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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결국 최하준은 뻣뻣하게 굳은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진사는 속으로 멀쩡하게 생겼는데 안면신경마비라니 안 됐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서류를 작성했다. 최하준이 신분증을 내밀었다. 여름은 그때서야 남자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다. ‘최하준’ ‘선우 오빠네 어머니는 양 씨인데, 외삼촌이면 양 씨여야 하는 게 아닌가?’ 여름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최 씨네요?” “네.” 하준은 고개를 숙인 채 이름을 적느라 여름의 말에 담긴 다른 뜻을 눈치채지 못하고 대충 대답했다. “어머니 성을 따랐습니다.” “아~.” 여름은 이 남자가 한선우의 외삼촌이라서 결혼을 하자고 덤빈 것인데, 사람을 잘못 안 줄 알고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어쨌든 뭔가가 찜찜했다. 혼인신고는 10분 만에 끝났다. 약간 슬프기는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한선우와 결혼할 줄 알았는데, 겨우 얼굴 한 번 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될 줄이야. “제 연락처입니다.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준은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어주더니 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여름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최하준을 잡았다. “이제 부부인데 같이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최하준이 싸늘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랑 사는 건 불편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합법적인 아내죠. 이혼할 때 하더라도 정식 부인이라고요.” 여름이 혼인신고서를 흔들어 보이고는 불쌍한 척을 하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언니가 돌아오더니 엄마 아빠가 날 버려서 이제 살 곳도 없어요.” “월세를 알아보시죠.” 최하준은 눈도 깜짝 않고 가려도 했다. “여보, 날 버리지 말아요!” 여름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최하준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난 이제 당신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접수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어쩌자고 함부로 이런 여자와 혼인신고를 했을까 생각하며 최하준은 후회했다. “컨피티움에 삽니다. 알아서 가 있어요.” 참다 못한 최하준이 여름을 구청에서 끌고 나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작은 방을 쓰십시오. 내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고.” 여름은 속으로 웃었다. ‘들어와 달라고 애걸할 날이 올 것이야.’ “그리고 지오 노는 것은 방해하지 마십시오.” “지오요?” 놀라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들이 있었어요?” 최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잘 부탁합니다.” 하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여름은 놀라서 잡으러 갈 생각도 못 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결혼은 했지만, 새엄마가 될 준비는 안 되어 있다고! 으아아아아~’ 길가에 한참을 서 있었다. ‘새엄마’, ‘새 외숙모’ 등 장차 자신에게 붙게 될 타이틀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결국 여름은 핸드폰을 열어서 꼴도 보기 싫은 한선우의 사진을 열어보고는 다시 결심을 굳히고 장난감을 사러 갔다. ‘지오라니까 남자아이겠지.’ 여름은 장난감 자동차와 레고 등을 골라 차에 싣고 컨피티움으로 향했다. 장난감을 한 아름 안고 심호흡을 한 뒤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릭 하면서 문이 열렸다. 여름은 한껏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 “안녕, 지오야⋯.” “야옹~” 조용한 거실 소파에 하얀 털에 베이지색 귀를 한 아기아기한 고양이가 대답했다. “⋯⋯.” 여름은 눈을 끔뻑거렸다. “네가 지오니?” “야아옹~” 고양이는 기지개를 한 번 켜더니 소파에서 뛰어내려 다가왔다. 여름이 손에 든 장난감 냄새를 맡아보더니 흥미 없다는 듯 다시 도도하게 소파로 걸어가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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