 일부러 이런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유채린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유동민은 유채린을 보상하기 위해 이사라는 자리를 만들어줬지만 사실 놀고먹어도 되는 자리였고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꼭 한번은 갔다 와야 한다는 걸 유아연도 잘 알고 있었다. 유채린이 모든 사람들에게 유씨 가문 아가씨는 유하연이 아니라 유채린이라고, 유하연은 이미 유씨 가문에 의해 버려져 유채린을 따라가긴 턱없이 부족하다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 했다. 회사 내 다른 직원들도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멈춰서자 유하연이 지문으로 문을 열었다. 그렇게 몇 걸음 채 내딛기도 전에 서은희가 갑자기 서류를 전부 유하연에게 던져주더니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기다려요.” 서은희가 이 말만 남기고 화장실로 들어가자 유하연이 그 자리에서 한참 기다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유하연이 안으로 들어가 서은희를 부르기 시작했다. “서은희 씨?”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힘껏 밀었다. 중심을 잃고 안으로 들어간 유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칸막이가 굉음과 함께 닫혔고 서은희의 방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이건 그냥 작은 교훈일 뿐이에요.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아직도 그렇게 파렴치해서야 되겠어요? 아직도 자기가 있는 집 아가씨인 줄 아나.”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유하연이 문을 밀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봐서는 밖에서 무언가 막힌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물이 칸막이에서 머리 위로 쏟아졌다. 협소한 공간이라 피할 곳이 없었던 미처 피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칸막이 밖에서 물통을 던진 서은희가 우쭐거리며 위대한 공적을 읊조렸다. “이사님, 지시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 빌어먹을 년 지금 맨 꼭대기 층에 가둬뒀어요.” “저도 진작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여길 알고 찾아올 사람은 없거든요.” 변기 위에 앉아 있던 유하연은 서은희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듣고 아랫배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꼈다. 손발이 굳은 걸 봐서는 온몸의 피가 다 얼어버린 것 같았다. 유하연이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러 번 확인한 결과 전화할 만한 곳은 유도경밖에 없어 창백한 손가락으로 유도경의 전화번호를 누르는데 오늘따라 신호음이 유난히 길게 들렸다. 뚜뚜. “지금 거신 번호는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지만 유하연이 전화를 두 번이나 걸었지만 유도경은 끝내 받지 않았다. 유하연은 손이 너무 떨려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핸드폰에 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먹통이 되고 말았다. 고통과 추위가 한데 몰려오자 유하연의 머리도 점점 둔해지는 것 같았다. 유하연은 먹통이 된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이것이야말로 유도경이 준 따끔한 교훈 같았다. 유하연은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고 이렇게 가다간 여기서 죽어도 알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혀끝을 꽉 깨물며 애써 정신을 차리려 했다. 하이힐을 벗어 던진 유하연은 변기 뚜껑과 벽을 짚고 반동을 이용해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아랫배가 심하게 아파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유하연은 이를 꽉 깨문 채 조금씩 힘을 써서 몸 절반을 바로 옆 칸막이로 옮길 수 있었다. 남은 힘이 별로 없었지만 유하연은 포기하지 않고 다리에 힘을 바짝 준 채 옆 칸의 변기통에 발을 뻗으려 했지만 오랫동안 긴장한 터라 몸이 극한에 달했는지 손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유하연이 옆 칸으로 떨어졌고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힘들고 추웠던 유하연은 정신이 극도로 민감해진 상태였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다리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액체였다. 굳이 중절 수술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유하연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었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