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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9화

“그게… 드라이기 좀 가져오라고.” 여름은 하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저도 모르게 옷을 추슬렀다. “뭘 가려? 며칠 전에는 내가 다 씻겨주기도 했는데.” 하준이 눈썹을 까딱했다. “내가 옷 가져다 줬는데 드라이기는 어디다 쓰려고?” 하준은 팬티까지도 새것으로 가져다 주었는데 드라이기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됐다. “알아서 뭐하게? 여름이 부루퉁하게 뱉었다. “가져다 줄 거야, 말 거야?” “알았어, 알았어. 와이프가 가져오라면 가져다 드리는 거지.” 하준이 싱글거리며 얼른 드라이를 들고 왔다. 여름은 받아들더니 쾅하고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한참을 들고 말려봤지만 속옷이 너무 젖어서 도저히 드라이기로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머리만 말리고 나왔다. 음흉한 하준의 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고 어색하게 벗어두었던 옷으로 가슴을 가리고 나왔다. 그런 여름을 보고 하준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다 아는 사이에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내가 당신인 줄 알아? 아주 그냥 부끄러운 게 없지?” 여름이 볼멘 소리를 했다. “뭐 카디건 같은 거라도 하나 가져다 줘. 이러고 집에 갈 수는 없잖아.” 하준의 식구들 눈이야 어떻게 피한다지만 집에 가면 아버지와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고 가기에는 민망했다. “늦었는데 그냥 애들이랑 자고 가. 당신 간다고 하면 애들이 안 좋아할걸.” 하준이 손으로 가리켰다. “당신이랑 애들은 여기서 자. 나는 옷 빨아서 널고 올게.” “안 돼. 내가 당신 집에서 잔다는 게 말이나 돼?” 여름이 부루퉁해서 말을 이었다. “아직 양유진이랑 이혼을 한 것도 아닌데 당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 계신 본가에서 내가 어떻게 자?” 하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도 우리 사이가 마냥 순수한 사이라고 생각 안 해. 잊어버렸어? 퇴원하던 날 당신이 기자들 앞에서 내 입술을 훔쳐갔잖아? 그게 어디 사람들 눈치 보는 사람이 할 짓인가? 그리고 남들이 알면 좀 어때? 우리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린 게 하루이틀도 아닌데.” 여름이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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