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못생겼다고 비아냥거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2층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소녀를 보았다.
옅은 색 드레스를 입었고 비단결 같은 긴 머리카락을 어깨에 늘어뜨린 김시아는 손바닥만 한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정교한 이목구비와 어울려 파티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그녀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 아름다워요...”
‘저 여자가 바로 김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아가씨였어?’
이 분위기는 아무리 봐도 시골에서 자란 것 같지 않았다.
“그럼요. 정성껏 키운 김유미보다 더 예쁜 것 같아요!”
파티장에는 온통 김시아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고, 이 말을 들은 김유미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 그녀는 질투에 찬 눈빛으로 김시아의 그 정교하고 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년의 얼굴에 상처를 냈을 거야!’
파티에 참석한 아가씨들은 자신이 한 말을 생각하면 마치 뺨을 얻어맞은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러분, 이 애가 바로 우리가 찾아온 소중한 딸이에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함께 무대에 올라간 김시아의 매혹적인 두 눈은 아무런 기복이 없이 평온했다.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김시아는 부모님을 실망하지 않게 하려고 순순히 따라주었다.
심수정과 김준수 사이에 선 김시아를 바라보는 김유미는 눈이 따가워 났다.
입술을 깨물던 김유미는 뒤늦게 무대에 오르더니 그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중간 자리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 가족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축하의 의미로 언니가 특별히 피아노 연주를 준비했으니 즐겁게 감상하길 바랍니다!”
이 말이 끝나자 장내는 떠들썩해졌다.
“김씨 가문 아가씨가 피아노도 칠 줄 생각지도 못했어요! 시골에서 자랐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요. 시골에서 자란 아이가 피아노까지 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김유미의 도발적인 눈빛과 마주했지만, 김시아는 여전히 차분했고 오히려 담담하게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눈에 이 피아노가 이미 특수처리 되었음을 알아차리고 빨간 입술을 실룩거리며 김유미를 향해 차갑게 웃었다.
‘수작 부리기 좋아하니 이 기회에 재밌게 놀아줘야지...’
“유미야, 시아와 함께 한 곡을 연주하는 거 아니었어?”
심수정은 의문스러워 물었다.
“언니를 위해 준비한 파티이니 첫 곡은 언니가 먼저 연주해야죠.”
김유미의 청순한 얼굴에는 이에 걸맞은 웃음을 띄었으나 눈빛은 음흉하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 곡 때 언니와 합주할게요.”
기특한 김유미가 해맑게 뱉은 말을 들은 김준수와 심수정은 마음이 따뜻해져 칭찬을 금치 못했다.
“유미야, 넌 정말 착해.”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지은 김유미는 선해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나보다 연주 수준이 높은 건 인정하지만 이미 피아노를 손보았으니 아무리 잘 쳐도 쓸모없어. 이제 체면 깎이는 꼴을 지켜볼 거야.’
김시아가 망신당한 후, 하인더러 피아노를 바꾸게 하고 그다음 연주를 하면 대조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면 김시아가 여러모로 자신보다 못하다는 것을 하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김시아가 천천히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앉자 불빛이 그녀의 하얗고 예쁜 얼굴에 드리웠는데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김시아로 고정한 채 숨을 죽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김시아의 연주를 기다렸다.
김유미만 김시아가 무대 위에서 망신하여 오늘의 웃음거리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
흰색 포르쉐 한 대가 김씨 가문 앞에 멈춰 섰다.
“너희들이 병원을 떠나지 못하게 막아서는 바람에 늦었어!”
여희숙이 차에서 내리자 성주원은 공손히 옆에 서서 차 문을 잡아주었다.
“우주는 어딨어? 우주가 왜 아직 안 왔어?”
이 말을 들은 성주원은 곧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르신, 도련님께서 먼저 어르신을 모시라고 했습니다...”
성주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희숙은 그의 말을 끊었다.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우주는? 우주는 어딨어? 오늘은 약혼녀의 파티인데 어떻게 참석하지 않을 수 있어?”
성주원은 마지못해 말했다.
“어르신, 대표님께서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약혼녀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야?”
화가 난 여희숙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무튼 당장 달려오라고 해!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서둘러 오라고 전해!”
말을 마친 여희숙은 김씨 저택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긴장하여 옷매무새를 정리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곧 손주며느리를 만나게 되니 마음이 설레는구먼!’
파티장 쪽에서 은은한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여희숙은 천상의 연주를 방불케 하는 매혹적인 피아노 소리를 따라 파티장에 입장했다.
여희숙도 현장에 있던 사람들처럼 피아노 연주에 도취하여 손주며느리를 찾는 일마저 잠시 잊었다.
모두 음악에 도취하여 있을 때 오직 김유미만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분명히 피아노에 ‘손을 댔는데도’ 김시아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연주했다.
모든 사람이 황홀하게 듣고 있을 때 갑자기 연주를 멈춘 김시아는 머루알 같은 눈망울을 깜박이며 무대 아래서 표정이 일그러진 김유미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유미야, 이 곡은 듀엣이니 우리 같이 합주해.”
이 말이 떨어지자 장내의 시선은 일제히 김유미에게로 향했고 김유미는 거절할 수 없었다.
만약 듀엣 연주를 거절한다면 하객들은 그녀의 수준이 김시아보다 못하다고 여길 것이지만 연주하러 무대에 올라가면...
“유미야, 설마 두려운 건 아니겠지?”
김시아의 냉담한 목소리가 또 장내에 울려 퍼졌다. 순박한 말투였지만 김유미의 염장을 찌르기엔 딱 맞춤이었다.
열을 받은 김유미는 성큼성큼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애써 온화한 미소를 지은 얼굴이지만 음흉한 눈빛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럼 제가 언니와 듀엣 연주를 해보겠습니다.”
“좋아, 너무 기대 돼.”
“김유미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 한 실력이니 잘 할 거야.”
김유미가 1등 상을 받은 후 일부러 소문냈기에 그녀의 실력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특별히 손봐준 피아노, 난이도가 높은 연주곡, 실력이 좋은 김시아 등 여러 요소 때문에 김유미는 점점 힘겹게 연주했고 또 어떤 때는 김시아의 리듬을 따라가지 못해 음을 틀리게 연주했다.
지법이나 절주, 윰률을 막론하고 김시아에게 완전히 눌린 김유미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컸던 하객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웬일이지? 김유미가 뭘 연주하는 거지?”
“그러게요. 이 실력으로 피아노 콩쿠르 1등이면 뒷거래한 결과인가요?”
“글쎄요, 내부 사정이 있었겠죠. 이 실력으로 1등을 했으면 농담이 따로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