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장

기억들이 내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느낌에 나는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나는 머리를 세게 쳐봤지만 그 기억들은 계속 미친 듯이 쏟아졌다. “꼬물이. 내 딸 꼬물이.” 김현호의 눈도 분노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김현호의 눈빛은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 같았고 언제든지 분노가 터져 나올 것처럼 보였다. “승호 형. 형 아이가 죽은 것도 억울하겠지만 형은 내 아이도 죽였어요. 아이가 태어났다면 나와 다은 누나는 정정당당하게 함께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다 형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고요. 내가 형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이제 알겠어요?” 김현호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다. 내가 임다은의 아이를 해칠 리가 없었다. 김현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혹시 임다은이 그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을까? 임다은처럼 이기적으로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계획을 망쳐버릴 아이를 원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김현호는 일개 배우일 뿐이었다. 임다은이 꼬물이에게 저지른 잔인한 짓을 떠올리면 이번 아이 역시 임다은이 의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아이를 돌보지 않아 유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악.” 나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머릿속에서 기억들이 다시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장례식에서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슬픔에 빠져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고 어머니 역시 몇 번이나 기절했다 깨어나셨다. 기억 속에서 거리가 가까워지며 나는 장례식장에 걸려 있는 사진에 가까워졌고 얼굴을 보니 나의 아버지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건...” 나는 고통 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분명 여행을 가셨었다. 머릿속에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장례식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나는 미친 듯이 바닥을 내리치며 머리를 감싸안고 고통스럽게 외쳤다. “아빠. 엄마. 꼬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