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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안해원이 이제 막 대답하려 할 때 박이서가 대뜸 말을 잘랐다. “아니야, 아무것도. 오빠 돌아왔네?” 오랜만에 듣는 오빠 소리에 박도준은 걸음을 멈추고 짙은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박이서가 오빠라고 안 부른지도 꽤 된 것 같았다. 언제부터였을까? 18살? 15살? 아니면 더 오래전부터? 그땐 그냥 박이서가 다 커서 예전보다 조금 사이가 멀어졌으니 오빠라고 안 부르는 거라고 여겼는데 나중에야 알게 됐다. 본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로 오빠라는 호칭을 줄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 다시 오빠라고 부른다. 박도준은 짙은 눈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오늘따라 그녀가 왠지 어딘가 살짝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박도준은 한참 후에야 시선을 거두고 식탁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든 선물 봉투를 내려놨다. “엄마, 아빠, 이건 윤아가 두 분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작은 성의이니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 좋겠네요.” 안해원은 곧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윤아가 사주는 선물들 어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없어. 너 우리 대신 제대로 인사하긴 했니?” 박정훈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진지하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도준아, 다음에 윤아 집에 인사드리러 갈 때 저기 저 찬장에 있는 와인 한 병 갖고 가.” 박정훈 부부는 예비 며느리 강윤아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신다. 흥에 겨우실 때면 심지어 여느 주말에 시간 될 때 강윤아의 부모님도 집으로 모셔오라고 했다. 이건 뭐 대놓고 혼사를 논의하자는 거나 다름없었다. 박이서는 제자리에 앉아서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외로움이 마음을 휩쓸고 주먹을 너무 꽉 쥔 나머지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갈 것만 같아 다시 힘을 풀었다. 그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느꼈다. 본인이야말로 진정한 외부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만 이제 더는 이런 일들로 고뇌할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박이서는 담담하게 방으로 돌아갔다. 한창 부모님과 얘기 중이던 박도준은 그녀를 힐긋 쳐다봤는데 좀 전까지 식탁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어느새 종적을 감춰버렸다. 일부러 피하는 걸까? 박도준은 문득 이런 착각이 들었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부터 지금까지 박이서는 오직 한마디만 했다. 이건 전혀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날 오후 박이서는 동사무소에 가서 주소 이전을 마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래층에 내려왔을 때 강윤아가 언제 왔는지 박도준의 옆에 앉아 까르르 웃고 있었다. 박도준은 늘씬한 손가락으로 귤을 바르고 귤락까지 제거한 후 반으로 잘라서 강윤아에게 한 입 먹여줬다. 이에 강윤아는 두 볼이 빨갛게 물든 채 조신하게 귤을 한입 물었다. 박도준은 가볍게 웃으며 티슈 한 장을 뽑아 그녀의 입을 닦아주었다. “달아?” 강윤아는 머리를 끄덕이고 또다시 귤을 그의 입가에 갖다 댔다. “도준 씨도 먹어봐.” 박이서는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덤덤하게 시선을 거두고 문밖을 나섰다. “이서야!” 이때 강윤아가 뒤에서 그녀를 부르더니 반갑게 손까지 흔들었다. “도준 씨 오늘 휴식이라 이따가 놀이공원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박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사람 데이트에 내가 뭣 하러 방해하겠어.” 이에 강윤아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너 이제 내 시누이잖아. 방해가 웬 말이야?” 그녀는 일부러 박이서의 신분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시누이란 세 글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전에 시누이란 말을 들었다면 박이서는 분명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조여올 테지만 이제 박도준을 오빠로만 대하고 있으니 되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난 볼 일 있어서 나중에.” 그녀가 재차 거절하자 강윤아의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까지 파르르 떨렸다. “아직도 내가 네 오빠를 뺏었다고 원망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랑 함께 안 노는 거지?” 여기까지 들은 박도준이 재빨리 강윤아를 안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뺏다니? 내가 먼저 널 좋아했어.” 강윤아는 순간 귓불이 빨개지면서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내리쳤다. 박도준도 가볍게 웃고는 그녀의 머리에 살포시 입맞춤했다. “안 가면 말라고 해. 우리끼리 놀지 뭐.” 박이서는 피식 웃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제 각자 제 갈 길 가야지.’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고는 문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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