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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비난

소찬식이 앞으로 다가가자 침대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그의 품에 안겨 모든 억울함을 쏟아냈다. 딸을 품에 안은 소찬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3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딸이 미우면서도 부쩍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어려서부터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자란 아이가 박수혁에게 빠져 그 집안사람들의 비난과 멸시를 받았다니. 소은정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진작 박씨 가문을 풍비박산내고 박수혁 그 자식도 다리를 분질렀을 것이다. “은정아, 네가 말했었지? 3년이 지난 뒤에도 박수혁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가업을 이어받기로. 이제 약속을 지켜야지?” 소찬식은 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소은정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이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니까.” “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렸다.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재벌집 아가씨가 사랑에 빠져 모두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을 선택했다. 마치 불길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처럼 말이다. 고통스럽지만 이제, 그 남자를 마음속에서 지워야 할 때다. “그래. 오빠가 도와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단 회사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해. 그리고 좋은 날을 선택해 환영 파티를 열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네가 누군지 말할 거야.” 그가 가장 아끼는 딸이 드디어 그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한다니. 소찬식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소은정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은정의 베프 한유라는 어디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부리나케 소씨 저택으로 달려왔다. 몇 년 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 한유라와 소은정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은정아,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이혼했다며? 잘했어!” 3년 전, 그녀의 신분을 숨기고 박수혁과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한유라였다. 하지만 소은정은 결국 모든 걸 버리고 박수혁을 택했고 한유라와도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한유라의 얼굴을 본 순간, 주책맞게도 소은정의 눈시울은 또 붉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소녀들처럼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정말 이혼한 거 맞냐며 닦달하는 한유라의 모습에 소은정은 이혼조정 서류를 꺼내 보여주었고 그제야 한유라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박수혁 그 바보 같은 자식. 여자 보는 눈도 없지.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거야.” 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말했다. “후회하든 말든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이젠 남이니까.” “잘했어. 네가 마음만 먹으면 너랑 사귀려는 남자들이 줄 설 텐데 왜 굳이 박수혁 같은 남자한테 목을 매?” 한유라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이혼서류를 쳐다보던 소은정은 자신의 짐을 박수혁의 집에 두고 왔다는 걸 떠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유라는 자신도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고 살짝 고민하던 소은정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소은정의 예상과 달리 문을 여는 순간, 박수혁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씨 그룹의 안주인이자 박수혁의 어머니인 이민혜는 항상 미리 언질도 없이 집으로 쳐들어오곤 했었다. 소은정이 친구를 데리고 온 걸 보고 이민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도도하게 고개를 쳐들고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야, 내가 말했잖아. 집에 아무 사람이나 들이지 말라고. 기밀 파일이라도 유출되면 어쩌려고 그래!” 소은정은 이런 그녀의 태도에 익숙했지만 한유라는 아니었다. 그녀는 바로 앞으로 다가가며 반박했다. “아무 사람 아닌데요? 아줌마는 뭐가 그렇게 잘났어요? 초면에 너무 무례하신 거 아닌가요?” 소은정은 소씨 가문의 금지옥엽,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인 듯 보이는 여자의 말투와 표정에서 지난 3년 동안 소은정이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대충 눈치챈 한유라는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이민혜는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짝퉁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면 재벌가 아가씨처럼 보일 것 같아? 난 너희 같은 애들이 가장 싫어. 주제도 모르고 어떻게든 남자 하나 잡아서 인생 역전을 바라는 애들, 내가 한 두 번 본 줄 알아?” 이민혜의 모욕에 한유라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소은정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나가 아니라 제 친구예요. 말씀 조심하세요.” 사랑을 갈구하는 강아지처럼 순종하고 이민혜의 말이라면 꼼짝도 못 하던 소은정이 그녀에게 대들다니. 비천한 노비 같은 주제에 감히 그녀의 태도를 지적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이민혜가 말했다. “말을 조심해?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천 것들 주제에 자존심은 있나 보지? 소은정, 너 같은 게 우리 집안 며느리로 가당키나 해? 3년이나 흐르니까 네가 정말 안주인이라고 된 것 같아? 끼리끼리라더니. 네 친구도 너랑 똑같아. 구질구질 하긴. 얼른 꺼져! 내 집에는 이런 사람 못 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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