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그래, 네 입이 너무 구려서 내가 좀 때렸어.” 정가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손바닥을 문지르며 싸늘하게 웃었다. “역시 변씨 가문은 가정교육이 별로네? 어쩜 변씨 가문 아가씨라는 사람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여! 그리고 한 번 다녀왔으면 뭐? 돌싱은 이 파티에 참여할 수 없다고 누가 그래? 그렇다면 네 오빠도 여기 오지 말았어야지. 아, 그리고 네가 했던 말, 인격모독이고 명예 훼손이야. 확 고소할라.” “너!” 변서아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맞고 가정교육으로 모욕을 당하다니, 그녀와 변씨 가문의 체면을 제대로 구기는 순간이다. 게다가 상대가 인생에서 제일 하찮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정가현이라니. 이건 수치고 모욕이다. “썅년아, 나 오늘 너 죽인다!” 그녀는 흉악한 표정으로 정가현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유한진이 재빨리 정가현을 품에 안고 변서아를 등졌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변서준도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변서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변서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소란 피울 거야? 당장 사과해!” “오빠, 나 오빠 동생이야! 이 천박한 년이 내 따귀를 쳤는데 도와주지 못할망정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건데? 내가 왜 사과해야 해!” 변서아는 곧장 기세가 약해졌다. 천박한 년이라고 욕하면 어때서? 모두에게 정가현 이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서러운 그때, 모지영이 다급히 다가와 그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서아야, 서준이 진짜 화났어. 서준이도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다 정가현이 너 정말 고소라도 하면 어쩌려고? 일단 한발 물러서자. 우리에게 시간은 많아.” 시간은 많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다. 변서아는 모지영의 위로에 힘입어 그제야 진정을 찾고 모깃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 그러더니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도망갔다. 모지영은 변서준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바로 변서아를 따라나섰다. 한바탕 해프닝은 그제야 마무리를 지었다. 사람들은 아까 변서아가 했던 말에 호기심이 생겼지만 그들은 유한진이나 변서준이나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파티는 곧 원래의 분위기를 회복하고 아무도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유한진은 변서아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렇게 쉽게 보내준다고? 내가 쟤 좀 혼내줄까? 너 화 풀리게?” 정가현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유한진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 “풀긴 뭘 풀어? 나 화 하나도 안 났어. 쟤는 입이나 나불댔지만 난 따귀를 날렸잖아. 쟤가 손해본 거지.” 유한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공주님에게 왠지 또라이 기질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 속에서 변서준은 도무지 파티를 즐길 수 없었다. 그는 몇 번이고 정가현 쪽을 바라보았는데 유한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애교가 가득 차 있었다. 기분이 불쾌했다. 왜 불쾌한 지 그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정가현에게 농락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십여 분 뒤 모지영은 다시 변서아를 데리고 파티홀로 돌아왔는데 왼쪽 얼굴의 붉은 자국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아마 화장을 고친듯 싶었다. 그녀는 조용히 모지영과 변서준의 뒤를 따랐는데 이상할 정도로 얌전했다. 하지만 남몰래 사람들 속에서 빛나는 정가현을 노려보기도 했다. 파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남자들은 동행한 파트너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잔뜩 신이 난 모지영은 변서준에게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 자기에게 손을 내밀며 신사답게 춤을 청하기를 기다렸다. 이때 변서준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모지영은 무대 중앙에서 그와 함께 음악에 몸을 맡기는 상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모지영은 자기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변서준은 와인잔을 들고 다른 테이블로 터벅터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