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오전 내내 일을 했더니 목이 마른 온세라는 물을 마시려고 계단 옆을 지나다가 우연히 두 하인이 그녀에 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온미라는 외국 박사 출신인데, 얼굴도 예쁘고 춤도 잘 춰서 작년에 강성 백조 댄스 챔피언도 했대요.”
“그러니까요, 우리 대표님과 결혼한 이 사람은 뭐예요. 말도 못 하고 종일 설설 기면서 결혼식도 없이 최씨 가문에 들어가다니. 정말 싸구려인데 무슨 사모님이라고 그래요.”
“아무리 우리 대표님 얼굴에 흉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능력이 대단하고,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사람이 벙어리를 아내로 맞이할 순 없지 않겠어요?”
“휴, 그러게요. 벙어리는 3급 장애인이래요.”
‘3급 장애인...’
온세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 한 것이 아니었다. 열 살 때 큰 화재로 그녀의 목이 타버렸고, 아빠는 비싼 돈을 주고 그녀를 외국에 보내 치료를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체했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어른이 된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는 아버지 곁에서 자란 예쁜 딸이 아니라 도중에 온씨 가문으로 데려온 외부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런 수군거림에도 온세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웃어버렸다. 그녀가 돌아서려는 순간, 갑자기 싸늘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최씨 가문의 일을 함부로 논하라고 했어?”
고개를 돌린 두 아줌마는 얼굴이 차갑고 눈빛이 싸늘한 최 대표님이 실눈을 뜨고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두 사람은 당황한 채 변명했다.
“대표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함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표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최서진의 얼굴에는 여전히 찬 기운이 맴돌았고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뒤따르던 맹 비서는 앞으로 다가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둘 다 내일 오지 않아도 됩니다.”
두 아줌마는 갑자기 낙담했다.
최서진은 문득 온세라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 묻은 얼룩과 허리춤의 앞치마를 훑어보던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넌 사모님인데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야?”
따져 묻는 말투에 온세라는 어리둥절했다.
소시연이 그녀를 부리는 것을 그는 정말 모른단 말인가?
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최서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집에 하인이 있으니 앞으로 이런 일은 네가 할 필요가 없어.”
온세라는 생각을 다시 접고 나서 내색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앞치마를 풀고 빗자루를 내려놓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방금 해고되어 무릎을 꿇고 있는 그 두 아줌마를 무심코 보았다.
온세라는 마음이 조금 움찔했다.
사실 이 남자는 그녀를 돕는 것이 아니라 최씨 가문의 체면을 위해서일 뿐이라 생각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화 속에만 있을 뿐 그녀의 인식 속에는 없었다. 그래서 온세라는 바보처럼 최서진에 고마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위층으로 돌아온 그녀가 막 침실 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아빠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연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아래층에 있는 최서진도 맹 비서의 문자를 받았다는 걸 그녀는 알지 못했다. [온씨 가문에서 사모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최서진은 눈살을 찌푸린 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온세라는 최씨 가문에서 휴대전화를 도청하는 줄도 모르고 휴대전화 속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세라야, 아빠가 급한 일이 있는데 최서진 서재에 가서 ‘부동산’이라는 주홍글씨가 적힌 업무계약서를 한 장씩 찍어줘.”
온재혁이 뱉은 말은 이해하기 쉬워도 내용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온세라는 잠시 침묵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지 않을 것을 예상한 온재혁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아빠는 네가 효도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네 외할머니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온세라는 ‘외할머니가 아직도 너를 기다린다'라는 그 말에 흠칫했다.
외할머니는 아직 병원에서 혼수상태이고, 아버지의 냉혈한 성격에 대한 그녀의 이해로 볼 때, 그는 정말 외할머니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온세라는 온재혁에게 가족애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렇게 냉혈한 아버지 때문에 그녀의 마음은 오래전에 식어버렸지만 외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방에 돌아온 최서진은 외투를 들고 떠나려다 방을 나서기 전 그녀를 힐끗 보았다.
그 눈에는 그녀가 알 수 없는 그윽한 빛이 어려 있었지만 온세라는 별생각 없이 묵묵히 저녁까지 기다렸다.
11시가 지나자 하인들은 모두 쉬러 갔다.
서재 입구에 나타난 온세라의 손은 이미 문고리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