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어느 날.
“강원우, 오늘부로 퇴학이니 책가방 메고 당장 꺼져!”
전일 고등학교 강의동 복도에서 담임 이용진이 강원우에게 버럭 화냈다.
이에 강원우는 주먹을 불끈 쥐고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퇴학인데요?”
이용진이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
“학교 땡땡이치고 연애질이나 하고, 애들이랑 몸싸움이나 벌이니까 퇴학당하는 거지! 당장 가방 메고 나가!”
그는 교실에서 강원우의 가방을 확 내던졌다. 가방 안의 물건들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강원우가 묵묵히 가방을 주울 때 뒤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퇴학당한 거야? 안 됐다 참.”
“쟤 평상시 성적으론 대학입시 굳이 볼 필요도 없어. 졸업하고 노가다나 할 팔자야.”
“여친한테도 차였다던데?”
강원우가 터벅터벅 교문을 나설 때 봉고차 한 대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노란 머리 남자애가 뛰쳐나왔다.
“바로 쟤야! 감히 우리 형수님을 넘봐? 당장 패버려!”
강원우는 결국 수많은 방망이에 된통 얻어터졌다.
이제 곧 쓰러지기 일보 직전일 때에야 노란 머리가 폭력을 멈추고 그의 몸에 침을 뱉었다.
“퉤! 쓰레기 같은 놈. 주제도 모르고 감히 우리 형수님을 넘봐?”
문득 가까운 곳에 페라리 한 대가 보였고 젊은 커플이 차 옆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남자 서재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내가 우리 자기 전 남친 패버렸는데 괜찮겠어?”
연수지는 그의 품에 안겨 애교 조로 속삭였다.
“저런 쓸모도 없는 놈은 죽여도 괜찮아.”
“오케이! 지금 바로 죽여서 호숫가에 버려야겠어.”
거대한 고통에 강원우는 마침내 의식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호숫가에 버려진 상태였다.
차오르는 고통에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든 수면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손발이 다 잘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떡해? 진짜 이대로 죽는 거야?’
강원우는 절망감에 빠졌다.
이때 갑자기 강력한 전류가 그의 몸을 강타했다. 이 전류는 마치 살아서 숨 쉬듯 그의 몸을 헤엄쳤고 닿는 곳마다 심한 통증을 동반했다.
전류에 온몸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고 세포 하나하나가 고통스럽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불현듯 뇌 속으로 따뜻한 전류가 흘렀다.
이 따뜻한 흐름은 마력을 지닌 듯 강원우의 뇌리를 빠르게 휩쓸고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연결해주었다. 병원에서 갓 태어난 순간부터 파노라마처럼 기억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순간들도 전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전류는 끊임없이 강원우의 몸속을 헤엄치며 충격을 가했다. 마치 그의 몸 구석구석을 개조할 기세였다. 경락, 혈관, 뼈... 모든 세포가 이 마법의 에너지에 새로운 활력으로 빛났다.
다시 깨어났을 때 강원우는 어느덧 해안가에 떠밀려왔다.
“나 아직... 살아있는 거야?”
그는 곧장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부러졌던 사지가 기적적으로 다 나았으니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강원우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폭풍우만 휘몰아칠 뿐 이 마법 같은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막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또다시 강력한 힘이 솟아올랐다. 어떻게든 그 힘을 제어하려고 했으나 미세한 전류가 터져 나와 강물에 적중했다. 강물이 철렁거리고 물고기가 마구 날뛰면서 경이로운 광경을 이뤘다.
또한 그의 대뇌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사로가 명확해지고 기억력이 폭발적으로 제고되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 있고 심지어 한 가지 사례에서 추론을 끌어내며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능력까지 생겨났다.
몸의 회복을 마친 강원우는 집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의 집은 강진시 구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강진시 최하층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다.
집에 돌아오자 아빠 강지한은 담배를 피우는 중이고 엄마 민수아는 눈물을 흐느꼈으며 여동생 강유라는 잠자코 숙제를 했다.
심상치 않은 집안 분위기를 살피면서 방으로 들어가자 강지한이 그를 힐긋 쳐다봤다.
“어디 다녀오길래 온몸이 흠뻑 젖었어?”
“실수로 호수에 빠졌어요.”
강원우의 대답을 들은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좀 전에 담임한테 전화가 왔는데 너 퇴학 당했다더라?”
강원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강지한은 재떨이에 담뱃불을 지지고 버럭 소리쳤다.
“고작 이것밖에 못 해? 퇴학이라니?”
엄마 민수아의 울음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아들이 퇴학당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나 보다.
강원우는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퇴학은 부모에게 막대한 충격이니까.
“너 하나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알아? 언제 철들래?”
강지한이 고함을 질렀다.
한편 강원우는 부모님의 질책과 실망감을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속으론 새롭게 결심했다.
‘두 번 다시 부모님 실망시키지 않게 분발해야겠어. 반드시 정신 차려야 해.’
아빠에게 된통 혼난 후 그는 마침내 방으로 돌아왔다.
온몸에 샘솟는 에너지와 더없이 맑아진 정신머리, 이 모든 게 현실인지 꿈인지 빨리 검증받고 싶었다.
그는 곧장 다양한 책과 악보를 꺼냈다.
서예와 악기는 한 번 보면 기교를 다 장악했고 수리영역 또한 능숙하게 통달했다.
전에 몰랐던 것,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머리에 쏙쏙 박혔고 이 모든 게 현실로 다가왔다.
기쁨과 희열도 잠시 강원우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이제 뭐부터 해야 하지? 새롭게 얻은 이 능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지?’
대학입시, 고3에게 가장 두려운 네 글자가 지금 강원우에겐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한때 그도 피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기대와 자신감으로 차 있다. 더는 부모님을 실망하게 해드릴 순 없으니까.
이제 막 열심히 공부하려던 참에 문이 살며시 열리고 여동생 강유라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빠, 괜찮아. 꼭 대학에 붙을 수 있을 거야.”
강원우보다 두 살 어린 그녀는 예쁜 외모에 착하고 공부도 잘해서 오빠 강원우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동생의 위로를 받은 강원우는 가볍게 웃었다.
“알았어. 오빠 꼭 다시 일어설 테니까 두고 봐.”
강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름다운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오빠... 왜 전보다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순간 그는 가슴이 움찔거렸다.
“뭐가 다른데?”
“글쎄 딱히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겠어.”
강유라가 수줍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더 잘생겨진 것 같아. 눈빛도 똘망똘망해지고... 키도 좀 더 큰 것 같네?”
그날 점심 강지한이 값비싼 담배와 술을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
“오후에 나랑 같이 학교 가.”
아빠의 명령에 강원우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평상시에 4천 원 이상의 담배는 감히 넘보지 못했고 종일 소주만 마시던 사람이 오늘은 크게 한턱 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