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멍청해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행히 박수혁도 이 말을 끝으로 능숙하게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1시간 정도 진행된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는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Manolo Blahnik 하이힐을 신은 소은정은 물이 고인 계단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문 어귀에 놓인 우산통에 작은 우산 하나만 남은 걸 발견한 소은찬은 자연스럽게 소은정에게 씌워주며 말했다.
“가자.”
소은정은 신발을 바라보다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에이, 이 신발, 물에 닿으면 안 되는데.”
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은 동생을 훑어보았다. 치마를 입은 그녀를 안을 수도 없는 노릇, 소은찬은 정장 재킷을 벗어 계단에 펼친 뒤 소은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옷 젖겠다. 어서 내려와.”
“그래.”
소은정이 자연스레 소은찬의 손을 잡고 롤스로이스 차량으로 쏙 들어갔다.
뒤에서 이 모든 걸 바라보고 있던 임춘식이 감탄했다.
“두 사람 참 잘 어울리네요.”
임춘식을 살짝 노려보던 박수혁이 이를 악 물었다. 소은찬은 천재 물리학자로서 웬만한 거물급 정치가들도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소은정을 보살피는 모습이 아주 눈에 거슬렸다.
친구? 친구 사이는 넘어선 것 같은데...
“언니!”
이때, 신나리가 소호랑을 안은 채 소은정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어린아이처럼 달려왔다.
흠칫하던 소은정이 웃으며 소은찬에게 소개했다.
“이쪽이 바로 신나리 씨예요.”
자신의 연락처를 가지고 간 여자라는 말에 소은찬은 그녀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반갑게 소은정을 안으려던 신나리는 그 옆에 있는 소은찬을 보더니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 어떡해!”
신나리는 바로 소호랑을 내팽개치고 소은찬을 와락 끌어안았다. 소은정을 제외하고 이성과의 스킨십은 처음인 그는 당황스럽고 쑥스러운 얼굴로 신나리를 밀어냈다.
“자중하시죠.”
자신의 롤 모델을 직접 보았는데 누가 자중할 수 있을까? 신나리는 불쾌하다는 듯한 소은찬의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빛을 반짝였다.
“신나리라고 합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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