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프런트 직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얼굴을 팔아먹는 여자 같았다.
“저기요. 손님이라고 다 같은 손님인 줄 알아요? 밑도 끝도 없이 사장님을 만나겠다고요? 수백억대 몸값을 가진 우리 사장님이 당신 같은 촌닭을 만나주기나 하겠어요?”
‘촌닭’이라는 호칭에 정가현은 화가 나서 웃음이 다 나왔다.
수백조의 몸값을 가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눈썰미가 아주 젬병이다.
이런 보잘것없는 직원과 더는 입씨름을 하기 싫었던 정가현은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연락하세요. 연락했는데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면 내가 책임질게요.”
프런트 직원은 그녀의 말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정가현의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운 눈빛에 저도 몰래 몸이 움츠러들었다.
“책임진다고 했으니 다른 말 하지 마세요.”
프런트 직원은 콧방귀를 뀌고는 전화기를 들어 거만한 표정으로 잔뜩 과장해서 보고를 올렸다.
그녀는 이미 정가현이 경비원에게 끌려 나가는 모습까지 머릿속에 그렸다.
그런데......
이내 프런트 직원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가현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 표정에 정가현은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정가현은 그녀를 향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몇 층이죠?”
“제일 꼭대기 층, 2...... 27층이요.”
정확한 숫자를 알아낸 정가현은 캐리어를 끌고 머리도 돌리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프런트 직원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저 여자 대체 정체가 뭘까?
왜 하성훈 비서 실장님을 공손하게 만드는 거지?
설마 사장님의...... 애인?
프런트 직원은 이 놀라운 사실을 재빨리 단체 채팅방에 퍼뜨렸다.
......
꼭대기 층에 도착한 후, 정가현은 곧장 사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때 응접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짙은 남색 정장을 입은 남자는 보기만 해도 귀티가 좔좔 흐르는 것이 고귀한 느낌을 풍겼다.
남자는 그녀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이혼 축하해.”
애정이 가득 담긴 나지막하고 따뜻한 목소리.
“작은오빠?”
정가현은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가현은 현재 엔젤 엔터의 사장이 셋째 오빠 유한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녀는 캐리어를 던져버리더니 유한진에게로 달려가 와락 안겼다.
“작은오빠, 나 안 보고 싶었어?”
6년을 만나지 못했던 그녀는 여전히 애교스럽고 사랑스럽게 머리를 유한진의 가슴에 묻었고 유한진은 환히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전부 동생인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돌아왔으니 됐어. 우리 유씨 가문의 아가씨이자 오빠들의 공주님이 왜 변씨 가문에서 그런 고생을 하며 살았던 거야.”
싸늘해진 유한진의 눈빛에 정가현은 다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작은오빠, 나 엔젤의 연 수익 5% 인상한다고 아버지랑 계약했으니까 나 많이 도와줄 거지?”
정가현은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유한진을 향해 잔뜩 애교를 부렸다.
유한진은 그녀와 함께 소파에 앉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5%는 아직 너한테 어려울 수 있어. 하지만 아버지가 절대 너 도와서 부정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불호령을 내렸으니 난 기껏해야 작은 일에서만 널 도울 수 있을 거야. 모든 결정권은 너한테 있어.”
정가현의 작은 얼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유한진이 누군가? 연예계의 생사를 손에 쥐고 있는 남자, 손가락만 움직여도 연예계를 발칵 뒤집을 수 있고 회사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세계 각지로 뻗어나갈 수 있게 주도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의 전화 한 통이면 엔젤 엔터는 즉시 수익 10%도 쉽게 인상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상황을 예상하고 불호령을 내렸다니.
이건 나 죽으라는 거 아닌가?
그녀의 절망적인 표정에 유한진은 오빠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양 볼을 꼬집었다.
“바보야. 여러 가지로 경험하는 것도 좋아. 어쨌든 왔으니 이 임시 사장은 그만 물러나야겠다.”
“아니, 아직 물러나지 마.”
유한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정가현은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뭔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 그녀는 유한진을 향해 윙크를 날리며 입을 열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오빠 한번 들어볼래?”
유한진은 여우처럼 간사한 그녀의 표정에 순간 넋을 잃었다.
한 시간 뒤, 두 사람은 의기투합을 마쳤다.
그리고 불과 5분 만에 회사 전체 직원은 긴급 통지를 받게 되었는데, 바로 회사에 미스터리한 매니지먼트 팀 부장을 임명했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