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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최하준이 말했다. “그렇군요. 고양이는 임신하면 어떤 증상이 있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원장 선생님이 한참을 설명하더니 고양이 태교 수첩을 건네며 당부했다. “임신 기간에는 특히 영양에 신경 써 주십시오. 댁의 고양이는 워낙 약해서 유산될 수 있어요. 곁에서 잘 보살펴 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최하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건지 공주마마를 모시고 사는 건지⋯.’ 최하준은 곧 여름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이번에 너무 심하게 대한 것 같았다. ‘됐어, 집에 가서 이제부터 일단은 나가란 소리만 안 하면 되겠지, 뭐.” 최하준은 컨피티움으로 돌아와 문을 열고 불을 켰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작은방에 아무도 없었다. 걸려있던 옷도 모두 사라졌다. 여름이 가버린 것이다. 잔뜩 인상을 썼다. 안겨있던 지오가 힘없이 ‘야옹~’ 하고 둘러보더니,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짜증이 났다. ‘뭐, 잘됐네. 애초에 그런 여자랑 너무 얽히는 건 좋지 않았어. 이혼할 때도 깔끔하고⋯. 지오를 돌봐줄 이모님을 한 분 구해야겠다.’ ****** 오전 10시. 여름이 몽롱한 채 소파에서 눈을 떴다. 어젯밤 들어와 보니 침대 여기저기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딱 봐도 시트를 갈지 않은 상태였다. 여름은 위생이 신경 쓰여 침대보다는 좀 나아 보이는 소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세수를 하려는데 윤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얘, 남편하고 같이 사는 거 아니었니? 오밤중에 싸구려 모텔은 왜 갔어? “어떻게 알았어?”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에 올라왔던데?” 윤서가 불쾌한 듯 말했다. “진가은 고것이 글쎄, 네가 그렇게 아가씨 노릇을 하더니 강여경이 돌아오자 집에서 쫓겨났다고 얼마나 뒷담화를 했는지 소문이 쫙 퍼졌어.” 여름은 그저 ‘어~’하고 듣기만 했다. 진가은도 동성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러나 매력적이고 성적까지 우수한 여름을 늘 질투했다. 그 때문에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진가은이 이런 상황을 고소해 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넌 화도 안 나니?” 윤서가 기분 나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너 5성급 호텔 아니면 발도 안 들여놓잖아?” “그게 그렇게 됐네. 아빠가 카드를 정지시켰더라. 이제 돈도 없는데 밤에 하준 씨한테도 쫓겨났어.” “나에게 연락을 했어야지.” “너무 늦어서 깨우기 미안하더라고.” “강여름, 너 진짜 바보구나? 주소 불러!” 40분이 지나자 윤서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좁고 꾀죄죄한 방을 보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가, 당장 가자. 우리 집으로 가.” “됐어. 남친도 있는데 네 집에 눌러 앉는 건 좀 아니지. 집을 하나 빌릴까 봐.” 여름이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윤서도 동의했다. “하긴, 어제 선우 오빠가 우리집으로 또 너 찾으러 왔더라. 징글징글하다.” 그 이름을 듣자 갑자기 목이 멨다.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인데, 어젯밤 한선우가 쏟아낸 말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젠 꼴도 보기 싫어.” “나도!” 윤서가 끄덕였다. “아 참, 결혼까지 해놓고 최하준 씨는 어쩌자고 오밤중에 사람을 내쫓아?” 여름은 쓴웃음을 지으며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윤서가 함께 분노했다. “미쳤어? 자기랑 혼인신고를 한 사람이 고양이보다도 못하다는 거야, 지금?” 강여름이 중얼거렸다. “당연하지, 뭐.” 윤서가 말했다. “⋯⋯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남자랑 혼인신고 같은 거 하는 게 아니었어.” 여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후회하는 중이었다. 윤서가 한숨을 쉬었다. “아유, 됐다. 일단 밥이나 먹자. 내가 괜찮은 음식점을 하나 알아뒀지. 밥 먹고 나면 집 보러 가자. 아 참, 시아도 부를까?” 가는 길에 여름은 채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채시아도 두 사람과 절친이다. 그러나 연예인이라 워낙 바빠서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부르기는 힘들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자 채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여름아. 무슨 일이야?” “윤서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갈까 하고, 우리 본 지 오래됐잖아.” “지금 잡지 촬영 중이라 바쁜데, 미안해서 어떡해?”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보자.” 통화가 끝나가 윤서가 한숨을 쉬었다. “인기 연예인이라 점점 더 바쁘네. 그래도 그때 네가 곡 안 써줬으면 오늘날의 채시아가 있겠냐?” “친구들끼리 서로 돕고 그러는 거지, 뭘.” ****** ‘월인’은 새로 생긴 맛집이었다. 꽤 규모가 큰 한옥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입구에는 호화로운 차량이 즐비했다. 돈 있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막 정원에 들어서는데 익숙한 모습이 보여다. 강여경, 진가은, 그리고⋯. “야, 채시아!” 윤서가 크게 불렀다. 선글래스를 끼고 환하게 웃던 채시아가 움찔했다. 윤서가 여름을 끌고 다가갔다. 매우 화난 듯했다. “방금 통화할 때는 잡지 촬영 있어 바쁘다더니 쟤들 만날 시간은 있었나 보네? 너 저 사람들이 누군지는 알아? 하나는 어릴 때부터 웬수고, 하나는 남친도 뺏어, 재산까지 뺏어간 날강도야.” “누굴더러 날강도래? 입 조심하지 못해?” 진가은이 윤서를 확 밀쳤다. 여름이 얼른 윤서를 부축하며 증오의 시선을 보냈다. 이렇게 재수가 없을 줄 알았다면 여기까지 밥을 먹으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아야, 왜 저 사람들하고 같이 있어? 강여경은 그렇다고 치고, 나랑 진가은이 얼마나 사이가 안 좋은지는 네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니?” “왜냐고?” 진가은이 채시아의 손을 잡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말해 뭐해? 이제 상속녀도 아니고 거지 같은 모텔이나 들락거리는 애랑 놀 수는 없잖아. 시아는 이제 인기 초절정의 가수인데.” 여름은 채시아를 똑바로 노려봤다. “네 입으로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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