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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버림받은 여자

파티장은 오늘 파티의 규모와 테마에 맞게 번쩍이는 인테리어로 최대한 고급스러움을 어필하고 있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만 대도 알만한 정도의 유명 인사들이었다. 파티에 참석하면 박수혁을 만날 거란 걸 소은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그녀의 마음에 박수혁은 더 이상 그 어떤 파장도 일지 못했다. 박수혁에게 전처가 있다는 건 다들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한 번도 공식적인 장소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절도 스캔들”로 들썩거릴 때도 완벽한 보안 덕분에 소은정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유출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저 소은정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박수혁의 옆에 서 있는 서민영을 본 순간,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빨리 그 옆자리를 꿰찰 줄은 몰랐는데. 대단한걸? 그런 동생이 신경 쓰였는지 소은호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겁먹지 마. 오빠가 있잖아.” 하지만 소은정은 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겁은 저쪽에서 먹어야죠.” 이제 그녀는 지켜야 할 것이 없다. 지킬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없기 마련이다. 소은호와 소은정은 여유롭게 박수혁에게 다가갔다. 전 매형과 전 처남이라는 미묘한 관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형식적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한편, 박수혁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은호 옆에 있는 여자에게 꽂혀있었다. 소은호의 옆에서 눈부시고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에 그는 눈을 뗄 수 없었다.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의 소은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편안하면서도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치명적인 매력을 흘리는 그녀를 그는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곁을 떠나 소은호에게 간 걸까? 소은호와는 무슨 사이인 걸까? 달라진 모습에 대한 놀라움,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함, 온갖 감정이 섞여 박수혁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건 그녀의 곁에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 한편, 소은정의 등장과 동시에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긴 박수혁의 모습에 서민영은 애꿎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녀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은정 씨, 당신이 여긴 무슨 일이죠? 여긴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닐 텐데요?” 소은정에게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잊지 말라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서민영의 무례한 발언에 박수혁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그가 말리기도 전에 소은호가 차갑게 되물었다. “비천하다니요. 요즘 세상에 아직도 돈으로 계급을 나누는 무식한 사람들이 있군요. 그러는 그쪽은 어느 가문 영애신지?” 질타와 경멸이 담긴 말투에 서민영은 잠깐 당황했지만 바로 화제를 돌렸다. “소 대표님, 소은정 씨는 얼마 전 수혁 씨와 이혼한 사이인데. 그건 알고 계시나요?” 서민영은 소은정이 박수혁과 이혼한 뒤로 다른 재벌가 남자를 꿰찬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소은호가 왜 이혼녀와 사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은호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다. “이혼한 사람은 파티에 참석할 수 없다는 규정이라도 있나요? 박 대표님은 참석하셨잖아요?” 이에 서민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박수혁은 그녀를 도와줄 생각은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제가 파티에 참석을 하든 말든, 누구랑 사귀든 말든 서민영 씨한테 말할 의무는 없는 걸로 아는데요? 주제넘는 오지랖이라는 생각 안 드세요?” 그녀는 더 이상 서민영에게 비굴하게 굴 생각도 비굴하게 굴 필요도 없었다. 태한 그룹에서 박수혁과 서민영의 스캔들을 억지로 진압하긴 했지만 이미 인터넷에서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뒤라 다들 소은정과 박수혁의 이혼 사유가 외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파티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박수혁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소은정의 모습에 다들 소문이 사실일 거라고 짐작하기 시작했다. 소은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서민영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오늘 파티는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는 행사죠. 그에 걸맞게 파티장도 최대한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것 같네요. 그런데 서민영 씨, 당신의 분위기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요. 박 대표님, 다음부터는 장소에 어울리는 파트너와 함께하시는 게 좋겠어요.” 말을 마친 소은호는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소은정과 함께 자리를 떴다. 방금 전, 소은호의 말은 서민영의 분위기가 천박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전 처음 겪는 모욕에 그녀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혁아...” 하지만 박수혁은 서민영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멀리 사라지는 소은정과 소은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혼한 지 1개월 차, 아무렇지 않은 듯한 소은정의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다른 남자 옆에서 그에게는 눈빛조차 주지 않는 그녀의 무심함이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파티가 시작되고 각 기업 대표들이 박수혁에게 다가왔다. 박수혁은 언짢은 기분을 억지로 감추며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서민영은 곧 어색하게 혼자 남겨졌다. ...... 파티장 밖에는 커다란 수영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달빛을 비추는 풀장의 구석, 소은정은 와인잔을 들고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재벌가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자가 어떻게 이런 파티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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