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임진 그룹이 최근 재정이 빠듯하고 자금을 제대로 돌릴 수가 없어 큰 타격을 입게 되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게 되면 임진 그룹은 분명 파산 신청을 해야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런 시점에서 황인호가 직접 찾아와 임지연하고의 결혼을 승낙해 주면 임진 그룹을 도와줄 수 있다고 얘기했었다.
임건국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키워온 임시월을 황인호한테 시집을 보내기 아쉬웠던 터라 차라리 고상준한테 파혼을 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임시월이 고상준과 결혼을 하게 될 것이고 임지연은 황인호하고 혼약을 맺게 될 것이니 말이다!
임건국이 부녀 사이의 정을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을 거래로 여기고 있자 임지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대로 아버지 뜻대로 되지 않을 거예요.!”
임지연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임지연은 자신을 아버지라 칭하는 임건국한테서 그 어떠한 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상황이 위독하신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임건국이 내주지만 않았어도 이 집안을 당장 떠났을 것이다!
임건국은 그녀가 동의하지 않자 썩소를 지었다.
“임지연! 까먹지 마! 네 할아버지가 지금 병원에 있어! 그 병원비를 내주는 사람은 나고!”
전부 까발리고 말을 내뱉은 건 아니지만 임건국의 말투에는 다소 위협감이 들어 있었다.
임지연은 임건국이 이런 일로 자신을 협박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저기요! 제 할아버지면 당신 아버지 아니에요! 어떻게 할아버지의 상황으로 날 위협해요? 스스로가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임건국이라는 인간은 허영심 그 자체였다.
겉으로는 너그러운 척, 가장인 척 온갖 가식적인 행세를 하고 다니고 있으나 사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나서 버럭 화를 냈다.
“임지연! 지금 아버지하고 무슨 말버릇이야!”
몸을 휙 하고 돌려버린 임건국은 임지연하고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오늘은 어디 나갈 생각도 하지 마. 내일 황인호 대표님이 찾아올 거니까 단장 잘하고! 얌전히 시집가는 게 좋을 거야! 황씨네 가문은 부잣집이라 어차피 시집을 가도 너한테 나쁠 것도 없어!”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유인가! 임지연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평생 단 한 번도 아버지 노릇을 한 적이 없는 그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딸을 마흔 살이나 넘는 늙은이한테 시집을 보내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고!
그러나 할아버지가 그 사람 손안에 있으니 그녀는 대놓고 반항할 수도 없었다.
혹여라도 짐승만도 못한 임건국이 할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하게 되면 안 되니 말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난 임지연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임지연은 낯선 번호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집에 무슨 일 생긴 거면 나한테 말해도 돼요.”
전화를 받자마자 자성을 띤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지연은 어젯밤 자신하고 결혼했었던 육진우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비록 육진우가 어떻게 자신의 번호를 알게 됐는 지는 모르나 임지연은 입가에 쓴웃음을 띠었다.
“괜찮아요...”
“괜찮은 것 같지가 않은데요.”
육진우는 입술을 꼬며 느릿느릿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임씨네 가문의 일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수심이 깊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또 황씬에 가문이 해성시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육진우는 도와주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모델 일 하시는 분이 뭘 도와준다고 그래요.”
임지연은 머리가 지끈거리기만 했다.
아무 남자하고 결혼한 것도 모자라 그 남자가 모델이라니...
“모델이요?”
이 상황이 흥미진진한 육진우는 목소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내가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임지연은 얼버무리며 답했다.
“아니면요? 술집에서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 그쪽이 한눈에 보이던데요. 모델 아니에요?”
임지연이 자신을 모델이라 칭하는 말에 육진우는 눈가의 웃음이 더욱 짙어져 갔다.
그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긴요! 다만 설령 제가 모델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우리 둘이 부부잖아요. 그 어떠한 어려운 점이 생겼을 때 저한테 얘기해도 돼요.”
임지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저희 집안일이 워낙 복잡하니까 제가 혼자서 해결하면 돼요.”
두 사람은 얼떨결에 맺어진 인연이니 그녀는 육진우가 자신의 집안일로 골머리를 앓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임지연은 말을 마치고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육진우는 이미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 여자 패기가 넘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서명훈은 그한테로 다가와 미소를 터뜨렸다.
“누구야? 어젯밤 너한테 달라붙어서 결혼하겠다던 그 여자야?”
서명훈은 어젯밤에 있었던 광경만 떠올리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간만에 자기 친구가 쪽팔리는 꼴을 구경했으니 말이다.
“응.”
육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서명훈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하고 같이 나간 거야? 무슨 일 없었어? 게다가 할머니도 빨리 결혼하라고 닥달인 거 아니야? 차라리 그 여자하고 결혼하지 그래? 얼굴도 예쁘장하더만!”
서명훈은 야유를 하며 그를 놀리고 있었고 육진우는 옆에 있던 찻잔을 입에 살짝 오므리며 차를 음미하다 답을 했다.
“어제 결혼 도장 찍었어.”
“콜록! 콜록! 콜록!”
서명훈은 입안에 있던 찻물을 내뿜더니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육진우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너... 너... 미쳤어!”
한참이 흘러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서명훈은 손으로 입가를 닦고 나서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진우야, 넌 명문 집안 도련님이야. 그렇게 아무 여자하고 결혼하면 어떡해? 그 여자가 네 신분이나 돈을 노리고 접근했을 수도...”
서명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진우가 가로채고 있었다.
“몰라. 내가 술집에서 일하는 모델인 줄 알고 있어.”
서명호는 말문이 막혔다.
육씨 가문의 집권인인 그를 모델 취급하다니!
전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재벌집 자식인데....
다른 한편.
임씨 저택.
임시월은 의기양양한 자태로 임지연의 방으로 들어왔고 팔짱을 괴며 입을 열었다.
“임지연! 너 어젯밤 남자한테 매수라도 당한 거야?”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었다.
오늘 임지연은 마이바흐에서 내린 게 확실했었으니 말이다.
설마 어젯밤 진짜로 어느 부잣집 남자하고 놀아난 건가?
그녀는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임지연은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자란 애였는데 임씨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로 모든 사람들은 그녀와 임지연을 비교하고 있었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녀는 모든 면에서 임지연한테 뒤떨어졌었다!
그러다 이제 겨우 고상준하고 혼사를 맺게 되었는데 임지연이 자신보다 더욱 권력이 강한 남자를 찾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임지연은 그녀의 옆을 지나쳐 자리를 떠나려 했다.
허나 임시월은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아당기며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임지연! 해성시에서 마이바흐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하면 다들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노인네야! 어쩜 늙은이 침대에 기어오를 생각해! 수치스러움이라는 걸 몰라? 우리 상준이 오빠가 너하고 헤어졌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얼마나 징그러워했을까!”
임시월이 뻔뻔스레 고상준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자 임시연은 썩소를 지었다.
“임시월! 넌 얼마나 깨끗한데? 아무리 그래도 고상준은 한때 내 약혼 상대였어. 그런 남자하고 침대를 뒹군 너는 역겹지도 않아?”
수치스러움으로 인해 얼굴에 붉은 기웃이 솟아난 임시월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임지연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나하고 상준 오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야! 네까짓 게 뭔데 이러쿵저러쿵 편견질이야! 넌 그냥 시골 촌뜨기야!”
악독한 말들을 내뱉고 나자 얼굴에 노기가 살짝 풀린 임시월은 탁한 숨을 내쉬며 턱을 치켜올렸다.
“참! 임지연! 아빠가 왜 널 황인호한테 시집을 보내려는 건지 알아?”