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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하은별은 이젠 대놓고 우쭐거렸다. 온유나와 성우진이 이혼하면 그녀는 인제 그만 성씨 가문 작은 사모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한 온성 그룹도 한때 휘황했던 그 온성이 아니니 온유나는 모든 카드를 잃은 셈이다. 하은별이 경멸에 가득 찬 말투로 그녀에게 비아냥거렸다. “유나야, 넌 네가 4년 동안 아낌없이 베풀어주면 우진 오빠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내가 오빠를 구해준 은인이 아니면 또 어쩔 건데? 내 뒤엔 항상 양엄마가 있어. 네가 물러나거든 조만간 내가 진짜가 될 수 있다고.” 온유나는 몸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입을 열고 말을 내뱉을 힘조차 없었다. 그저 양옆에 내려놓은 새하얀 손을 꼭 쥔 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고 입술을 꼭 깨물며 차오르는 고통을 겨우 참고 버텼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던 하은별이 옆에 있던 도우미들과 함께 깔깔대며 웃었다. “유나 씨, 이 정도 연기면 연예계 진출해도 되겠는데요? 도련님 가셨어요. 이 기막힌 연기를 볼 수가 없다고요.” 하은별이 옆에서 실소를 터트렸다. “유나야, 인제 그만 꿈에서 깨야지.”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설마 아직도 네가 온씨 가문의 사랑을 받는 장녀인 것 같아? 이걸 어쩌나? 잔혹하지만 진실을 마주할 때가 됐어. 넌 이젠 아무것도 아니야. 네게 고귀한 신분을 줬던 친아빠는 이미 죽었고 너희 집안 회사도 주도권을 뺏긴 셈이야. 성씨 가문 작은 사모님 자리는 이만 내놓아야지. 지금의 넌 피에로고 주인 잃은 개에 불과해. 아무것도 아니란 뜻이야. 알아듣겠어?” 하은별이 곱씹을 때마다 온유나는 머리가 무겁고 눈앞에 사물들이 겹쳐서 보이기까지 했다. 한편 도우미들은 아니꼬운 시선으로 온유나를 쳐다보며 어쩌다 얻은 기회라 쉽게 놓아주질 않았다. “유나 씨, 뭘 그렇게 주제넘게 굴려고 해요? 도련님은 애초에 유나 씨를 안 믿어주잖아요. 생각해보세요. 두 분 결혼한 3년 동안 유나 씨가 도련님의 믿음을 말끔히 저버린 거 아니에요?” 온유나는 이를 악물고 옆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일단 별장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 내딛자마자 차가운 땅바닥에 넘어졌고 그 옆으로 누군가가 발을 거둬들였다. 상대는 바로 아까 입을 나불거린 도우미였다. 도우미는 미안함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유나 씨. 제가 그만 부주의로...” 온유나는 사지가 부서질 듯 아프고 그 고통에 잠식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살갗과 뼈마디까지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고 차라리 한 줌의 재가 돼버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를 본 하은별이 움츠리고 앉아서 그녀의 턱을 집어 올리며 시선을 마주했다. 온유나의 귓가에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해졌다. “네가 지금 얼마나 불쌍해 보이는 지 알아?” 약자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찬 말투였지만 내뱉은 말은 정반대였다. “쥐가 길을 건너면 사람마다 때려잡으라고 소리치잖아? 네가 지금 딱 그 꼴이야!” 곧이어 그녀는 손을 내려놓고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수건을 건네받고 더러운 물건이라도 만진 듯 힘껏 손가락을 닦았다. 얼굴에 띈 표정도 짜증으로 가득 찼다. 온유나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서 창백한 얼굴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녀는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때 허리에서 뼈가 부서질 듯한 고통이 차올랐다. “빌어먹을 쥐새끼가 또다시 기어오르려고? 꿈 깨!” 허은별이 눈치를 주자 도우미가 가차 없이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온유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배를 걷어차이니 더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하은별이 놀란 척하며 도우미를 질책하는 흉내를 냈다. “뭐 하는 짓이야? 유나 금방 유산한 거 몰라?” 그녀는 턱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엄청 아프겠다.” 온유나는 고개를 들어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와 도우미들을 째려봤다. 한편 하은별은 직성이 풀렸는지 인제 그만 이 게임에서 흥미를 잃었다. “됐어, 적당히 해. 오빠도 갔는데 연기 그만해. 설사 옆에 있었다 해도 널 안쓰럽게 여기지 않을 텐데 뭘 굳이 이렇게까지 힘 빼는 거야?” 이때 문 앞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임성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대문을 꿈쩍없이 지키는 경호원들을 쳐다보더니 슬슬 인내심이 고갈됐다. “둘 중에서 골라. 날 들어가게 하던가 내게 한바탕 두들겨 맞고 회사로 찾아와서 비서한테 치료비 받던가.”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여전히 꿈쩍도 안 하자 임성준의 눈가에 싸늘한 한기가 비쳤다. 곧이어 그는 모든 경호원을 가뿐히 쓰러 눕히고 성씨 저택으로 들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온유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유나야!” 임성준은 온유나를 안고 구경에 나선 하은별 일행을 째려봤다. “하은별, 넌 내 손에 죽어야겠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건 맞지만 유나에게 아무런 버팀목이 없는 건 아니야.” 다만 임성준의 협박에도 하은별은 깔깔거리며 전혀 양심에 찔리지도 않고 되레 더 기고만장해졌다. “온태원이 다 죽은 마당에 온씨 가문에서 누가 얘를 지켜주겠어? 너야? 넌 또 뭔데?” 품에 안긴 온유나가 점점 더 힘들어하자 임성준은 일단 그녀를 데리고 별장을 나섰다. 온유나는 의식을 잃은 건 아니지만 도무지 말할 힘이 없었다. 처음엔 임성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뒤로 갈수록 아련해지고 공기와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 병실 침대에 누운 온유나는 긴긴 꿈을 꾸었다. 그건 아주 진실되고 행복한 꿈이었다. 지나간 많은 일들이 꿈에서 나왔는데 그녀만의 원맨쇼가 아니었다. 그는 안 오겠다고 했지만 실은 그날 자리에 왔었다. 마음을 휘어잡았던 걱정거리가 그가 나타난 순간 말끔하게 사라졌고 온유나는 간만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얻게 되었으니까. 아쉽게도 그건 단지 유난히 진실된 꿈에 불과했다. 꿈이 어떻게 진실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오지 않았다. 결국 오지 않았다. 코끝을 찌르는 짙은 소독수 냄새가 조금은 익숙했고 의료 기기가 작동하는 똑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온유나가 서서히 눈을 떴다. 온몸에 통증이 엄습해와 그녀를 곧 잠식할 것만 같았다. 줄곧 옆에서 지키던 임성준이 그녀가 깬 걸 보더니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깼어 유나야?” 온유나는 오랫동안 받아보지 못한 관심 어린 눈길을 임성준한테서 받고 있었다. 온태원이 사망한 이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눈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오빠...” “좀 어때? 의사 선생님 불러와서 검사받아볼까?” 임성준이 말하면서 어느새 호출 벨을 눌렀다. “드디어 깼네. 너 꼬박 하루를 잤어.” 온유나가 놀란 듯 되물었다. “그렇게 오래 잤어요?” “그랬다니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온유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 동안 잤는지 모른다. 그저 행복한 꿈을 꾸었고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의사가 들어와서 검진을 마친 후 그녀더러 푹 쉬라고 했다. “저 많이 나아졌어요.” 온유나가 말했다. 한편 임성준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녀에게 물었다. “유산한 지도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매서운 한파에 뭣 하러 밖에 나갔어?” 온유나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에 입술도 갈라 터진 채 임성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요, 성준 오빠.” “우리 사이에 새삼스럽게 굴지 마. 애초에 내가 힘들 때 너희 가족들 도움으로 집까지 돌아갈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거잖아.” 임성준은 감히 온태원의 이름을 언급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 몸이 너무 허하다 보니 정서적 파동이 심해지면 안 된다. 임성준은 그녀를 부축해 침대 맡에 기대게 했다. “성우진이랑 이혼했어? 어떻게 된 거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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